왕의 자리는 북쪽이다. 왕의 왼쪽이 양(陽)의 자리며 동쪽(左東)이라 동반(東班:文)이고, 오른쪽은 음(陰)이며 서쪽(右西)이라 서반(西班:武)이다. 둘을 합쳐 양반(兩班)이라 부른다.'좌의정우의정 법칙'도 같다. 조선의 최고관직인 의정부의 삼정승이 앉을 때 중앙에 영의정이 앉고 왼쪽에 좌의정, 오른쪽에 우의정이 앉는다.부부가 나란히 앉을 때는 남편이 부인의 왼편에, 부인은 남편의 오른편(男左女右)에 앉는다. 이 법칙은 죽어 남우여좌(男右女左)로 바뀌는데, 이것이 무덤의 위치이자 제사 때 지방(紙榜)의 '고서비
유명한 도박사 데이비스도 죽음은 피할 수 없었다. 마침내 임종시간이 가까워졌다. 의사가 "내일 아침 여덟시를 넘기기 힘들겠습니다"하고 가족들에게 하는 말을 듣고 대뜸 의사를 향해 하는 말이 "선생님, 여덟시까지라고요. 우리 내기합시다. 내가 만일 아홉시까지 산다면 5기니(금화)를 내셔야 합니다" 죽음의 시간까지 도박의 대상이 된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인간은 도박하는 동물이다(찰스 램)' '도박은 선천적으로 갖춘 인간의 특성이다(버어크)' '인생에 있어서 참된 매력은 하나밖에 없다. 그것은 도박
군수가 새로 부임해 올 때마다 부인이 사라지곤 했다. 최 군수가 군산으로 부임해 오게 됐는데, 그 사연을 듣고 미리 부인의 몸에 명주실을 꽂아 뒀다. 다음날 아침에 보니 군수의 부인이 사라졌다. 이는 금돼지의 짓이었다. 최 군수는 명주실을 따라 부인이 잡혀있는 곳으로 가서 부인을 찾아왔다. 얼마가지 않아 최 군수의 부인이 아들을 낳았는데 금돼지의 자식으로 여겨 아이를 산에 버렸다. 그러나 며칠이 지나도 아이가 죽지 않고 살아 있자, 그 까닭이 궁금해 지켜봤더니 날짐승들이 와서 아이를 보호해주는 것이었다. 이렇게 자란 아이가 바로 신
아흔 두 살(92살) 때 할머니는 시(詩)를 쓰기 시작하여 그의 나이 아흔 여덟(98세)이 되던 2009년, 죽으면 장례비용으로 마련해 두었던 100만 엔으로 그동안 쓴 시들을 모아 첫 시집 《약해지지 마》를 자비로 출판하게 된다. 〈있잖아 불행하다고 / 한숨 짓지 마 / 햇살과 산들바람은 / 한쪽 편만 들지 않아 / 꿈은 평등하게 / 꿀 수 있는 거야 / 나도 괴로운 일 / 많았지만 / 살아 있어 좋았어 / 너도 약해지지 마(詩 '약해지지 마' 전문>시가 어렵지 않고, 살아가는 삶의 이야기인 탓에 공감과 감동을 불러
음력으로 첫 번째 달은 정월(正月)이다. 진시황제의 본 이름은 정(政)이었는데, 시황제는 1년의 첫 달을 자기 이름과 같은 소리가 나는 한자 정(正)을 쓰게 해서 정월(正月)이 되었다. 그렇게 시작된 일 년 열두 달은 이월, 삼월, 사월로 숫자를 앞에 넣어 달을 부르다가, 11월이 되면 겨울(冬)이 이른다(至)하여 동짓달이라 한다.그런데 유독 12월만은 숫자도 한자어도 아닌 우리말로 '섣달'이라고 한다. 굳이 한자어로 말한다면, 나라에서는 종묘와 사직에 제사를 지내고, 민간에서도 금년 농사를 잘 짓게 해 주신 신에게
납일이 되면 나라에서는 종묘와 시작에 제사를 지내고, 민간에서도 금년 농사를 잘 짓게 해준 신에게 올해 마지막 제사를 지낸다. 이를 납향(臘享) 또는 납제(臘祭)라 한다. 납일은 시대에 따라 다르게 지켜오다가 조선시대부터는 동지가 지난 후 세 번째 맞는 미일(未日)을 납일(臘日)로 정했다. 올해는 양력 1월22일이 납일이다.'동국세시기'에 따르면 이날 제사에 쓸 음식으로 산돼지와 토끼고기를 올렸는데, 납(臘)은 사냥한다는 엽(獵)의 의미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사냥을 한 짐승을 제수로 쓴 것이다. 납일 무렵이 되면 서울
간혹 참기름을 파는 가게 앞에 보면 이런 글이 있다. '정말 순 진짜 참기름만 팝니다' 가짜가 아니라는 말을 표현하는 형용사 '정말·순·진짜'라는 말이 셋이나 붙어 있다. 식당은 또 어떤가? '원조(元祖)'라는 말은 '첫 대(代)의 조상'을 나타내는 말로 어떤 일을 처음으로 시작한 사람, 즉 창시자를 일컫는다. 그런데 음식 골목에 들어가면 집집마다 원조라서 도대체 진짜 원조가 어느 집인지 헷갈리기 일쑤다. 오죽하면 '원조의 원조'라는 간
진(秦)나라 왕의 딸이 진(晋)나라 공자에게 시집을 가게 되었다. 왕가의 결혼식이라 호화롭기 그지없었다. 진(秦)나라 왕은 금은보화를 비롯하여 진기한 혼수를 수레에 실어 보냈는데 그 끝이 보이지 않았고, 자기 딸을 시중 들 시녀 70명까지 딸려 보냈다. 문제는 거기서 발생했다. 처음부터 사랑 때문에 결혼하는 것이 아니라 다분히 전략적 결혼인지라 진(晋)나라 공자는 진(秦)나라 왕의 딸에게 큰 관심이 없었다. 공자는 딸려 온 시녀 중 마음에 드는 한 여자를 첩으로 삼고 정작 신부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다.춘추전국시대에 제나라에 아름다운
초기 올림픽 때부터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는 몇 안 되는 종목 가운데 하나가 마라톤이다. 그리고 앞으로도 없어지지 아니할 올림픽의 꽃이다. 그렇기 때문에 올림픽 경기일정의 제일 마지막 날 남자마라톤으로 대미를 장식한다. 시상식도 세계의 시선이 집중하는 폐회식 때 한다. 다른 경기는 IOC위원이 메달을 걸어주지만 마라톤은 IOC위원장이 직접 메달리스트들에게 메달을 걸어준다.마라톤은 그리스의 아테네에서 북동쪽 약 30㎞ 떨어져 위치한 지역 이름이다. 이곳에서 기원전 490년에 페르시아군과 아테네군 사이에 전투가 있었다. 이 전투에서 아테
기울어져서 유명해졌다. 기울어지지 않았다면 세계문화유산도 이탈리아의 대표 관광명소도 되지 못했을 것이다. 그래서 탑의 이름도 기울어졌다고 사탑(斜塔)이다. 피사(Pisa)는 이탈리아 북부에 있는 도시로 11세기 말 무역과 문예의 중심지로 갈릴레이를 배출한 대학도시로 명성이 높은 곳이다. 피사의 사탑은 피사대성당의 부속 건물로 중세 도시국가였던 피사가 팔레르모 해전에서 사라센 함대를 이긴 것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종탑이다.1174년 공사를 시작했는데 3층까지 쌓았을 때 땅 한쪽이 내려앉으면서 기우려지기 시작했다. 기술자들은 보강공사를
산삼은 구전돼 오는 민화나 민담이 많다.전라도 화순군 동복(同福) 땅에 예쁜 낭자가 있었다. 낭자 방에 밤이 되면 왔다가 새벽이면 사라지는 사내가 있었다. 낭자는 이 사실을 아버지께 실토했다. 아버지는 딸에게 오늘밤 사내가 오면 바늘에 실을 꿰어 남자옷에 몰래 꽂아두라고 일렀다. 이튿날 아버지가 실을 따라가 보니 깊은 산속이었는데, 거기 천년된 산삼이 있었다. 손진태(孫晉泰) 선생의 '조선민담집'에 나오는 이야기다.약 300년 전 평안도 후창군에 정희길은 매년 많은 돈을 들여 산신을 모셨으나, 산삼 한 뿌리조차 얻지
'말하기조차 어리석은 일이나, 도회인으로서 비를 싫어하는 사람은 많을지 몰라도, 눈을 싫어하는 사람은 아마 거의 없을 것이다. 눈을 즐겨하는 것은 비단 개와 어린이들뿐만이 아닐 것이다.' 아직도 우리나라 대표적인 수필의 하나로 꼽히고 있는 김진섭(金晉燮)의 '백설부(白雪賦)'는 이렇게 시작한다.'겨울'이라는 말을 들으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 무엇일까? 대부분 '눈(雪)'일 것이다. 해마다 이때 쯤이면 "첫 눈 오는 날, 당신은 무엇을 하시겠습니까?"하는 메시지만으로도
사치할 奢(사) 자는 큰 대(大)와 놈 자(者)로 짜여 있다. 보통사람(者)이 자기 본분을 망각하고서 분에 넘치게 크게(大)만 보이려고 떠벌리는 태도를 말한다. 그러나 者(자)는 본래 삶을 煮(자)에서 왔다. 大+煮는 필요 이상으로 고기를 삶는 다는 것으로 정도가 지나치게 돈이나 물건을 쓰면서 생활하는 것을 일컫는다.사치할 侈(치)는 사람 인(人)과 많을 다(多)로 짜여 있다. 이때 多(다)는 본래 고기 肉(육)자에서 왔다. 人+肉은 고깃덩이를 쌓아두고(多) 혼자만 먹는 사람(人)을 가리켜 '사치스럽다'고 여겼다. 따
조선시대 출세의 등용문이던 과거시험은 고려 때부터 부정행위로 골치를 앓았다. 오죽하면 시험문제 유출을 막기 위해 과거날 새벽에 시험관들이 모여 문제를 의논했다.응시자는 과거장에 들어 갈 때 소지품을 일일이 검사 당했고, 만일 책이나 메모된 컨닝페이퍼라도 발견되면 길게는 6년 동안 과거에 응시할 수 없었다. 그뿐 아니라 이를 묵인한 관리도 처벌을 받았다. 시험에 쓸 종이는 개인별로 준비해야 했다. 따라서 입장할 때 관리가 개인 종이에 도장을 찍어줬다. 그러나 권세가나 부잣집 자제는 질 좋은 종이를 썼기 때문에 답안지만 봐도 신분이 드
'후안무치(厚顔無恥)'는 '얼굴이 두꺼워서 부끄러움이 없다'는 말이다. 이보다 고급스럽기는 청나라 말기 리쭝우(李宗吾)가 쓴 '후흑학(厚黑學)'이 있다. 후(厚)는 '얼굴이 두껍다(面厚)'는 뜻이고, 흑(黑)은 '속이 시커멓다(心黑)'는 의미다. 즉, '후흑'은 뻔뻔함과 음흉함을 바탕으로 한 처세학이다. 여기서 한 단계 더 높이면 얼굴이 두껍다 못해 쇠가죽을 발랐다는 '면장우피(面張牛皮)'가 있다. 그런데 쇠가죽은 오히려 귀엽기나 하
지금부터 약130년 전의 일이다. 미국 필라델피아에는 규모가 큰 세 건의 컨벤션이 열리고 있었다. 때 마침 여행을 즐기던 노부부가 이 도시에 도착한 것은 늦은 밤이었다. 그날따라 비까지 내리고 있었다.노부부는 찾아간 호텔마다 방이 없다는 말 한마디로 쫓겨나다시피 했다. 이미 밤은 깊었다. 마지막이라 여기고 도심에서 조금 떨어진 호텔을 찾았다. 로비에는 젊은 직원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역시 여기서도 객실은 만원이었다. 참으로 난처한 표정을 짓는 노부부에게 그 직원이 말했다. "오늘은 어디 가셔도 방을 구할 수 없습니다. 지금이 새
문학의 특징은 개연성(蓋然性)에 있다. 개연성이란 확실하지는 않지만 그럴 것이라고 생각되는 성질이다. 다시 말하면 있음직한 이야기라는 뜻이다. 있음직한 것이니 팩트(fact)는 아니고 허구다.이때 허구는 매우 정교한 구조로 마치 실제의 사건이나 공간처럼 재현해 독자로 하여금 사실처럼 믿게 만들어야 한다. 문학에서는 이를 리얼리티(reality)라 한다. 리얼리티가 문학적 보편성을 확보하는 장치가 된다.문학의 보편성은 보통 사람의 상식이나 도덕적 기준으로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억지스러운 상황 설정, 말도 안 되는 소재,
소설 '삼국지연의'에 나오는 유비, 관우, 장비는 수염조차 특별했다. 유비는 수염이 없었다. 그래서 '말끔한 얼굴이 마치 엉덩이 같다'고 했다. 그에 비해 관우는 미염공(美髥公)이라는 별명만큼이나 멋진 수염을 가지고 있었다. 무릎까지 내려오는 긴 수염을 비단 주머니로 싸서 다니기도 했다. 장비는 마치 밤송이처럼 뾰족하고 굵고 거친 털이 마구 뻗어나가는 수염이었다.수염은 2차 성징 이후 얼굴에 나는 털을 말한다. 입 주변이나 턱에 나는 털을 수(鬚)라고 하고, 귀밑에서 턱까지 잇달아 난 구레나룻을 염(髥)
"전하, 중국의 문자를 버리고 새로운 문자를 만든다는 것은 오랑캐나 할 짓입니다." 세종께서 '우리말이 중국글자와는 서로 달라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다. 그래서 백성들을 위해 새로운 글자를 만들었노라'고 말하자 신하들이 벌떼처럼 일어나 반대하기 시작했다.그 반대의 선봉에는 집현전 부제학 최만리(崔萬理)가 있었다. 최만리는 어떤 사람인가? 조선 초기 유교주의 국가 정립에 토대를 마련한 학문연구기관 집현전 출신이다. 그는 강원도 관찰사로 1년 나가있었던 것 말고는 그의 관직생활 25년간을 집현전에서만 오로지 근무해 부제학
성공한 CEO는 독서와 깊은 상관관계를 가지고 있다. 삼국지의 조조는 평생 전장을 누비면서도 책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또한 손권이 여몽 장군에게 공부하기를 권하자, 여몽은 "전쟁 중이라 책을 읽을 겨를이 없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손권은 "후한의 황제 광무제는 변방 일로 바쁜 가운데서도 책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는 '수불석권(手不釋卷)'으로 그를 꾸짖는다.나폴레옹은 전쟁터에서 지휘봉보다는 책을 손에 든 시간이 많았고,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엄청난 재앙을 불러온 무솔리니는 정치가이면서도 문학가였다. 그는 파시즘 이론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