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의 자리는 북쪽이다. 왕의 왼쪽이 양(陽)의 자리며 동쪽(左東)이라 동반(東班:文)이고, 오른쪽은 음(陰)이며 서쪽(右西)이라 서반(西班:武)이다. 둘을 합쳐 양반(兩班)이라 부른다.'좌의정우의정 법칙'도 같다. 조선의 최고관직인 의정부의 삼정승이 앉을 때 중앙에 영의정이 앉고 왼쪽에 좌의정, 오른쪽에 우의정이 앉는다.

부부가 나란히 앉을 때는 남편이 부인의 왼편에, 부인은 남편의 오른편(男左女右)에 앉는다. 이 법칙은 죽어 남우여좌(男右女左)로 바뀌는데, 이것이 무덤의 위치이자 제사 때 지방(紙榜)의 '고서비동(남자 신위는 서쪽, 여자 신위는 동쪽)'이 된다. 상사와 부하가 함께 앉을 때에는 상사는 부하의 왼편에(上左下右), 주인과 손님일 때는 주인이 상석인 왼편에(主左賓右) 앉는다. 이것이 모든 자리예절의 기본법칙이다.

그런데 사물의 경우에는 다르다. 바라보는 주체인 나를 영의정이라 생각하면 쉽다. 그래서 내가 바라보는 왼쪽이 양이고 동쪽이며, 오른쪽이 음이며 서쪽이 된다. 태극기 다는 위치는 집안에서 보아 오른쪽이지만, 밖에서 바라보아 왼쪽이다. 시청과 의회의 문패를 달 때, 바라보아 왼쪽에 시청 이름표를 달아야 한다. 초등학교와 유치원이 같이 있다면 바라보아 교문의 왼쪽에 교명을 붙여야 한다. 이게 학교마다 제 멋대로다. 공중화장실의 경우에도 눈을 감고 가도 왼쪽이 남자화장실, 오른쪽이 여자화장실이어야 한다. 정수기는 보나 안보나 왼쪽 버턴이 뜨거운 물, 오른쪽 버턴이 찬물이다. 이 규칙을 무시하면 화상을 입기 십상이다.

살아 있는 사람의 경우에는 왼쪽을 상석으로 하고(이좌위상·以左爲上), 사물의 경우에는 오른쪽을 높게 본다는(이우위상·以右爲上) 것이 대전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베트남 하노이에서 회담하는 사진을 보고 언론들이 성조기는 바라보아 상석인 왼쪽을 차지하고, 자리는 김정은에게 오른쪽 상석을 양보했다고 마치 탁월한 분배처럼 야단을 떠는데 이는 잘못 본 해석이다. 산 사람과 사물을 같이 보면 안 된다.

저작권자 © 거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