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부터 손목이 아팠다. 워낙 빨빨거리고 돌아다니다 보니 언제 어디서 다쳤는지도 모른다. 아무튼 아프기에 두어 달 참았다. 원래 이렇게 대수롭지 않은 증상은 좀 기다리면 저절로 낫는다는 나름의 질병철학이 있는데 항상 통하는 것은 아니지만 내게는 대부분 먹히는 것 같다며 이 방법을 고수해왔다. 그런데 이번 팔목 아픈 건 두서너 달을 참았음에도 불구하고 증상이 더 나빠지고 급기야 숟가락도 못 들것 같아 일단 병원에 가 보기로 했다.내가 병원에 간다니까 지인 한 분이 자기도 병원에 가야 할 일이 있다고 했다. 골프연습을 하다 한쪽 옆
꽃피는 소문만큼 빠른 게 또 있을까. 여기 저기 꽃 피었다고 가슴마다 소문으로 전해질 때 이미 그 가슴은 꽃 색으로 환하게 문질러져 있다. 내가 있는 곳에서 피는 꽃도 좋지만 멀리서 전해지는 당신의 꽃 소식은 하얗고 붉고 노란 마음까지 전해져 더 포근하다.이미 발걸음 절반은 소식을 전한 사람에게로 향하고 있다. 이리저리 흔들리는 봄바람처럼 사람의 꽃걸음들이 사방에 소복하다.꽃은 꽃집에서만 파는 것이 아니다. 재래시장 좌판에는 하얀 분 바른 진달래 꽃잎이 인기다. 진달래 피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 나이 드신 여인들은 분홍 꽃잎을 곱게
가장 인상깊게 남아있는 봄의 기억은 고등학교 1학년 때다. 나는 경기도 안성에 있는 안법고등학교에 입학을 했다. 1909년에 개교한 안법고등학교는 지역의 사립명문으로 경기도는 물론 충북·충남 등 각지에서 학생들이 몰려들었다. 하지만 명문학교라는 점보다 더 마음에 든 것은 교정에 흐드러지게 피던 개나리와 벚꽃이었다.주택가에서 교문으로 이어지는 진입로에는 개나리가 담장을 따라 피었다. 학교 진입로는 대략 50미터 정도였다. 그 길을 따라 개나리가 그야말로 흐드러지게 피었다. 담장 위에서 가지를 늘어뜨려 피어나던 개나리는 장
봄이 왔나보다. 마당에 쑥과 냉이가 돋아난다. 상큼한 봄나물의 향취를 기대하면서도 무성히 자라날 잡초와의 전쟁이 무섭다.그런데 최근에 자연 농법을 알게되면서 이러한 두려움이 없어졌고 오히려 잡초와 함께 경쟁하면서 자라날 과일과 채소… 그래서 더욱 튼튼하고 영양이 풍부한 그들 생각에 마음이 풍성해진다.1970년대에 중고등학교에 다닐 때, 당시 잘 사는 집 아이들은 '소고기 장조림'을 도시락 반찬으로 가져왔다. 그 아이들은 영양이 풍부한 듯 몸도 크고 우윳빛 살갗을 자랑했기에 못사는 우리들은 그들을 부러워 했
전쟁은 나는 것일까 안 나는 것일까 초미의 문제에 가까워질수록 사람들은 우선 자기와 자기 주변의 목숨부터 생각하게 된다. 특별한 정치가나 지도자가 아닌 이상 국가안위를 먼저 떠올리기에는 역부족이다. 전쟁이 나는 것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여기에 대한 사생결단의 각오 없는 행동이 문제가 된다. 왜 전쟁을 두려워하지 않겠느냐 마는, 마냥 약한 방향으로 이끌려서는 끝내 목숨의 위대한 몫을 유지하지 못한다는 것이다.그러므로 우리들은 한 방향으로 일사불란하게 움직여야 한다. 삶의 위험을 느끼는 국민으로서는 전문가 이상의 상념을 하기도 한다.
얼마 전 구정이라고 오래전 제자가 연락을 해왔다. 오랜만에 선생님 얼굴 뵙고 인사를 드리겠다는 것이다. 나는 그러지 말고 아예 식당에서 같이 점심이나 먹자고 했다. 그리고 같은 날 다른 제자에게 또 전화가 왔다. 선생님 찾아뵙겠다고. 그러면 너도 같이 나와 점심이나 하자고 했다. 그래서 뜬금없는 한 모임이 결성돼 우리는 밥집에서 만나게 됐다.밥집으로 가기 전 나는 문득 이 두 제자의 학창시절을 떠올렸다. 두 학생 다 결코 우수한 모범생은 아니었다. 아니 그 중 한 명은 거의 매일 내게 야단을 맞았고 어떤 날에는 너는 게으른 놈이라
잘 계시지요? 입춘이 지나고 설이 다가왔는데도 날이 차갑습니다. 한 여름 뜨거웠던 햇빛을 기억하는 터라 이 추위도 이겨낼 수 있고 내가 내 안에서 안녕하여 나 밖의 당신의 안부를 물을 수 있습니다. 스스로는 볼 수 없는 서로의 뒷모습을 훔쳐 가슴에 쟁이며 무던히도 살아왔네요. 곧 설이 다가오고 여전히 불완전한 서로의 모습에 안타깝기만 합니다.함께 일궈왔던 지난 인생들 속에 당신과 나는 누가 주체이고 객체였을까, 생각해보는 것도 흥미로울 것 같습니다. 평생 동지로 맺은 인연이라 누가 외부이고 내부일 것이 뭐 그리 대수겠습니까. 가정을
어릴 때 시골에 살면서 겨울에 간식으로 먹을 수 있는 것은 홍시와 고구마 외는 없었다. 아버지의 4촌·6촌 등 친척들이 의논해 새로 땅을 물색해 만든 달랑 7채의 '새 동네'였지만 감나무는 필수였는지 집집마다 감나무는 있었다.여름 아침에 일찍 나서면 하얀 감꽃이 더러워지기 전에 주울 수 있었고 새끼에 꿰어 목걸이처럼 하고 다니면서 빼어먹었다. 단감은 없었고 모두가 떫감…. 아무리 배가 고파도 너무 떫어서 그냥 먹을 수는 없다. 소금물에 담아서 먹든지 홍시가 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우리 집은
봄이 오면 온통 연분홍빛 가슴이 물결치던 한때가 우리들의 눈에 가득해진다. 2002년 월드컵 축구 세계4강 진출의 그때, 그 환희는 더더욱 눈에 선하다. 골목골목이 아니라 진짜 가슴가슴마다 거리거리마다 한국민의 열띤 기쁨이 과히 충천하지 않았던가. 그때도 태극기만은 우리 민족의 국적과 혼의 상징으로 나부꼈던 실로 위대한 승리의 고향이었다.이번 평창 동계올림픽에 태극기를 앞세우지 못하는 입장식은 올림픽 개최국으로서 아쉬움이 남는다. 평화와 통일은 이념이 아니며 그것은 오로지 실천에서 오는 것이다. 조급하게 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다.
2년 전까지도 나는 종이신문을 받아봤다. 인터넷으로도 얼마든지 뉴스를 볼 수 있지만 종이신문에 대한 어떤 추억이랄까. 익숙한 것을 버리지 못하는 습관이라 해도 좋겠다. 아무튼 다른 종류의 두 가지 신문을 받아보다가 결국 나도 인터넷 신문으로 갈아탔다.인터넷으로 기사를 보니 신문을 가지고 다닐 필요가 없어서 좋았고, 언제 어디서든 다양한 기사를 읽을 수 있는 장점이 있었다. 게다가 원하는 기사를 바로 검색해서 읽을 수 있고 그 기사를 카카오톡이나 다른 SNS 계정으로 즉시 다른 사람에게 보낼 수 있으니 인터넷이 얼마나 편리한지. 나는
아무 생각없이 걸어보자고 나온 밤길이 자꾸 불안하다. 몇 시간쯤 참아보기로 하고 달빛 좋은 길을 다시 걷는다. 많이 걷겠다는 새해 다짐만 2년째다. 생각만 하다가 작심삼일이나 작심삼월쯤 되는 날 양심에 형편없이 기울어진 나를 발견한다. 세상은 무거운데 세월은 얄짤없다.세월이 빠를수록 허허로운 생각으로 걸음을 가져본 일이 드물다. 힘들겠지만 걷는 날마다 휴대전화를 버리고 다니기로 한다. 그런데 이유없이 불안하다. 며칠 전에는 휴대전화기를 집에 두고 출근하는 바람에 하루 종일 정신나간 사람처럼 불안했던 적이 있다. 그게 뭐라고, 당장
지눌(知訥)은 고려시대의 고승이다. 불교개혁을 이끈 선구자(先驅者)이자 조계종의 창시자기도 하다.고려시대의 불교는 선종(禪宗)보다는 교종(敎宗)이 위세를 떨쳤다. 교종은 교리를 읽고 그 진리를 깨닫는 것에 중점을 두고 있다. 경전을 읽고 교리를 이해하는 것에 중점을 두고 있으니 글을 읽지 못하는 일반 백성들은 진리를 깨닫기 어려웠다. 당시 귀족들은 교리를 읽고 이해할 수 있는 자신들만이 부처가 될 수 있다는 특권의식을 갖고 있었다. 글을 모르는 일반백성들은 안중에도 없었다.반면 선종은 교리를 읽고 이해하지 못해도 마음을 갈고 닦으며
'돈 거래는 하지마라, 돈도 잃고 친구도 잃는다.' 그러나 현실은 꼭 그렇지 않다. 거래를 하고 싶지 않아도 '돈이 필요하니까' 부탁을 하고 막상 부탁을 받으면 거절하기가 만만치 않다.나는 어릴 때부터 부모 친척들이 그리고 변호사 일을 이십여 년 하면서 수많은 '잃음'과 그로 인한 상처와 고통을 보아왔기에 나름 하나의 원칙을 정했다. 즉 빌려주면서 겉으로는 받을 기약을 확실히 정하지만 내심으로는 그 돈을 받지 않아도 좋을 만큼만 빌려준다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나중에 받으려는 기대가 없으니
터전과 바탕은 고정된 것이 아니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사단의 발생은 만단의 작용적 시점에서 결정된다. 하지만 이 또한 변화무상의 모양을 지닌다. 항상 출발이 있을 뿐이다. 인간사는 더욱 그렇다. 보수의 가치 또한 불변이 아니다. 그러므로 괴멸이나 타락하는 쪽으로 변해서는 안 된다.보수의 운용이 다를 뿐이다. 참시부검까지 이르거나 대상자의 의연함과는 구별돼야 한다. 죽음을 백 번하더라도 혼은 변함이 없다. 자기의 혼은 남아 있다. 공용의 것이 아니기에 모두의 터전은 있으나 방편의 것이다. 방편은 모태와 본연을 상징하며
얼마 전, 미국 트럼프 대통령이 방한했을 때 그를 접대한 국빈만찬메뉴가 매스컴에 화제가 되었던 적이 있었다. 그 중에서도 특히 360년 된 씨간장으로 만든 한우 갈비의 간장소스를 두고는 세계 각국의 언론이 격찬을 아끼지 않았다.간장이 360년이 되었다함은 미국의 역사보다도 오래된 간장이며, 조선 숙종의 즉위 이전에 만들어졌다는 말이기도 하다. 이 씨간장을 제공한 담양의 기순도 식품명인에 의하면 씨간장은 집안에서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대물림하는 소중한 존재로 매년 집안에서 만든 간장 중 가장 좋은 진장을 조금씩 첨가해 떨어지지 않도록
잇새에 낀 음식 찌꺼기를 제거하기 위해 이쑤시개를 찾았다. 뾰족한 끝으로 잇새를 쑤신다. 시원하다. 갑갑함이 사라진다. 작은 찌꺼기가 딸려 나온다. 괜스레 의기양양해 진다. 이쑤시개 하나로 의기양양해 질 수 있다니 신기하다. 이쑤시개가 무엇이기에 이토록 의기양양해 질 수 있을까?뇌리 속에 남아있는 이쑤시개의 가장 강력한 이미지는 영화 영웅본색에 나왔던 이쑤시개다. 영화 속에서 주윤발은 이쑤시개를 입에 물고 등장한다. 말을 할 때 이쑤시개를 좌우로 옮겨가며 입을 씰룩거리는 모습이 정말로 멋져 보였다. 이 모습에 반한 많은 한국 남성들
봄은 빠르고 가을은 머뭇거림이다. 어 하는 순간 봄은 왔다 달아나지만, 가을은 바람에 순한 하늘의 구름과 여위어 가는 강물에서 흐느끼듯 떠는 윤슬과, 물 든 나뭇잎이나 여문 씨를 토하는 열매에 한참 동안이나 머뭇거리고 있다. 머뭇거린다는 것은 곧 떠날 것이며, 아주 한참이나 멀리 떠나 있을 것이라는 몸짓이다. 그래서 너무 빠르게 함부로 흘려보낸 봄과 여름이 이제야 들통 나고 아쉬워서 세상 곳곳에 빗나간 인연의 눈물처럼 가을은 물들고 있다.가을은 기다리는 것보다 떠나는 것이 좋다. 낮선 도시에서 보게 되는 낡은 여인숙 간판처럼 가을은
걷는 인간과 죽어도 안 걷는 인간의 미래는 하늘과 땅 차이라고 한다. 서양의 유명한 철학자들은 전형적인 걷는 인간들이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제자들과 같이 걸으면서 사색하고 대화했고 칸트도 매일 오후 같은 시간에 같은 지점을 걸었다. 독일 하이델베르그에 있는 '철학자의 길'에서는 대문호 괴테와 철학자 헤겔, 야스퍼스가 산책을 했다.걸으면 뇌에 혈액과 산소 공급이 원활해져서 아이디어와 기획력이 좋아진다. 책상 머리에 앉아서 오랜 시간 고민하던 것이 밖에 나가서 잠깐 걷는 동안에 해결되는 경우가 많다. 아프리카의 마사이족은
적폐와 번뇌로 우리의 몸은 가득 고혈압 증후를 일으키고 있다. 몸이 불어나는 대신 멍멍하고 머리는 판단을 그르친다. 적폐가 무엇인가? 누구나 제 몸에 쌓인 찌거기를 뜻한다. 몸에 생긴 노폐물을 여과해 폐출시키지 않고서는 병에 이른다. 병도 그 가지 수가 많은 것은 사람마다 개성이 다른 것과 같다. 나라의 정치도 이와 같다고 보는 것이다.지도자로서 번뇌로 적폐를 청산한다는 것은 발전 충전의 에너지를 가용하는데 한계가 있다. 안보위기에 처한 우리나라는 고품질 에너지여야만 생명을 온전히 보전할 수 있다. 이러한 힘은 과히 무한대의 힘이며
예전에 시어머니들 사이에 받아들이지 말아야 할 며느리 직업 1위가 교사라는 말이 있었다. 교사 며느리가 집안에 들어오면 시어머니를 마치 학생 다루듯이 다루고, 학생들에게 명령하듯이 시댁 식구들에게도 명령하고, 퇴근해서 오면 마치 학생들의 숙제 검사하듯 시어머니가 그날 할 일을 다 했는지 일일이 다니며 검사하니 교사 며느리는 절대 사절한다고 했다.내 친구 중의 한 명도 결혼 전에 시댁에서 반대가 심했는데 알고 보니 선생 며느리가 들어오면 시어른에게 명령하기 좋아하고 직장에서 일하고 돌아오면 살림에 소홀하다고 시어머니 될 분이 극구 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