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석 전 거제문인협회장
김한석 전 거제문인협회장

봄이 오면 온통 연분홍빛 가슴이 물결치던 한때가 우리들의 눈에 가득해진다. 2002년 월드컵 축구 세계4강 진출의 그때, 그 환희는 더더욱 눈에 선하다. 골목골목이 아니라 진짜 가슴가슴마다 거리거리마다 한국민의 열띤 기쁨이 과히 충천하지 않았던가. 그때도 태극기만은 우리 민족의 국적과 혼의 상징으로 나부꼈던 실로 위대한 승리의 고향이었다.

이번 평창 동계올림픽에 태극기를 앞세우지 못하는 입장식은 올림픽 개최국으로서 아쉬움이 남는다. 평화와 통일은 이념이 아니며 그것은 오로지 실천에서 오는 것이다. 조급하게 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다. 모든 정황을 뛰어넘은 실천은 태극기의 상징적 존엄에 대한 맹세다. 독립의 징표로 손에 태극기를 들고 만세를 외쳤던 3.1운동의 날부터 태극기는 세계인의 책무를 다짐하며 나라의 터를 닦았던 상징이다.

3.1독립운동의 영향하에 조국 대한민국을 수립하고 만천하에 한국의 독립을 출범한 상징이 태극기다. 우리들은 2월9일 평창 동계올림픽이 평화적 남북 통일의 계기를 강화하고 대한민국이 개최국으로서 국격을 공고히 하며 경제의 글로벌 가치를 현저히 높혀 상위 선진국 진입을 위해 북의 핵에 자리를 넘겨줘서는 안 된다.

중국과 미국을 따로 의식하고 여기에 자주정신을 놓친다면 더 큰 장애가 될 수 있다. 통일의 발판을 놓쳐서는 안 된다. 더 다가서야 한다.

폭언·막말·보복심리 등은 불행하다. 우리들의 삶에 도움이 되지 않는 말들이다. 이러한 말은 결코 바라는 목적을 가져다 주지 못한다. 그것은 마치 올림픽 개최의 주도적 정신을 모독하는 폭언과 같다. 누구나 몸을 해치는 독약을 원치 않으며 생명을 구하는 명약을 원한다. 스스로 명약을 착각하는 본성을 저버리는 일이 더 문제다. 나약하기 짝이 없는 행동이 참회의 실천으로 바른 힘을 얻을 때 우리들의 희망은 곧 성취될 수 있다.

북핵에 대한 진정한 힘이 있다면 아무도 폭언을 들어줘서도 안 된다. 미리 겁을 먹는 소인배가 되거나 자존자강을 잃어버린 길을 택할 수가 없는 것이다. 북한의 인민을 사랑해도 일인체제의 질곡을 우리 모두 원하지 않는다. 더구나 우리들은 거기 들어가서 자유를 잃은 노예적 삶을 원치 않는다. 강해야 한다는 것은 사랑을 더욱 결속하는 의미다.

정당·단체·사회 등은 물질적 진화 개념이며 민주·대의·자유·성장 등은 정신적 성장을 뜻한다. 따라서 대의 자유시장 민주주의는 가능하지만 사회 민주주의 독재주의 등은 존속이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민주주의의 가치관에 따라서 보수도 진보도 변화의 가치가 다르다.

핵을 거머쥐고 다된 것처럼 오만하거나 자만해서는 안 된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 스스로를 구속하는 핵의 노예가 될 수 없다. 속아서는 안 된다. 우리가 우리의 핵을 우리 스스로 만들 수 있어야 한다. 사상과 이념을 능가하는 자성적 삶의 가치는 종교에 버금가는 최후의 최고의 구도이며 인류애의 거두보라고 할 수 있다.

태극기는 문화이며 지도는 고정된 원석으로서 이 위에 펼쳐낸 문화가 태극기다. 본능은 중심을 찾을 때 타락을 면한다. 사회적 고민에서 벗어날 수 있다. 북핵보다 경제의 우위에 와있는 우리들은 화랑도와 두레정신을 이어받아 핵심적인 나눔의 힘이 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욕심을 버린 포용의 지혜를 잘 안다. 자유만이 핵을 능가할 수 있다. 핵만이 자위의 수단이 아니다. 핵이 나라를 지킨다면 문화의 가치는 핵을 억제할 뿐만 아니라 핵의 능력을 대체해낼 수가 있다. 여기에는 온 국민의 합치와 단결이 약속돼야 한다.

북핵에 대한 한미혈맹으로서 트럼프의 선제적 일침이 가해졌기 때문에 끝내 해방전야 같은 국제정세가 되어 다행이다. 우리는 더 강해져야 한다. 통일을 위한 북핵의 자제와 자성적 노력과 채찍을 가한 한계치에 이르는 우리들의 모성애적 인내는 평창 올림픽 축제를 위한 명약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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