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석 전 거제문인협회장
김한석 전 거제문인협회장

터전과 바탕은 고정된 것이 아니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사단의 발생은 만단의 작용적 시점에서 결정된다. 하지만 이 또한 변화무상의 모양을 지닌다. 항상 출발이 있을 뿐이다. 인간사는 더욱 그렇다. 보수의 가치 또한 불변이 아니다. 그러므로 괴멸이나 타락하는 쪽으로 변해서는 안 된다.

보수의 운용이 다를 뿐이다. 참시부검까지 이르거나 대상자의 의연함과는 구별돼야 한다. 죽음을 백 번하더라도 혼은 변함이 없다. 자기의 혼은 남아 있다. 공용의 것이 아니기에 모두의 터전은 있으나 방편의 것이다. 방편은 모태와 본연을 상징하며 옹호한다. 악순환의 시대적 과오는 당사자들끼리 참회로 화합하고 자아적 성찰로 풀어야 한다. 모세의 가나안을 염원한 에짚트 탈출은 모반과 참극에 있지 않았다. 그것은 오로지 진취와 노력에서 새 땅이 갈구된 것이다. 부처님은 오예를 탓하지 않았으며 보은을 가르치며 선자에게도 타일렀다. 큰 도량을 가지라고. 흔히 말하는 대승적 관점이 곧 구원(해결)이 됨을 이르는 말이 아닐까? 속담에, 살던 샘물에 스스로 침 못 뱉는다고. 우리가 가야 할 길은 함께 가는 길이다. 길은 인정하는데 있다. 자연의 길은 스스로 만든 최고의 미학이다.

이른바 신고리 원자력발전소 5·6호기 공론화위원회가 발표한 5·6호기 건설 재개는 국가발전의 한 양상이다. 하지만 제도권(국회)에서 원전생태계의 이에 대한 독보적인 한국의 원전사업 우수성을 결정 못하는 일은 의원 스스로 반성해야 한다. 거국적 입장에서 보면 입법기관이 무능해진다는 것은 옳지 않다.  제도화의 역사는 숙성의 기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가치가 있다. 그런데 조급한 포플리즘적 변화는 민주주의의 정도가 아니다. 진정한 소수를 인정한다면 더욱 그렇다.

다가오는 지방 선거를 의식하는 당파적 정치현실은 중차대한 국가안보 현실에 도움이 못 된다. 북핵은 지난 11월29일 세계 전역에 미칠 수 있는 대륙간탄도미사일 '화성15호'를 실험발사 함으로서 갈수록 도발이 거세지고 있다. 우리 대외 공조에 의한 대응 수위에 다소 신축성을 보이기도 한다. 결코 북핵에 대한 고삐를 방심해서는 안 된다. 나무가 뿌리째 흔들리지 않는 민의의 총화적 단결은 절실하다.

중국에 대한 친교는 우리들의 절대안보 차원의 생존의 입지에 우선할 수 없다. 미국과의 혈맹적 신뢰에 적극적인 선도적 노력이 필요하다. 자유한국의 경제 문화적 위상이 북한의 참극적 1인체제의 노예가 될 위기는 막아야 한다. 핵무기의 공포감보다 자강력의 상실은 더 무섭다.

가치가 흔들리지 않는 것이라면 이번 JSA(판문점 공동경비구역)을 통해 귀순한 북한 병의 탈북은 자유를 숭상하는 인류 본연의 믿음을 회복하는데 시사하는 바가 크다. 아주대학 권역외상센터 이국종 교수는 현지북한 병이 조준 총격 난사한 총탄으로 장기 파열 등 중태에 빠진 귀순병 오청성(25)의 목숨을 구해냈다.

탈북한 병사의 회복수술 과정에서 북한 사회의 폐쇄성이 그 증거가 명확하게 들어났다. 탈출 병을 구원하는데 정성과 본분을 다한 의료의 자유의지를 폄예한 일부 언급은 옳지 못하다.

트럼프 대통령의 한국 방문 또한 외국 대통령의 입에서 한국의 현대사의 정곡을 들을 수 있었다는 것은 그나마도 다행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한국 방문 당시 국회 연설에서 한국의 진로의 명확성을 북한에 대비해 다음과 같이 말해주고 있다.

"한 민족의 운명은 억압과 고통을 받는 것이 아니라 영광의 자유 속에서 번영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잃어버린 소를 두고 집으로 돌아올 수는 없다. 이때일수록 고삐를 더 단단히 죄어 한 순간도 늦춰서는 안 된다. 끝내 검은 소가 흰 소로 됐을 때 우리들은 함께 주인이 돼 목장의 봄을 이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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