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미광 전 고등학교 교사
김미광 전 고등학교 교사

얼마 전 구정이라고 오래전 제자가 연락을 해왔다. 오랜만에 선생님 얼굴 뵙고 인사를 드리겠다는 것이다. 나는 그러지 말고 아예 식당에서 같이 점심이나 먹자고 했다. 그리고 같은 날 다른 제자에게 또 전화가 왔다. 선생님 찾아뵙겠다고. 그러면 너도 같이 나와 점심이나 하자고 했다. 그래서 뜬금없는 한 모임이 결성돼 우리는 밥집에서 만나게 됐다.

밥집으로 가기 전 나는 문득 이 두 제자의 학창시절을 떠올렸다. 두 학생 다 결코 우수한 모범생은 아니었다. 아니 그 중 한 명은 거의 매일 내게 야단을 맞았고 어떤 날에는 너는 게으른 놈이라 이렇게 게으르게 살다가는 앞으로 졸업을 해도 백수를 면치 못하리라는 모욕에 가까운 비난도 들었다.

또 어떤 한 날을 동아리 활동 시간이었다. 그 학생은 입으로만 일을 하고 주머니에 손을 넣고 빈둥거리며 놀고 있었다. 평소에 말만 들으면 세상에 이런 모범생이 없는데 막상 하는 것을 보면 말뿐이었다. 결국 몇 달을 참다가 나는 속는 느낌이 들어 그 학생을 동아리에서 내쫓아 버렸다.

그리고 그때 내가 아끼고 사랑하는 학생들도 여럿 있었다. 틈틈이 간식도 사 먹이고 좋은 얘기도 해주고 사제지간의 정이란 이런 것이구나 하는 것을 느낄 정도로 참 관계가 좋은 애들이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뺀질이도 학교를 졸업하고 성실한 애도 졸업을 해서 이제는 추억 속의 제자들이 됐다.

그리고 또 몇 년이 흘러 내게 전화를 해서 안부를 묻는 애들 면면을 보니 그때 내가 사랑과 정성을 다해 가르치고 도와준 학생들이 아니라 매일 내게 야단 맞던 학생들이다. 예전에 교직 선배들이 제자들을 키워놓고 나서 보면 나중에 찾아오는 애들은 공부 잘하고 착실했던 학생들이 아니라 말썽 피우고 애 먹여서 매로 때려준 애들이 찾아온다고 했는데 그게 내 교직 생활에도 어김없이 딱 맞아 떨어지니 옛날 말 하나도 틀린 것이 없다.

근데 사실 좀 씁쓸하다. 그렇게 사랑과 정성을 다 해 가르치고 도운 애들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아니 뭐 기대하고 바라는 것은 결코 아니지만, 찾아오는 애들을 보니 잠시 그 애들이 생각난다는 거지. 알다시피 내가 뭐 훌륭한 겨레의 스승도 아니고. 뭘 바라겠는가.

애들은 열두 번도 더 바뀐다. 그렇게 학창시절에는 철딱서니 없고 천방지축 이어서 저것이 사람의 모양이 되겠나 싶었던 애들도 이렇게 어엿한 성인이 돼서 선생이라고 찾아오기까지 한다. 식당에서 이제는 철이 든 어른이 된 아이들을 보면서 사람의 긴 인생 한 토막만 보고 미리 어찌될 거라고 짐작하는 것은 어리석다는 생각을 절절이 했다.

두 제자들은 먹성도 좋았다. 부모가 자식 입에 밥 들어가는 것을 보면 안 먹어도 배가 부르다더니 내가 그랬다. 뭐든 맛있게 먹어주니 자꾸 더 시켜주고 싶었다. 그리고 그들은 기억하지 못할 수도 있지만 나는 또렷이 기억하는 일을 사과하고 싶었다. 선생도 사람인데 실수한 것이 있다면 당연히 사과를 해야 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그래서 그때 너를 동아리에서 내쫓아서 미안하다 했더니, 녀석 전혀 기억조차도 못하고 있다. 그런 일이 있었냐는 반응이다. 에이, 괜히 말했다 싶었다. 오히려 녀석이 나를 위로한다. 선생님 그런 일을 그리 오래 마음에 담아 두면 어쩝니까. 별일도 아니구먼요. 그때는 저도 한 성질 했었죠. 쫓겨나도 쌉니다. 고맙다. 코 찔찔이 고딩이 다 큰 어른이 되어 있었다.

될 성부른 나무는 떡 잎부터 알아본다는 말이 있기는 하지만 오랜 교직의 경험으로 보건데 이 속담이 누구에게나 어떤 상황에서든 딱 맞아 떨어지는 것은 절대로 아니다. 다행한 단계와 굴곡을 거치며 성장하고 발전해 가는 것이 인생이라면 한 단계에서의 행동 특성으로 그 사람의 남은 인생과 삶의 모양을 미리 짐작해 어떤 사람이 될 것이다 하는 것은 큰 오류를 범할 수 있다. 교사는 아이들의 성장 단계 한 부분만 맡아서 보기 때문이다.

오랜 제자들과의 점심, 그 어떤 비싼 음식보다도 더 맛있었다.

저작권자 © 거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