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계수 칼럼위원
김계수 칼럼위원

잘 계시지요? 입춘이 지나고 설이 다가왔는데도 날이 차갑습니다. 한 여름 뜨거웠던 햇빛을 기억하는 터라 이 추위도 이겨낼 수 있고 내가 내 안에서 안녕하여 나 밖의 당신의 안부를 물을 수 있습니다. 스스로는 볼 수 없는 서로의 뒷모습을 훔쳐 가슴에 쟁이며 무던히도 살아왔네요. 곧 설이 다가오고 여전히 불완전한 서로의 모습에 안타깝기만 합니다.

함께 일궈왔던 지난 인생들 속에 당신과 나는 누가 주체이고 객체였을까, 생각해보는 것도 흥미로울 것 같습니다. 평생 동지로 맺은 인연이라 누가 외부이고 내부일 것이 뭐 그리 대수겠습니까. 가정을 이루고 가족으로 이뤄진 사람들은 주체이기도 했다가, 일부러 객체여서 더 행복할 때가 있을 것인데, 생각해보니 당신은 늘 수동적 관객이었군요. 지금 이 시간에도 생계를 꾸리느라 흔한 드라마 방송도 놓치고 사는 당신의 바쁨이 내게는 아픔입니다.

언젠가 당신에게 '이제 내 인생을 찾아 이 직장과 도시를 떠나고 싶어'라고 말했을 때도 두 말 없이 흔쾌히 그러라고 하였지요. 그렇게 말하고 당신의 내부에 순간 일어났을 두려움과 막막함을 일초도 생각하지 않고 아이처럼 좋아한 내가 참 작아 보입니다. 당신이 내가 보는 자리에서는 볼 수 없는 것들까지 안으로 품으며 뿜어 낸 희생을 당연하게 여겨 왔네요. 참 미안한 짓거리였습니다.

설 명절입니다. 마음부터 분주해지는 당신을 봅니다. 나는 기억조차 못하는 아버지 기일을 때맞춰 챙기고 음식을 준비하는 것에 고마운 마음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 마음은 사흘을 넘기지 못했지요. 당신은 하룻밤이라도 친척집에 머무는 것이 많이 불편했을 터인데도 나는 편히 주체 노릇만 했네요. 가장이 뭐그리 대단한 것이라고. 그러고 보면 당신의 불편들이 모여 수많은 명절들을 무사히 넘길 수 있었네요. 참 고맙습니다.

모든 것을 주고 안으며 서로 바라볼 수 있는 부부라 당연히 생각했지만, 우리가 죽을 때까지 서로의 안과 밖을 다 보지 못할 존재라는 결론에 다다르면 갑자기 급해집니다. 묵묵히 따라준 당신의 사랑에 보답할 방법이 많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얄팍한 수를 생각해 봅니다. 자식이 독립하고 나간 텅 빈 집 구석구석에 당신의 허전함과 외로움과 서러움이 곰팡이처럼 자라고 있습니다.

저 많은 소외를 어떻게 할까요? 당신의 아름다웠던 청춘에서 벗겨 내려진 저 많은 꿈들을 어떻게 다시 빛나게 할까요? 그 꿈이 어디 크기나 했던가요, 그냥 싸우지 말고 잘 살고 싶다는 것이었지요. 젊던 날, 당신이 내게 소원했던 꿈이 너무 소박해 오늘은 무거운 죄인으로 살아야겠습니다. 당신의 꿈을 아껴야겠습니다.

나보다 당신이 더 옳습니다. 우리는 주체인 동시에 객체였는데 나만 남자라는 이유로 주체인 척 했군요. 당신이 없었다면 인생을 달뜨게 했던 날들이 몇이나 있었을까요, 우리의 대화가 평화적으로 끝낼 날이 얼마나 있었을까요, 논리에 취약한 내가 큰 소리로 제압했던 순간을 당신은 어떻게 이겨 내셨을까, 생각하면 스스로 아름다운 시절을 만든 기억은 하나도 발견하기 힘듭니다.

서로 나이가 들면서 당신의 모습에 내가 복잡하게 얽혀 있고, 나의 행동 범위에 아름답게 나타나는 당신의 흔적을 보면서 그래도 아름다운 이야기 하나쯤은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언제나 나의 맞은편에 서 있었던 당신이었지만, 나의 뒷모습까지도 알아채는 당신이 고맙고 미안하고 자랑스럽습니다. 부부는 서로를 오래 바라보고 대체 불가능한 고유성과 유일한 존재인 것입니다. 당신이 그렇습니다. 내가 앞으로 하는 일에서 항상 존재할 것은 당신을 바라보며 내게서 놓치지 않는 것이겠지요. 이번 설 연휴가 끝나면 젊은 날 즐겨 들었던 음악을 펼쳐 놓고 막춤이나 실컷 추실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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