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미광 전 고등학교 교사
김미광 전 고등학교 교사

예전에 시어머니들 사이에 받아들이지 말아야 할 며느리 직업 1위가 교사라는 말이 있었다. 교사 며느리가 집안에 들어오면 시어머니를 마치 학생 다루듯이 다루고, 학생들에게 명령하듯이 시댁 식구들에게도 명령하고, 퇴근해서 오면 마치 학생들의 숙제 검사하듯 시어머니가 그날 할 일을 다 했는지 일일이 다니며 검사하니 교사 며느리는 절대 사절한다고 했다.

내 친구 중의 한 명도 결혼 전에 시댁에서 반대가 심했는데 알고 보니 선생 며느리가 들어오면 시어른에게 명령하기 좋아하고 직장에서 일하고 돌아오면 살림에 소홀하다고 시어머니 될 분이 극구 반대한다는 것이었다. 어쨌든 그 친구는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을 했는데 그가 시어른들에게 명령조로 얘기하고 시댁 식구들을 학생들 가르치듯 가르쳤는지는 안 봐서 모르는 일이고.

나는 거의 30년을 중고등학교 교사로 있었다. 결코 누구에게도 명령하거나 가르치는 투로 말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누구보다도 내 자신이 누가 내게 명령하는 것을 싫어하고 다른 이로부터 지루한 가르침을 받는 것을 결단코 싫어하는 고로 나도 그렇게 하지 않는다고 나름 자부했다. 그러나 어디 제 버릇 개주랴.

어느 날 내가 하는 언행을 살펴보니 나도 모르게 내가 주변 사람들에게 가르치려 들고 명령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옴마, 나는 완전히 짜증나는 인간이었다. 일단 무슨 사건이나 일이 있으면 학생들에게 설명하듯 조목조목 일의 시작부터 중간단계 그리고 결말까지 설명하고 이 일에서 우리가 배워야할 점이나 적용해야할 것까지 요점 정리까지 착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나를 오랫동안 알아 온 주변의 사람들은 다들 익숙해져서 문제점을 느끼지 못할 수도 있지만 나를 처음 만난 사람들은 대부분 매끄러운 일상의 대화가 아니니 살짝 거슬려하고 불편해 했다.

습관은 큰 힘을 가지고 있는데 좋은 습관이 몸에 배여 삶을 좋은 방향으로 이끌어가는 것도 있지만 나처럼 직업에서 비롯된 나쁜 습관도 있기 마련이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말처럼 나의 30년 묵은 습관은 완전히 몸에 배인 나쁜 버릇이 되어 직장을 그만 두어도 그 버릇을 그대로 이어가는 것이었다.

언젠가는 이런 일도 있었다. 아파트 엘리베이터를 타고 있었는데 중간에 초등학교 저학년으로 보이는 한 꼬마가 탔다. 처음 보는 아이였다. 그런데 그 아이가 나를 보더니 “안녕하세요?” 하고 꾸벅 인사를 하는 게 아닌가. 혹시 아는 앤가 싶어 다시 한 번 아이의 얼굴을 보았으나 분명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얘. 너, 나 아니?” 내가 물었다. 아이의 대답이, “아니요” 였다.

그런데 알지도 못하면서 왜 인사를 하냐고 물었더니 아이의 대답이, “그냥. 선생님 같아서요”였다. 예리한 관찰력을 가진 아이의 대답에 기가 막혀서 웃었다. 도대체 내가 얼마나 근엄한 얼굴을 하고 얼마나 딱딱한 선생의 자세를 가지고 있었으면 처음 보는 초등학교 아이도 나를 한 눈에 교사로 알아보고 인사를 하는가 말이다. 가만 보니 나는 언제 어디서든 가르칠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이었다. 그 주제가 뭐든 일단은 지식이나 정보를 제공하고 거기서 우리가 받아들여야 할 교훈을 끄집어내야 대화가 순조롭다고 여기는 그야말로 ‘선생병’이다.

내가 이런 작태를 가장 심하게 부리는 대상은 바로 어머니였다. 어느 날 보니, 나는 나의 어머니를 마치 학생 가르치듯 가르치고 훈계하고 쪽지에 번호까지 매겨서 관리를 하고 있었다. 교직에 있을 때 학생들 상담카드 아래에 번호를 붙여 그 학생의 특성과 그에게 해야 할 말과 필요한 것들을 적어놓듯 나의 핸드폰에는 어머니에게 해당하는 메모란이 있어서 거기다 어머니에 관한 이것저것을 번호 달아서 적어놓고 다 한 것은 ○표, 진행은 △, 아직 안한 것은 ×, 요러고 놀고 있었다.

교사인 며느리만 불편한 것이 아니라 교사인 딸도 불편하고 짜증나긴 매 한가지다. 그동안 나의 어머니가 얼마나 나를 많이 참았는지가 문득 깨달아졌다. 딸이니까 참았지 다른 사람이었으면 자존심 상해서라도 아마 뒤도 돌아보지 않고 인간관계를 깨버렸을 것이다.

이제 나이도 들만큼 들었고 직장도 그만두었으니 이 ‘선생병’은 버리고자 한다. 오래 되어 이미 하나의 습관이 되어버렸을지도 모르는 행동을 하루아침에 고치기는 어려울 수 있으나 일단 인지를 하면 시작이 반이라고 서서히 버릇이 사라지리라 생각한다. 물론 시행착오를 겪을 각오도 돼있다. 그 동안 나를 참아 준 주변 지인들에게 ‘엄지 척’을 올리는 바이다. 그동안 이해해주느라 수고들 했노라. 제 버릇을 개한테 줄 수 없다는 말이 나올 만큼 오랜 버릇은 고치기가 힘들겠지만 백 세 시대를 사는 나는 남은 오십 년을 위해 기꺼이 지난 30년의 버릇을 버리고 산뜻하게 살아가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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