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미광 칼럼위원/전 고등학교 교사
김미광 칼럼위원/전 고등학교 교사

2년 전까지도 나는 종이신문을 받아봤다. 인터넷으로도 얼마든지 뉴스를 볼 수 있지만 종이신문에 대한 어떤 추억이랄까. 익숙한 것을 버리지 못하는 습관이라 해도 좋겠다. 아무튼 다른 종류의 두 가지 신문을 받아보다가 결국 나도 인터넷 신문으로 갈아탔다.

인터넷으로 기사를 보니 신문을 가지고 다닐 필요가 없어서 좋았고, 언제 어디서든 다양한 기사를 읽을 수 있는 장점이 있었다. 게다가 원하는 기사를 바로 검색해서 읽을 수 있고 그 기사를 카카오톡이나 다른 SNS 계정으로 즉시 다른 사람에게 보낼 수 있으니 인터넷이 얼마나 편리한지. 나는 주로 신문 사설이나 논평만 읽고 신문의 정치적 성향 따위는 별로 관심을 두지 않는 편이다.

그러나 인터넷 신문기사의 빠르고 편리한 것 뒤에 불편한 그림자가 있었으니 바로 댓글이다. 기사 내용만 읽다가 작년부터 시간이 많아지면서 어쩌다 댓글을 읽기 시작했는데 '아차, 잘못했다' 싶었다. 한때 우리나라에 '선글운동'이라는 것을 한 적이 있어서 사람들의 댓글 다는 수준이 좀 나아졌으려니 했는데 내가 보는 바로는 전혀 아니었다. 좋은 글을 잘 읽고 댓글 때문에 기분이 나빠지는 경우가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심지어 어떤 신문에 한 노 교수가 유명시인의 시에 대한 회상을 적은 글이 있었는데 그 기사의 댓글을 보고 기가 막혔다. 노 교수는 그 시를 통해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내용을 적었을 뿐인데 댓글 내용은 하나 같이 그 기사가 실린 신문 자체를 욕하는 내용에다가 얼굴도 모르는, 어쩌면 어머니뻘일 수도 있는 교수를 인격적으로 비하하는 내용부터 그 가족들까지 깡그리 신문의 정치적 성향과 같은 통속으로 몰아붙여 입에도 담을 수 없는 비하발언을 했다. 어쩌면 그 글을 읽는 사람이 평생 잊혀지지 않을 그런 악담도 있었다.

어떤 특정 신문 기사에는 누구 말마따나 댓글을 다는 부대가 따로 있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댓글의 내용이 아주 일관성 있게 한 가지 정치색을 띠고 있었다. 항상 하는 말이지만 나는 정치에는 일자무식일 뿐더러 관심도 없다. 그런데 댓글을 보면서 어떤 특정 정당의 정책에 반감이 생기기까지 했다. 댓글을 읽다보면 댓글 다는 사람의 심리나 목적이 읽혀질 때도 있는데 그 몇 가지를 나름 압축해 봤다.

먼저, 기사에 대해 자신의 진솔한 의견을 피력하거나 기사를 쓴 사람을 격려하고 때로 자신의 의견과 기사가 다르면 기사의 관점을 다른 각도에서 보도록 정중히 조언하는 제대로 된 독자들이다.

두 번째, 기사의 내용과 상관없이 특정 정치색을 띄는 댓글을 다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무슨 얘기로 시작을 하건 끝은 자기가 지지하는 정당이나 정치에 관한 것으로 끝을 맺고 기사의 좋고 나쁨,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비난한다.

세 번째, 어떤 사적인 목적이나 이윤 추구의 이유로 광고성 댓글을 다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기사 내용과 상관없이 광고 사이트나 카페를 클릭하도록 그럴듯한 글로 사람들을 유도한다.

네 번째, 기사 내용과 상관없이 일단 부정적인 댓글을 다는 사람들이다. 어떤 특정한 정치색이나 개인적 의견을 내놓으려는 것이 아니라 무조건 비판적이고 냉소적인 내용으로 댓글을 쓴다. 이런 사람들의 글을 읽고 있으면 상당히 우울해지고 짜증이 난다. 나는 이런 사람들은 그 삶도 부정적이고 힘들 것이라 예상한다. 마치 자신의 삶이 뜻대로 잘 풀리지 않아 어딘가에 화풀이 하는 사람들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인터넷 공간이라는 익명성이 아주 잘 보장되는 공간에서 아무도 자신을 모를 것이라고 생각하고 마구 적는 댓글에서도 그 사람의 인격과 지적·정신적 수준이 엿보인다. 성경에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한다'고 했다. 자신이 쓴 글에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자신도 모르게 드러낸다는 말이다.

2018년 새해가 밝았다. 새해엔 정말로 댓글 같은 댓글을 읽고 싶다면 지나친 욕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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