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계수 칼럼위원
김계수 칼럼위원

꽃피는 소문만큼 빠른 게 또 있을까. 여기 저기 꽃 피었다고 가슴마다 소문으로 전해질 때 이미 그 가슴은 꽃 색으로 환하게 문질러져 있다. 내가 있는 곳에서 피는 꽃도 좋지만 멀리서 전해지는 당신의 꽃 소식은 하얗고 붉고 노란 마음까지 전해져 더 포근하다.

이미 발걸음 절반은 소식을 전한 사람에게로 향하고 있다. 이리저리 흔들리는 봄바람처럼 사람의 꽃걸음들이 사방에 소복하다.

꽃은 꽃집에서만 파는 것이 아니다. 재래시장 좌판에는 하얀 분 바른 진달래 꽃잎이 인기다. 진달래 피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 나이 드신 여인들은 분홍 꽃잎을 곱게 따서 생것을 팔거나 전을 굽거나, 꽃과 밀가루를 섞어 봉지마다 포장해 팔기도 한다.

꽃을 먹을 수 있다는 것이 다행스럽고 별미인지는 모르겠으나 어리둥절한 꽃의 얼굴을 보는 것은 마음이 불편하고 우울하다. 어린 꽃잎들의 어리둥절한 얼굴을 보고나니 좌판에 드러누워 있는 모든 것들이 불편하기 시작한다.

동그랗고 생생한 눈을 가진 고등어가 그렇고 커다란 고무 다라이에 담긴 활어들의 발버둥치는 몸짓이 그렇고, 정육점에 붉은 고깃덩어리들의 잃어버린 움직임이 그렇다. 아, 정육점 벽면에 걸린 사진 속 푸른 들판에 한가로이 풀 뜯는 소의 동그란 눈망울은 또 어쩌란 말인가.

몸속으로 들어가는 모든 것들의 '죽음'으로 인해 사람의 '삶'을 이어가야 하는 지속적 순환의 사실들이 아프기 시작한다. 그렇다고 특별히 고기를 싫어하거나 채식주의자도 아니면서 괜한 꼴값이다 싶다가도 밥이 되는 모든 죽음들에 대해 익숙해진 편한 관념을 벗어둔다.       

'소의 커다란 눈은 무언가 말하고 있는 듯한데 / 나에겐 알아들을 수 있는 귀가 없다. 소가 가진 말은 다 눈에 들어있는 것 같다. // 말은 눈물처럼 떨어질 듯 그렁그렁 달려 있는데 / 몸 밖으로 나오는 길은 어디에도 없다. // 마음이 한 움큼씩 뽑혀 나오도록 울어보지만 / 말은 눈 속에서 꿈쩍도 하지 않는다. // 수천만 년 말을 가두어 두고 / 그저 끔벅거리고만 있는 / 오, 저렇게도 순하고 동그란 감옥이여.(중략)' 김기택 시인의 시 '소' 의 일부이다.

소는 개나 고양이처럼 사람 가까이 치근대거나 가볍게 행동하지 않으면서 묵직한 걸음이나 몸짓만큼 큰 믿음을 준다. 아주 오래 전부터 사람 곁에 집 기둥처럼 버텨온 소의 동그란 눈망울을 바라보고 있으면 소의 말을 듣는 듯 마음이 순해진다. 생명을 잇기 위해 그들의 죽음이 밥이 되어야하는 세상을 저렇게도 순하고 동그란 감옥의 눈망울은 무엇으로 표현할까.

얼마 전 도축을 앞둔 소 한 마리가 사람들을 공격해 1명이 숨지고 1명이 크게 다치는 사고가 있었다. 소는 도축장을 피해 멀리 야산으로 달아났지만 마취총을 맞고 다시 잡혔단다.

뉴스를 접하는 순간 판단하기 어려운 혼란을 겪었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랬으리라. 잃어버린 사람의 소중한 목숨과 죽음을 피하려는 소의 처절한 몸부림, 두 가지를 저울질하며 한참동안 애잔한 마음에 젖었다.

야산으로 달아났던 치열함 뒤에 순한 눈망울로 사람을 바라보며 외치고 싶었던 소의 말이 궁금한 것이다. 그러면서 나를 위해 밥이 되어야 했던 무수한 '죽음'들에 대해 허약한 경의를 표한다.

봄을 맞은 누구의 사랑이었던 얇고 환한 분홍의 꽃잎이 고소한 기름에 타고 있다. 넓은 바다를 헤엄치던 파릇한 비늘을 거두고 누운 고등어의 눈이 희미해져 간다. 얼마나 더 신선해야 하는지 붉은 형광등을 안고 비틀어져 가는 근육들의 눈망울을 기억한다.

어떤 경우에도 죽음이 삶을 이어가는 밥이 되어야 하는 명제가 생각없이 떳떳하여서는 안 된다. 소의 침묵이 더 이상 순한 침묵이 아니기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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