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우 수필가
이동우 수필가

가장 인상깊게 남아있는 봄의 기억은 고등학교 1학년 때다. 나는 경기도 안성에 있는 안법고등학교에 입학을 했다. 1909년에 개교한 안법고등학교는 지역의 사립명문으로 경기도는 물론 충북·충남 등 각지에서 학생들이 몰려들었다. 하지만 명문학교라는 점보다 더 마음에 든 것은 교정에 흐드러지게 피던 개나리와 벚꽃이었다.

주택가에서 교문으로 이어지는 진입로에는 개나리가 담장을 따라 피었다. 학교 진입로는 대략 50미터 정도였다. 그 길을 따라 개나리가 그야말로 흐드러지게 피었다. 담장 위에서 가지를 늘어뜨려 피어나던 개나리는 장관이었다.

학교 운동장에는 벚나무가 있었다. 벚나무가 해를 등지고 그림자를 만들면 학교 운동장을 반이나 뒤덮을 정도로 무성했다. 벚꽃은 교실에 앉아서도 훤히 보였다. 수업시간에 창문을 통해 벚꽃을 하염없이 바라보던 기억이 선명하다. 봄바람에 벚꽃이 떨어지는 모습은 너무나도 아름다웠다. 흩날리는 벚꽃 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하얀 꽃비가 쏟아졌다. 그 모습은 다른 세상에 와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신작로에 대한 기억도 있다. 논과 밭 사이로 나있는 시골의 좁은 길만 봐오던 나에게 양쪽으로 버스가 왕래해도 충분한 넓은 신작로는 꿈의 길이었고 희망의 길이었다. 흙먼지가 날리는 신작로를 보면 심훈의 '상록수'가 떠올랐다. 언젠가 나도 '상록수' 같은 소설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자전거로 신작로를 달리다가 시골의 작은 중학교에 간 적도 있다. 같은 반 친구와 함께 지전거를 타고 달리다가 친구가 사는 동네까지 가버린 것이다. 친구가 중학교 때 음악선생님을 만나러 간다고 해서 나도 따라나섰다.

우리는 교실 뒤편의 작은 화단 앞에 앉아 고등학교 생활을 얘기했고 선생님은 미소를 머금은 채 우리의 이야기를 들어주셨다. 선생님의 대학생활에 대한 얘기도 들려 주셨다. 그러면서 우리가 앞으로 어떤 꿈을 품고 살아야 하는지 말씀도 해주셨다.

고등학교 1학년의 봄이 이토록 머릿속에 깊게 자리하고 있는 것은 그때까지 봐왔던 봄과는 다른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시골에서 졸업한 나에게 안성은 새롭고 낯선 도시였다. 처음으로 부모님과 떨어져 혼자 독립해 살던 시기였고 친구들도 낯설기만 했다.

봄은 늘 설레게 다가왔다. 새싹이 돋아나던 들판을 걸어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봄마다 새 학년이 됐다. 중학교, 고등학교 그리고 대학교도 봄에 입학했다. 매년 봄이 왔지만 우리는 항상 해 봄을 맞이했다. 새 봄은 늘 가슴을 설레게 했다. 새로운 희망을 줬고 새로운 용기를 심어줬다. 초등학교 시절의 봄은 기척도 없이 산속에 홀로 피었다가 사라지는 진달래 꽃잎처럼 희미한 기억만을 남긴 채 지나갔고, 중학교 시절의 봄은 사춘기의 홍역을 앓았다.

설레는 마음으로 들어간 대학시절의 봄은 아련함으로 기억된다. 첫 MT, 첫 미팅 그리고 첫 사랑. 좋아한다는 말 한마디 못하고 떠나버린 첫 사랑처럼 대학시절의 봄은 아쉬움만 가득하다.

봄을 느끼기도 전에 봄날은 늘 지나가지만 그래도 봄에 만났던 설렘과 새로움은 기억속에 남아있다. 해마다 긴긴 겨울을 이기고 찾아오는 봄을 새로운 마음과 기분으로 맞는다. 지금까지 지나왔던 봄처럼 이번 봄도 아쉬움을 남기고 지나가겠지만 학창시절의 봄을 기억하듯 이 봄도 새로운 기억으로 남을 것이다.

며칠 전 봄꽃을 촬영하기 위해 카메라를 들고 집을 나섰다. 스마트폰으로 전국의 봄꽃 소식이 실시간으로 전송되는 세상이지만 직접 몸으로 봄을 느껴보고 싶었다. 길가에 핀 목련·개나리를 촬영하다가 문득 요즘 학생들은 봄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궁금했다. 그 아이들도 나처럼 설렘과 새로움으로 봄을 기억할까 생각하다가 갑자기 가슴 한쪽이 답답해지는 걸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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