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성(熟成)
숙성(熟成)
  • 김미광 칼럼위원
  • 승인 2017.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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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광 전 고등학교 교사
김미광 전 고등학교 교사

얼마 전, 미국 트럼프 대통령이 방한했을 때 그를 접대한 국빈만찬메뉴가 매스컴에 화제가 되었던 적이 있었다. 그 중에서도 특히 360년 된 씨간장으로 만든 한우 갈비의 간장소스를 두고는 세계 각국의 언론이 격찬을 아끼지 않았다.

간장이 360년이 되었다함은 미국의 역사보다도 오래된 간장이며, 조선 숙종의 즉위 이전에 만들어졌다는 말이기도 하다. 이 씨간장을 제공한 담양의 기순도 식품명인에 의하면 씨간장은 집안에서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대물림하는 소중한 존재로 매년 집안에서 만든 간장 중 가장 좋은 진장을 조금씩 첨가해 떨어지지 않도록 대대로 보관한단다.

서양의 대표적 식품인 치즈가 만들어지는 과정에도 숙성 과정은 반드시 필요하다. 숙성시키지 않는 몇 가지 치즈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치즈는 숙성을 통해 미생물학적, 생화학적 반응이 서로 작용하여 치즈 특유의 풍미를 가지게 된다. 숙성을 통해 수분이 감소하고 유당이 분해되어 pH가 상승하고 지방이 분해되어 감칠맛 나는 치즈가 되는 것이다.

사람 입에 들어가는 대부분의 음식은 유통 기한이 극히 짧다. 특히 수분을 가지고 있는 식품류는 수분 때문에 곰팡이가 나서 한 달을 넘기는 것이 그리 쉽지 않다. 그런데 간장이 300년이 훌쩍 넘었단다. 300년을 넘어선 간장은 세계의 주목을 받으며 우리 같은 서민들은 어찌 생긴 간장인지 쳐다 볼 수도 없을 만큼 귀한 대접을 받는다. 그 이유가 무엇인가. 무엇 때문에 주성분이 물인 그 간장이 300년이 지나도록 상하지 않고 이런 귀한 대접을 받게 하는가. 그것은 간장의 숙성 때문이다. 콩과 물과 소금이 만나 오랜 시간을 거치면서 서로 뒤섞이고 발효되고 숙성과정을 거치면서 불순물이 없어지고 좋은 성분이 생겨서 세상에 없는 귀한 맛을 내는 것이다.

세상의 많은 음식들이 숙성과정을 거쳐 사람의 혀에 착 달라붙는 맛을 내는데 대표적인 것이 우리나라의 젓갈류, 그 젓갈로 만드는 김치도 숙성과정을 거치고 된장, 청국장, 요구르트, 일본의 낫토, 중국의 취두부 등 이름을 다 거론 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음식이 숙성을 거치면서 새로운 맛의 세계로 우리를 이끈다. 심지어 요즘 유명하다는 맛집을 가보면 고기와 소스류까지도 숙성을 거치면서 별미로 거듭난 곳이 많다. 숙성을 통해 이전에 맛보지 못한 맛을 발견하는 것이다.

숙성의 사전적 의미는 ‘미생물이나 효소의 작용 또는 성분 간의 상호작용에 의한 향미성분의 생성 및 식품의 조직변화 등이 일어나 바람직한 식품이 되는 것’을 말한다. 한마디로 숙성이 되려면 갈등으로 뒤섞이고 썩음으로 예전의 성질은 없어지고 새로운 성분으로 거듭나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나는 성숙한 사람이 되는 과정도 앞에서 언급한 간장이나 치즈가 숙성하는 과정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한다. 주변의 사람들과 부대끼면서 상처받고 갈등을 통해 고통 받고 그러면서 자신을 돌아보고 체질이 녹아 변화하고 불순물이 걸러져 성숙한 자아로 거듭나는 것이다. 교사로 있으면서 어린 학생들을 봐도 그랬다. 어려움을 겪고 고통을 받으면서 자란 아이는 대화를 해보면 어딘가 내면의 깊이가 달랐고 자립심이 더 많았다.

반면에 부모의 극진한 보살핌 속에서 온실의 화초처럼 자라 어려움이라고는 도통 모르고 자란 아이는 아이답게 순수했지만 내면의 깊이는 없었고 작은 고통이나 스트레스에도 취약했고 무슨 일이든지 스스로 생각하고 결정하는 법 없이 부모나 교사에게, 혹은 친구에게 의지했다. 그러다가 사춘기를 지나 갈등의 세계에 접어들면 어찌할 바를 몰라 죽니 사니하며 작은 고통에도 굳건하게 견디지 못하고 자포자기 하는 것을 보았다.

어른도 마찬가지다. 성숙한 어른치고 삶이 통째로 흔들리고 영혼이 뿌리째 요통 치는 고통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없었다. 마치 전혀 다른 성분을 가진 물질들이 서로 만나 섞이고 썩고 발효되면서 새로운 경지를 개척하는 것처럼 사람도 그렇다. 내가 가진 타고난 성품이 다른 사람이나 환경에 섞이고 삭혀지면서 나의 원초적이고 지랄 같은 성정이 발효되어 감칠 맛 나는 성품의 사람이 되는 것이다.

살아가다보면 정말 설익은, 얕은 성품의 사람들을 자주 만나게 된다. 어찌 보면 순수하다고도 볼 수 있으나 너무도 얕고 깊이가 없어 일상적인 인사 외에는 더 깊은 대화로 내려갈 수 없는 사람들이다. 정작 본인은 살아가는데 별 어려움이 없을지 모르지만 감칠맛이 없는 이 사람들에게서 나는 매력을 느끼지 못한다. 사람이 살아가는 것에는 너무도 많은 것들이 관여하는 고로 이것이 사람에 관한 전부는 아니긴 하다만 너무도 대조적인 깊이를 가진 사람들을 볼 때마다 내 자신은 삶의 숙성 과정을 거쳤는지, 나는 어떤 맛과 깊이를 가진 사람인지를 돌아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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