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가 혈액암에 걸렸다. 암이라는 소식에 놀라는 나보다 더 덤덤한 친구의 어깨를 두드려주며 잘 이겨내라고 덕담한다. 일주일 후에 정밀검사 결과를 알려왔다. 다행히 다른 곳으로 전이가 되지 않아 눈 주변에 레이저치료만 보름 정도하면 완치 가능하단다. 다행이다.암 발견과 치료로 받게 될 보험금으로 술이나 한 잔 하자며 농을 주고받는다. 20년 전만 해도 ‘암’이라는 진단만 받아도 세상이 무너지는 줄 알았다. 오래 묵은 깊은 병이 아니고서는 완치 가능한 암 환자들이 늘었다. 물론 치료과정을 견디는 환자들의 고통은 말할 수 없이 힘들고 아
편하다. 내 속에 오롯이 나만이 가득하다. 정갈한 시간이 많으니 욕심이 사라진다. 치열하고 맹렬한 타인이 없으니 다툼이 있을 리 없다. 나와 다른 오류와 왜곡을 찾지 않아도 좋고, 또 그것을 지적하거나 지적당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은 내 영혼이 풍만해질 기회다. 그래서 나는 봄을 몇 날 앞두고 과감하게 솔로를 선언한다.글을 쓸 때는 말을 하는 것보다 더 신중해지고 적확하며 쉽고 아름다운 단어를 찾기 위해 노력한다. 마땅한 단어가 떠오르지 않거나 완성문장이 매끄럽지 못하면 몇 번이고 고쳐 쓰고 꿈속에서도 수정을 반복한다. 그러니 상대방
세상에는 단위를 매길 수 없는 것이 여럿 있는데 그 중에 단위의 층수가 복잡하고 높이와 깊이를 어림잡기 어려운 것이 사람의 마음이다.특히 요즘처럼 명확한 미래의 지표가 없는 세상에 살아가는 우리들은 ‘마음’ 하나 곱게 내려놓을 때가 부족하다. 다른 사람의 마음에 내 마음이 곱게 내려놓았다 싶으면 어딘가 기울어져 있고, 그 기울기에 따라 내 마음도 혼란스럽다. 세상과 마음 맞추고 살기 힘들어졌다는 생각이다. 지금까지 살면서 내가 가장 행복했던 날은 언제였을까? 곰곰 생각하면 행복했던 기억보다 슬픈 일들이 더 많다. 이전에는 개인의 행
대부분 자신이 보는 세상이 가장 옳다고 믿고,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이 옳은 진리일 것이라고 쉽게 착각한다. 상반된 주장에 대해 논리를 갖춘 설득으로 관념을 조금씩 조정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다. 흔히 우물 안의 개구리 ‘정저지와(井底之蛙)’인데 자신이 속한 공간, 현재 살고 있는 자신의 시간,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에 집착한 결과다.갈등의 접점에서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공간, 나의 시간, 그리고 지식의 범주 안에서 현상을 판단하고 결정해야하는 경우가 많다. 한 번 결정되면 좀처럼 바꾸려고 하지 않는 것이 또 인
더위와 바람으로, 빗줄기로 요란하던 여름이 하늘 구름 뒤편에 흐릿하게 가물거린다. 새로운 계절의 시작을 알리는 하늘과 구름이 깨끗하다. 가로수 우듬지나 전봇대, 낡은 고철덩어리에 한낮동안 잠시 머물다 사라지는 여름이 주는 공백은 긴장을 풀어준다. 그동안 세상은 얼마나 나와 가까이 있었는지, 세상 사람들의 소리에 둔감했는지, 이름 지을 수 없는 아픈 사연들에 눈감았는지, 옳고 그름의 경계선에서 탈출하기 위해 발버둥 쳤는지 가을이 오면 알려줄 것만 같다. 그래서 가끔 가을은 강력한 종교로 다가온다. 포교하지 않는 강력한 종교, 산이 누
마음의 쓰임은 어디까지일까? 넓은 상수리 잎에 내린 빗방울이 바람에 마르고 사라지듯 하나의 마음이 다 쓰이면 추억이 되는 것일까? 사랑 이별 기쁨 슬픔 아픔 행복, 뭐 이런 마음들이 쓰이고 서로 주고받는 감정으로 세상은 돌아가고 사건들은 만들어진다. 같은 시기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마음의 질량과 느낌이 비슷할 것 같지만, 여기저기 막 터져나오는 사건들에 묻어 있는 마음들은 제각각이다. 나와 생각이 다른 것은 '편견'으로 치부되기 쉽다. 편견이라는 것도 사실 편견의 편견, 즉 편견이 편견의 배후인 셈이다. 어떤 것에도 배후는 늘
“꽃이 피어도 벌과 나비가 사라지고 없는데 시인은 봄이 왔다고 똥을 싸고 있네.”“서민을 갈아서 소세지를 만들고 있는데 시인은 봄이 왔다고 똥만 싸네.”멀리 아는 농부가 농사짓기 힘들다고 신세를 한탄하며 보낸 문자 내용이다. 최근 환경문제를 걱정하면서 선진국이나 대기업의 환경파괴는 결국 가난한 나라와 그 나라의 서민부터 끔찍한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는 함축적인 내용이어서 걱정과 위로의 말을 서로 주며 받았다.꽃이 피고 있다. 진달래가 피고, 개나리가 환하고, 동백은 떨어진 땅에서 봄 하늘을 붉은 몸으로 지탱하여 사위어간다. 바람꽃들도
작년 앞마당에 있던 대봉감 나무는 가을이 되기도 전에 열매를 거의 떨어뜨렸다. 흰가루병과 깍지벌레가 원인이었다. 주택으로 이사를 하고 처음 결실을 기대하던 내게 큰 실망을 안겨 줬다. 넓은 마당에 자리한 감나무 세 그루만 보고 매매계약을 했을 정도다.아파트의 폐쇄적인 편안함 대신에 넓은 잔디마당과 키 큰 감나무로 위안 삼았다. 나무의 아름다움과 가치를 높거나 낮게 구분하진 않지만, 고양이 귀를 닮은 반들반들한 이파리와 웃는 아이 볼살을 닮은 감꽃을 좋아한다. 감나무 이파리에 달빛이 내려앉아 바람에 흔들거리면 마구 흩어지는 달빛을 쫓
아무 기억이 없다. 아픈 자리만 힘 빠진 계절처럼 욱신거린다. 상처를 만져가며 험난함과 위험에서 벗어난 경위를 따져 묻는다. 평생을 한 몸에 붙어 자란 육체와 정신이 바로 서지 않는다. 병원에서 상처를 기운 흔적은 그대로인데 다쳤던 내 기억만 감쪽같이 사라졌다. 난감하다. 술을 과하게 마신 것도 아니고 평소의 행동패턴을 볼 때 과한 행동을 했을 리 만무하다. 나의 상처 경위를 확인하는 방법은 상처를 자세히 보면 알 수 있겠다 싶어 거울을 본다. 거울에서 이내 벗어난다. 당혹감과 부끄러움이 함께 몰려온다.거울 속의 내 모습은 마치 축
2022년 가을이 와서는 바람처럼 물결처럼 흘러간다. 특별한 가을이 아니다. 그저 생애 중 하나의 가을이다, 아주 유별난 가을도 아니다. 그렇게 하나의 계절이 왔을 뿐이다. 그런데 살결에 닿는 바람이 위로처럼 느껴지고, 햇살에 더 오래 서서 거닐고 싶고, 그립다거나 부끄럽다거나 같은 말들을 들꽃 앞에 놓이고 싶다. 굳이 쑥부쟁이와 구절초를 구별하고 싶다. 그냥 들국화라 부르기로 했던 그 꽃들이 제각기 품어내는 가을의 말들을 전해 듣고 싶어진다. 그래서 남자는 가을을 혼자 걸어보고 싶다.가을은 남자에게 어떤 계절인가? 당신의 가을은
집으로 가는 동네 입구에 열녀문이 있던 터를 알리는 표석비가 있다. 허름하고 나무와 풀이 우거져 애써 확인하지 않으면 열녀문을 알리는 표석비인지, 공덕비인지 알 수 없다. 이끼가 심하게 자라 흉물이 돼가고 있다.한때 누군가에게는 아름다운 덕행의 기록이었고 가문의 영광이기까지 했을 터이고, 마을을 책임지고 있는 관리들께는 좋은 관직과 포상이 되었을 것이다.일찍 지아비를 잃은 며느리가 병든 시어머니를 홀로 수발하다가 시어머니가 죽자 3년상을 지냈고 남편을 너무 그리워한 나머지 1년 뒤 젊은 나이에 남편 곁으로 갔다는 대충 그런 내용인데
도저히 피어나지 않을 것 같았던 마른 가시덤불에도 봄이 돋아나고 겨우내 앙상했던 산딸기 가지에도 흰 꽃은 피어나는데 나의 봄은 또 어물쩍 지나가려 한다.4월 여전히 이름 없는 것들도 마구 피어나서 꽃으로 살아가는데 잊어진 이름 하나 생각나지 않는 빈 사랑의 계절, 봄이 또 어물쩍 지나가려 한다. 이럴 수는 없다 싶어, 내 봄을 허무하게 뺏길 수 없다 싶어 독봉산 공원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꽃 피었다고 모여든 사람들보다 각자의 전화기가 더 바쁘다. 벚꽃 아래 지나는 나이 드신 여인들이 ‘하아! 저 봐라! 저 꽃 봐라!’ 꽃 보며 뭐라
장마가 주춤하는 사이 날씨가 너무 덥다. ‘열돔현상’으로 땅 위를 걸어 다닐 엄두가 나지 않는다. 바람은 꽃잎 흔들기를 멈췄고 새소리도 나무 그늘 뒤로 숨어들었다. 오직 강렬한 것은 햇빛, 살아남고자 하는 것들은 스스로 빛이 되든지 태양의 뒤편이 되어야 한다. 에어컨이 쉴새 없이 돌아간다. 공기 속에 숨어 있는 한 치의 냉기까지 건물 안으로 빨아들여 인간의 생존에 헌신해야 한다.그게 기계의 가치다. 냉기를 사람에게 완전히 빼앗긴 힘 빠진 더운 공기가 건물 밖으로 밀려난다. 차가운 것과 섞이지 못하고 마땅히 갈
'그 아이 참 물건이네!' 우리가 사용하는 말투에는 어떤 분야에 특별한 재능을 가졌거나 상식과는 다른 사람의 행동이나 별난 재주를 가진 사람을 일러 '물건이네'라고 표현한다. 또 새로 구입한 제품이나 물건이 생각보다 성능이 우수하거나 가성비가 좋아 만족감을 얻었다면 '이거 물건이네'라고 감탄할 때 사용한다.국어사전의 의미는 일정한 형태를 갖춘 물질적 대상, 사고파는 물품(상품)을 말한다. 더하여 제법 구실을 하는 사람 또는 특이한 사람이라는 의미로 표기돼 있다.그러나 대부분 '물건&
누구나 가슴에 꽃 한 송이 품고 살아간다. 가지의 살갗을 찢어 꽃잎을 올리는 일은 바람과 햇살과 땅의 일, 피어난 꽃송이를 감상하는 일이 단지 내가 하는 일이다. 그렇게 피어난 꽃을 바라보고, 꽃 소식을 아는 사람에게 사진으로 보내고, 가끔 꽃집 앞에서 발걸음 멈추어 꽃에 대한 예를 갖추는 일도 내가 하는 일이다. 꽃잎에 바짝 다가가 제 향기를 일일이 알려주는 예의쯤은 갖추고 살아가야지. 아름다운 표현까지는 바라지도 말라, 그건 유능하고 오래된 시인이 하는 일, 난 그저 꽃피어 한껏 부풀어진 봄을 읽는 독자로 만족한다.요즘은 한 계
누군가로부터 보호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바람·폭우·추위·배고픔으로 보호받고 병으로부터 안위를 지킬 수 있다는 것은 세상 편안한 일이다.애완동물은 사람으로부터 보호를 받는 대신 복종과 반려의 즐거움을 인간에게 준다. 부모로부터 보호를 받는 자식은 바르고 건강하게 자라주는 것으로 위안이 된다. 보호라는 의미 안에는 함께 살면서 서로 보살피고 부족한 것들을 채워주며 온갖 위험으로부터 지켜주는 것이 널리 포함돼 있다. 대부분 집과 지역의 동일 공간 속에서 함께 삶을 이어가면서
모든 사람이 세상의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들을 수는 없다. 처해 있는 사정이 다르고 생각이 다르기 때문이다. 한 사람을 다녀간 인연 중에는 봄꽃처럼 하얀 인연도 있었고, 여름처럼 활기찬 인연도 있었을 것이다. 가을 산국화처럼 깊고 융숭한 인연도 있었을 테니 한 해의 끝에서 세상을 되새김하는 모습은 서로 다르다.철새들이 따뜻한 곳을 찾아 살아온 터를 떠날 때, 텃새들은 조용히 비워진 숲 사이에 햇살을 쪼아 온기를 모은다. 물드는 산을 바라보면서 아슬아슬한 가지 끝에서 우는 가을의 애달픔을 오롯이 전해주는 사람이 있기도 하고, 한 해가
출근길, 안개 낀 대교에서 자동차 추돌사고가 났다. 첫 번째 속도는 미리 멈춰서 멀쩡한데 뒤따르던 속도는 심한 엄살을 부리고 있다. 얼굴이 일그러지고 촘촘한 걸음을 재고 있는 사이, 여유 부리던 이웃의 속도들이 구경꾼이 돼 웅성거리고 있다. 순식간에 모여든 속도들이 서로 모른 체한다. 그러는 사이 멀쩡한 속도를 뒤따르던 세 번째 속도가 관성의 법칙을 들먹이며 애걸복걸이다. 최선을 다해 힘을 줘 멈추려고 애써 보지만 이미 속도는 딴청이다.이제, 잠시 쪼그라져 죽은 속도들을 다시 살리려 엄청난 속력이 굉음을 내며 달려올 것이다. 모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입을 닫을 수 있다는 것이, 눈을 감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다행인가 하고 말이다. 하고 싶은 말을 잠시 참아보거나, 보고 싶지 않은 것은 눈을 감아 잠시 잊어 위기를 넘길 수 있다는 조화가 예사롭지 않다. 그냥 지나쳐 무심코 사용해 온 인체의 구조가 삶을 사는 지혜로까지 연결된다. 입을 닫으라는 것, 말을 한다는 것, 분명 본인의 의지에 따라 닫고 열 수 있는 것인데 입의 쓰임에 따라 큰 파장을 가져오기도 한다.아주 오래 전 아들이 들끓는 젊은 피를 이기지 못해 가출한 적이 있었다. 푸른 객기를 인
지금은 거의 사용하고 있지 않지만 내가 어렸을 때만 해도 어른들은 쌀 사러 가는데도 “쌀 팔러 간다”고 하고, 쌀을 팔러 갈 때는 “쌀 사러 간다” 또는 “돈 사러 간다”고 말했다.어릴 때는 무슨 이유로 반대로 말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일 따위를 잘못하는 경우 ‘참 자~알 한다’며 길게 늘어뜨려 말하는 경우의 반어법과는 조금 다른 느낌이다. 그럴만한 이유를 여럿 훑어봤는데, 반어법보다는 가난에 익숙했던 선조들이 부끄러움을 감추고자 했던 의식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