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계수 칼럼위원
김계수 칼럼위원

집으로 가는 동네 입구에 열녀문이 있던 터를 알리는 표석비가 있다. 허름하고 나무와 풀이 우거져 애써 확인하지 않으면 열녀문을 알리는 표석비인지, 공덕비인지 알 수 없다. 이끼가 심하게 자라 흉물이 돼가고 있다.

한때 누군가에게는 아름다운 덕행의 기록이었고 가문의 영광이기까지 했을 터이고, 마을을 책임지고 있는 관리들께는 좋은 관직과 포상이 되었을 것이다.

일찍 지아비를 잃은 며느리가 병든 시어머니를 홀로 수발하다가 시어머니가 죽자 3년상을 지냈고 남편을 너무 그리워한 나머지 1년 뒤 젊은 나이에 남편 곁으로 갔다는 대충 그런 내용인데 효행을 말하기 이전에 젊은 며느리는 얼마나 큰 고생을 했을까 짐작이 어렵다.

혈기왕성한 나이에 음식과 물을 끊는 고통이라니, 과연 그럴만하게 엄청난 그리움이었거나 가슴이 아파야 가능한 덕행일까? 조선시대 삼강오륜의 덕목을 널리 알리고자 만든 그림책이 ‘삼강행실도’이다.

그러니까 유교의 주요 덕목인 삼강(부자, 군신, 부부)의 행실을 훌륭하게 실천한 효자, 충신, 열녀의 이야기를 글과 그림으로 그려낸 교화의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역사서에 보면 세종 때 편찬된 ‘삼강행실도’는 성종 때 한글로 풀어 쓴 언해본으로 나오기 시작하면서 국가는 본격적으로 이 책의 보급에 온 힘을 쏟았다.

중종 6년에는 삼강행실도 2940질을 찍어 반포하라는 명을 내리는데 이는 간행 부수가 밝혀진 조선 시대 책들 가운데 가장 큰 부수였다고 하니 전 국민을 착한 백성으로 교화하려는 노력이 얼마나 컸었는지 짐작된다.

삼강행실도 효자편에 실린 내용에는 자식이 손가락을 잘라 병든 부모에게 피를 먹이는 행위가 그려져 있는데 이 책이 보급되고 나서 부모님의 병을 고치기 위해 자신의 손가락을 자르는 일이 늘어났다고도 한다.

중종 때는 1건이던 것이 광해군 때 출판된 것에는 단지(斷指)가 186건이나 되었단다. 말 잘 듣는 착한 백성을 만들기 위해 정부는 효자나 열녀가 나왔다는 것을 알리는 문을 동네에 세어주고 세금을 면제해주거나 벼슬을 내려 권장까지 했으니 극기야 거짓 효자 효부를 만들기도 했다는데 그 고통은 오롯이 백성의 몫이었을 것이다.

효자·충신·열녀로 인정되면 곡식도 나눠주고 공무원 특채는 물론 큰 집까지 선물로 주었으니 높으신 관리들께서 가짜 효자 효부를 실제로 경쟁적으로 만들어 냈다. 물론 진실한 효행이 훨씬 많았으리라 믿는다. 인간의 올바른 덕행을 알리자는 이 정책은 어느 한쪽의 의무만을 강조한다.

임금이 국민을 위하고 아버지가 아들을 위해 손가락 자른 사례는 절대 없다. 가부장적 유교적 사회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정책적 수단이었는데 정약용은 목민심서에서 보상에 대한 열망이 커져 부모에게 피를 먹이려 자신의 몸을 베어 과다출혈로 죽는 사례같은 괴이하고 엽기적인 행위를 꼬집기도 했다.

열녀문처럼 어떤 행위를 장려하거나 본보기로 삼기 위해 조형물을 만들어 기념하는 사례는 예부터 있었고 지금도 행해지고 있다. 좋은 것은 정책으로 삼고 국민의 삶을 보다 윤택하기 위해 법으로 제정하고 시민은 준수 의무를 가진다. 어떤 정책이냐에 따라 국민의 삶의 행복 정도를 크게 좌지우지한다.

그래서 중앙이든 지방이든 정부를 운영하는 사람들은 정책을 만들 때 아주 신중해야 하고 국민의 입장에서 충분히 헤아려야 한다. 어느 한 쪽의 이익이 과도하게 발생되어서는 안 되고 정책으로 인해 억울하게 피해를 보는 국민이 생겨서도 안 된다. 무엇보다 정치인 개인의 이익이 개입되어서는 더더욱 곤란하다.

전국동시지방선거가 끝나고 새로 취임한 단체장들의 공약들이 관심을 끌고 있다. 큰 기대를 하기도 하고 우려도 있지만, 처음의 다짐과 공약처럼 시민을 위하겠다는 마음만은 변치 않기를 바란다. 정치와 정책은 누군가에게는 절실한 신념과 가치의 대상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잿밥이나 통제의 수단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시민은 항상 감시자의 역할을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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