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계수 거제시외식업지부 사무국장
김계수 거제시외식업지부 사무국장

작년 앞마당에 있던 대봉감 나무는 가을이 되기도 전에 열매를 거의 떨어뜨렸다. 흰가루병과 깍지벌레가 원인이었다. 주택으로 이사를 하고 처음 결실을 기대하던 내게 큰 실망을 안겨 줬다. 넓은 마당에 자리한 감나무 세 그루만 보고 매매계약을 했을 정도다.

아파트의 폐쇄적인 편안함 대신에 넓은 잔디마당과 키 큰 감나무로 위안 삼았다. 나무의 아름다움과 가치를 높거나 낮게 구분하진 않지만, 고양이 귀를 닮은 반들반들한 이파리와 웃는 아이 볼살을 닮은 감꽃을 좋아한다. 감나무 이파리에 달빛이 내려앉아 바람에 흔들거리면 마구 흩어지는 달빛을 쫓아 한참 동안 서 있기도 했다.

아무튼, 속수무책으로 떨어지는 감을 주우며 지나가는 옆집 어른께 농약을 뿌려야 하는지 물었다. 그러자 그 어른은 “주는 것만 먹어, 얼마나 먹을라꼬 약까지 치노?”라며 웃으셨다. 그 이후로 웃자란 나뭇가지만 손질하고 감나무의 힘듦을 잊고 지낸다. 동네 어른의 명쾌하고 옳은 가르침 덕분이다.

마른 잔디가 점점 바닥에 밀착되어 편편해진다. 감나무 가지마다 병충해에 고통받은 흔적이 보인다. 죽은 가지인가 싶어 살짝 구부려보면 탄력이 느껴져 미안한 마음에 놓아준다. 모든 잎이 떨어진 나뭇가지와 겨울 추위가 포개지고 있는 마당에는 시간의 흐름을 느끼기 힘들다.

그래도 세월은 마당에서 긴 겨울의 페이지를 매일 읽고 넘기는 중이다. 계절이 하나의 커다란 책이고 하루가 한 페이지라면 시간의 독서는 꾸준히 이루어지고 있는 셈이다. 한 장의 겨울 페이지가 넘겨질 때마다 우주는 스스로 봄을 향해 조금씩 돌아앉는다.

요즘 같은 추위에도 하늘은 겨울의 페이지마다 문을 열고 문을 닫는 독서를 게을리하지 않는다. 언제나 택배처럼 도착하는 봄은 겨울이라는 목차를 건너뛰고 도착한 경우는 없었다. 차가운 바람과 겨울이 읽고 지나간 자리마다 봄꽃이 자리할 시간과 모양들이 정해지고 학습된 약속은 꽃과 잎으로 밑줄 긋는다. 그렇게 손 아린 겨울을 다 읽고 난 뒤라야 봄은 분명 오는 것이다. 

시집이나 소설은 지겨우면 잠시 접어두었다가 다시 읽어도 된다. 하지만, 세월의 책장은 하루라도 제때 넘기지 못하면 이야기가 이어지지도 않고 행갈이를 하기 어렵다. 지난 세월을 다시 복습한다는 것은 쉬우면서도 괴로운 일이다. 행갈이를 못한 페이지에서 아픈 이름을 발견하기라도 한다면 그 안타까움은 또 어쩌리.

난방비가 오르고 공공요금도 독한 바람처럼 차갑게 들썩거리니 겨울나기가 힘들다. 저소득층의 겨울 난방비용은 마른 가시처럼 자주 찌르고 고통이 크다. 겨울을 마저 읽기도 전에 한 장 한 장 찢겨나가는 빈 페이지가 아프고 슬프고 외롭다. 혈서처럼 묵직하고 숨소리가 붉다. 어디서 숨이 차는 누군가의 겨울 한 페이지를 속독하고 따뜻한 봄을 가불(假拂)하고 싶지만, 봄은 아직 멀다.

떨어진 감처럼 주는 것만큼 받고 만족할 형편없는 감성으로는 감히 견줄 수 없는 독서다. 춥고 아프고 슬프고 외롭다는 기록마저 생략된 빈 백지가 곤궁으로 쌓여가는 어느 안방에서는 세월 읽는 소리가 들리지도 않겠다.

나는 또 슬픈 젊은 영화감독의 차가운 방바닥에서 빠져나온 배가 고파 얼어 죽은 일대기를 읽고서는 주는 것만 먹고 살 수 없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에 분노한다. 아니 자연은 사람한테 골고루 줄지언정 사람이 사람에게 준다는 것, 주는 것을 가진 존재, 이것은 극히 한정적이면서 편중되어 있음에 좌절을 느낀다.

그래도 봄은 온다는 것이 얼마나 허망한 위로인지 춥고 아프고 외로운 사람들은 안다. 겨울은 추워야 제맛이라는 말 따위에 그들은 상처 입는다. 누구보다 열심히 겨울의 한 페이지를 읽고 견디겠지만 백지의 독후감만 쟁이고 있을 뿐이다.

죽은 줄 알았던 나뭇가지에 탄력이 생기기 시작하는 2월, 약을 처방하지 않고도 주는 것만 감사하게 받아 살아갈 세상의 한 페이지를 누구나 편하게 읽을 수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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