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계수 거제시외식업지부 사무국장
김계수 거제시외식업지부 사무국장

마음의 쓰임은 어디까지일까? 넓은 상수리 잎에 내린 빗방울이 바람에 마르고 사라지듯 하나의 마음이 다 쓰이면 추억이 되는 것일까? 사랑 이별 기쁨 슬픔 아픔 행복, 뭐 이런 마음들이 쓰이고 서로 주고받는 감정으로 세상은 돌아가고 사건들은 만들어진다. 같은 시기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마음의 질량과 느낌이 비슷할 것 같지만, 여기저기 막 터져나오는 사건들에 묻어 있는 마음들은 제각각이다. 

나와 생각이 다른 것은 '편견'으로 치부되기 쉽다. 편견이라는 것도 사실 편견의 편견, 즉 편견이 편견의 배후인 셈이다. 어떤 것에도 배후는 늘 살아 움직인다. 그래서 완전 '합일치'의 의견은 존재하기 어렵다. 서툴고 아픈 마음을 올곧게 펴 마음의 무게에 중용을 얹어보려는 노력이 게을러질 때 세상은 내게서 철저하게 외면당한다.

아끼던 사람이 남편과 이별을 했다. 홀로 자식을 키우다가 너무 힘들어 지치기 시작했고 아이는 아이대로 방황을 시작했다 한다. 양육비는 고사하고 마음마저 다치게 하는 일이 허다하다며 울면서 전화를 했다. 대충 얼버무리며 위로의 말을 했을 것인데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에 없다. 전화를 받기는 했으나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한다. 내 주변을 더 챙기고 내 편견을 위하려 할 수 있는 일도 멀리했는지 모른다. 그렇게 내게 흘러온 타인의 아픈 마음은 소용을 잃고 바람에 말라간 빗물처럼 사라졌다. 

결혼하고 아들 하나를 뒀다. 이제 성인이 돼서 직장생활을 하고 여자친구를 사귄다는 소식도 들려온다. '아들'은 그야말로 '남'의 배후인 셈인데 가끔은 비교되고 사랑을 더 줄 핑계가 될 딸아이 하나가 있었으면 내심 바랐었다. 끝내 아들 하나로 만족할 운명이었지만, 주변에 자식 키우기 힘들어 하는 사람이 있으면 입양 해서라도 키우고 싶은 마음에 아동복지기관을 찾아다니기도 했다. 

요즘 출생을 하고도 존재조차 모르는 아동의 이야기들이 큰 뉴스거리다. 아이를 낳은 엄마의 마음은 고사하고 아주 고약한 악마로 변한 세상의 눈길들이 희한한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마치 세상에 웃을 마음이 사라진 것처럼 말이다.

직장에 30대의 미혼인 젊은 직원이 여럿 있다. 직원의 친구중에 결혼 날짜까지 잡았다가 헤어지게 된 한 예비부부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3년을 넘게 연애를 했고 양가 허락까지 받아 결혼준비를 하다 헤어졌단다. 차라리 아주 이른 이별이 더 좋았을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까지 곁들여서 말이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애틋했던 두 사람의 마주 잡은 손이 스쳐 지났다. 얼마나 오래 잡고 싶었으면 서로의 손바닥에 흐르는 땀까지 내 옷에 문질러 줬을 것이다. 빠르거나 늦거나 이별은 아픈 일이다. 젊거나 나이가 많거나 이별은 또 아프다. 같이 살기로 한 약속에서 시작된 사랑의 배후에 이별이 있었을 줄이야.

다른 사람의 아픈 사연에 몽클해져 도움의 손길을 뻗어 본 날이 오래됐다. 아니 세상사는 타인의 모습에 궁금해지기조차 어렵다. 물처럼 나무처럼 비처럼 꽃처럼 그리고 하늘처럼 살아가며 내 마음이 당신 것이기도 하고 당신의 애틋한 그 마음이 내 것이기도 했던 그런 바닥 맑은 마음이 보이지 않는다. 헝클어졌다 뒤틀리고 외면하고 내 속에 처박힌 구부러진 마음을 바로 펴기가 쉽지 않다. 세상은 어렵다고 소리치는데 말이다.

사람을 그리워하고 체험하지 않는 애정을 순수하게 믿어왔던 우리들의 청춘은 그저 바라보기 좋은 어제가 됐다. 어제가 오늘보다 좋은 것은 추억이 있기 때문이고 내일이 희망적인 것은 오늘의 아픔이 없기 때문이란다. 사랑의 배후는 이별, 뭐 이딴 소리 치우고 아무런 배후를 가지지 않는 사랑과 마음이 필요하다.

저작권자 © 거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