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계수 칼럼위원
김계수 칼럼위원

대부분 자신이 보는 세상이 가장 옳다고 믿고,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이 옳은 진리일 것이라고 쉽게 착각한다. 상반된 주장에 대해 논리를 갖춘 설득으로 관념을 조금씩 조정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다. 흔히 우물 안의 개구리 ‘정저지와(井底之蛙)’인데 자신이 속한 공간, 현재 살고 있는 자신의 시간,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에 집착한 결과다.

갈등의 접점에서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공간, 나의 시간, 그리고 지식의 범주 안에서 현상을 판단하고 결정해야하는 경우가 많다. 한 번 결정되면 좀처럼 바꾸려고 하지 않는 것이 또 인간의 본성이다. 사과가 희다고 말하는 순간 빨간 사과의 세상으로부터 공격을 받게 된다. 사과가 희다니,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할 수가 있지? 상식에 어긋나, 대화할 가치도 없어! 과연 세상은 하나의 진실에 고정돼 있을까?

몇해 전 8.15 광복절에 잊을 수 없는 장면을 TV뉴스에서 봤다. 대한민국 공군 전투기 6대가 홍범도 장군의 귀환 길을 엄호한 장면이다. 지금은 의견이 나뉘고 있지만, 적어도 그 당시에는 많은 국민들은 뭉클하고 대한민국 국민으로서의 자부심을 가지게 된 사건이었으리라.

오로지 조국독립을 위해 몸 바치고 희생을 다한 독립전쟁의 영웅이신 홍범도 장군의 유해를 조국의 품에 보내는 것은 카자흐스탄 정부와 고려인들의 큰 결단이 큰 보탬이 되었을 것이다. 그곳에 아직 남아 있는 고려인들의 가슴에 영웅으로 남아 있는 홍범도 장군을 떠나보내는 서운한 마음을 우리 정부는 최상의 예우로 끝까지 보답하겠다고 약속했다.

적어도 나라를 위해 독립을 위해 한 몸 희생하셨으니 명예롭게 고국에 모시는 것은 당연한 일이겠다. 나라를 잃고 먼 타국을 떠돌다가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 당해 쓸쓸하게 생을 마감했던 홍범도 장군의 흉상을 두고 흰 사과를 닮은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그 한 줌의 흙 앞에서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민족의 미래 따위는 상관없다는 듯 고함을 지르고 있다. 차라리 그 한 줌의 흙 돌려 달라, 그럴 거면 왜 모시고 갔느냐? 소리치는 국민과 고려인들의 헐은 가슴에 쓰린 통증이 느껴진다.

정치? 권력의 쟁취를 위한 이념 싸움? 이따위는 잘 모르기도 하거니와 엉망진창에 몸과 마음을 담고 싶은 생각은 없다. 하지만, 구체적 근거 없이 홍범도 장군이 자유시참변과 연관된 것처럼 의혹을 새로 만들고, 청산리·봉오동 전투를 김일성과 관련된 빨치산 전투처럼 둔갑시키는 일부 주장들에는 격렬 반대다. 왜? 상식과 보편적인 역사의식에 어긋나는 일이기 때문이다.

얼마 전 라디오에서 한 젊은 정치인이 홍범도 흉상철거를 외치는 시민에게 왜 그런 주장을 하시느냐 물었더니, “홍범도가 김일성이 하고 같이 6.25때 남한을 침략했잖아, 그런 빨갱이 흉상은 당연히 철거해야지” 하시더란다. 논쟁을 위해 돌아가신 분을 다시 살려내시는 억지가 참 씁쓸하다. 아니 슬프다. 왜 저런 순박한 시민들까지 이런 근거 없는 논쟁에 동원되었을까, 참으로 역사와 미래세대에게 미안한 일이다.

진보·보수 나눠서 싸우지 말고 국민들이 분노하는 이유와 국민상식과 역사적인 근거를 가지고 정면승부해 보시라. 자신의 치부를 덮기 위해 다른 사람의 약점을 이용하면 그렇게 감추어진 치부가 얼마나 오래 가겠는가? 독립전쟁 영웅 홍범도 장군을 공산주의자로 끌어 들여 감추고 싶은 치부는 무엇일까?

개인의 삶도 마찬가지이고 역사는 어떤 선택에 따라 후대 세대에게 엇갈린 평가를 받을 수는 있다. 완전하고 독립적인 하나의 편향된 이념으로 고정하기에는 힘겹게 살아 온 세월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역사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정치인들이여, 순수한 국민들의 상식과 역사의식, 민족 자부심을 좌, 우 진영을 나눠 쪼개지 마시라. 먼 길 소중히 모시고 온 한 줌의 흙! 대한민국의 역사다. 우리 민족이다. 함부로 대할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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