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계수 칼럼위원
김계수 칼럼위원

세상에는 단위를 매길 수 없는 것이 여럿 있는데 그 중에 단위의 층수가 복잡하고 높이와 깊이를 어림잡기 어려운 것이 사람의 마음이다.

특히 요즘처럼 명확한 미래의 지표가 없는 세상에 살아가는 우리들은 ‘마음’ 하나 곱게 내려놓을 때가 부족하다. 다른 사람의 마음에 내 마음이 곱게 내려놓았다 싶으면 어딘가 기울어져 있고, 그 기울기에 따라 내 마음도 혼란스럽다. 세상과 마음 맞추고 살기 힘들어졌다는 생각이다. 

지금까지 살면서 내가 가장 행복했던 날은 언제였을까? 곰곰 생각하면 행복했던 기억보다 슬픈 일들이 더 많다. 이전에는 개인의 행복감보다는 무리가 행복해야 비로소 개인의 행복이 채워지던 때가 있었다. 가족의 행복은 자신감을 심어주었고 행복하다는 것은 충만한 자존감이었다.

핵가족을 뛰어넘어 이제는 ‘핵개인의 시대’가 되다보니 가족끼리의 유대감도 약해져간다. 쉴 겨를도 없이 자식들을 키우고 보살핀 우리들 아버지의 시대에는 더 그러했겠지만, 여전히 지난한 삶이다.

‘핵개인’의 시대가 오면서 개인 행복의 척도가 곧 그 사회의 인생만족지수를 대변한다. 마음이 편안해야 하는 행복이란 개인의 ‘생활여유’ 공간이 늘어나는 것과 비례하기도 한다. 질 낮은 개인 공간이 늘었으나 개인의 행복지수가 다양해지고 좋고 나쁨의 구분이 쉽지 않게 되면서 눈에 띄게 사라진 것이 감수성이다.

그 옛날 농삿일에 힘겨운 어머니도 꽃이 피거나 물든 단풍이 환하면 “오메, 참 곱다” 한마디 하시곤 했다. 표현은 안하셨지만 아버지도 논가에 핀 쑥부쟁이 같은 들국화는 낫으로 베지 않고 그대로 두시곤 했는데 그런 것이 어린 나의 감수성을 키운 것인지도 모른다.

죽자 살자 싸우시다가도 소곤거리는 소리에 잠을 깨면 아버지와 어머니는 당신들의 세상 이야기를 나누셨다. 혹여나 자식들이 깰까 봐 낮은 목소리가 새벽을 환하게 불러들이고 있었는데 무슨 이야기인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남남 같은 싸움에서도 정이 생겨난다는 의미를 알게 되었다.

거대한 노동의 바쁜 틈에 꽃을 바라보며 새색시의 얼굴로 붉히고, 논가의 쑥부쟁이를 남겨두시던 미학적 행동에서 서툴고 형편없지만 아버지, 어머니는 나름의 시인이었고 예술가였다. 어린 나의 어깨에 짊어질 지게를 만들 때도 그런 미학적인 노력으로 지게의 곡선은 부드러워졌으리라. 

어려운 삶에 짓눌려 있던 감성이 꽃처럼 터지는 때가 누구나의 가슴에도 있다. 어떤 형태의 창조적 감성이 싹 틀 때 전율이 오른다. 그런 시적 정황들을 잘 기억하고 잘 다듬다보면 詩가 되고 감성적인 작품이 된다.

이런 예술적인 감성들도 개인의 의식이 자유롭고 편안할 때 발아된다. 꼭 베스트셀러 시인의 작품만이 詩가 아닌 것이고 어떠한 미학적인 순간에 감동하여 ‘아!’ 탄성을 내지른 것도 하나의 詩라고 여긴다. 탄성을 내지르고 잠시 혼자의 발걸음을 멈추어준다면 더 빛날 것이고 자신의 순한 감성이 완성되는 순간이다.

그렇게 되면 행복이 몰려온다. 내가 아름답게 빛나고 이 세상이 내 마음과 같이 움직이는 것처럼 착각이 들 정도다. 물질의 풍요로서 감싸고 있는 ‘핵개인의 시대’보다는 누구나 예술인이 되어 행복해지는 ‘혼자의 감성시대’에 살다보면 자주 행복해질 것이다. 

권력 뺏기, 재산싸움 그만하고 詩를 써서 이제 그만 행복해지자. 아름다운 장면을 사진으로 찍어 담아두었다가 그 날의 감성을 수필로 써서 이제 그만 내 감성을 채우자. 풍요로운 물질속의 혼자가 아니라, 아름다운 사람들 속에 혼자인 나를 발견하고 세상의 곳곳에 미학적으로 살아서 행복해져 보자.

이런 나만의 외침으로도 경쟁과 다투지 않고 시기와 멀어지며, 과거 아버지 어머니의 짧은 미소처럼 순수한 정으로 세상에 남아 볼 일이다.

오늘은 비가 내리고 나뭇가지에는 은색의 ‘비꽃’이 당신처럼 피어나고 있다. 내리는 비를 ‘비꽃’이라 부른 이가 있었다. 그 ‘비꽃’을 ‘물의 꽃잎’이라고도 했는데 이 세상에 빛나지 않는 것이 없다. 험난한 세상 잘 버티고 있는 당신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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