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계수 칼럼위원
김계수 칼럼위원

편하다. 내 속에 오롯이 나만이 가득하다. 정갈한 시간이 많으니 욕심이 사라진다. 치열하고 맹렬한 타인이 없으니 다툼이 있을 리 없다. 나와 다른 오류와 왜곡을 찾지 않아도 좋고, 또 그것을 지적하거나 지적당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은 내 영혼이 풍만해질 기회다. 그래서 나는 봄을 몇 날 앞두고 과감하게 솔로를 선언한다.

글을 쓸 때는 말을 하는 것보다 더 신중해지고 적확하며 쉽고 아름다운 단어를 찾기 위해 노력한다. 마땅한 단어가 떠오르지 않거나 완성문장이 매끄럽지 못하면 몇 번이고 고쳐 쓰고 꿈속에서도 수정을 반복한다. 그러니 상대방에게 글을 보낼 때는 큰 오해나 지적되는 오류가 없다. 그만큼 글 속에 내 온전한 마음과 신뢰와 사랑을 담기 때문이리라.

그런데 말을 할 때는 그런 차분한 분위기나 수정이 불가하여 뱉어버린 말들을 주워 담느라 혼이 난 적이 많다. 하지 않던 농이라도 건네자 치면 엉뚱하다는 반응과 글에 나타난 내 이미지가 희석되어 혼란스러워하는 타인을 발견한다. 그런 혼란을 즐기기도 하고 나를 쉽게 보여주는 방법이라 여겨 지나치게 정도를 벗어나려는 대화도 있었는데, 헤어지고 나면 늘 후회한다. 상대방이 나의 이미지와는 어울리지 않는 농에 대해 곧바로 거부하지도 않고 슬그머니 웃어주니 나도 그만 혼란에 겨워 흥이 올랐던 모양이다.

말은 마음이다. 이렇게 두 문장의 간단명료한 명제를 두고 말을 통해 우린 끝없이 타인과의 관계는 갈등에 짓눌린다. 모든 갈등이 말로서 시작하고 말로서 풀어지기도 한다. 한마디 말 때문에 평생을 두고 원수처럼 지내는 사람도 허다하다. 한 번 뱉은 말은 바꾸기 쉽지 않고 사람과 상황에 맞는 적확한 말을 건네는 일은 중요하다. 마음을 준다는 것은 좋은 말을 꾸며 건네는 일이라기보다 목숨이 시뻘겋게 붙어 있는 심장을 꺼내 주는 일에 비유해야 맞을 것이다. 사람의 사랑이 그렇듯 말이다. 이렇듯 중요한 말을 나는 자신 있게 하기가 힘들어서 타인과의 관계가 소홀하고 엉망이 되더라도 나는 대화가 없을 솔로를 선언한다.

말에 상처받아 본 사람은 알 것이다. 그 어떤 칼날보다 예리하고 어떤 악마보다 괴기한 말 앞에서 상처받아 본 사람이라면 밤 새 잠들지 못하고 울음을 토해내었을 것이다. 차마 그 울음 앞에서 어떤 일도 할 수 없는 자신의 무기력함을 알고는 밥조차 삼킬 수 없는 아픔을 겪어보았을 것이다. 

글은 그 사람이다. 말은 교묘해질 수 있어도 글은 권모와 술수를 쉽게 보태지 않는다. 아무리 거짓을 보태어도 글을 자주 접하고 읽어 본 사람이라면 사람 속을 읽어낸다. 글은 말보다는 실수를 줄일 수 있다. 글은 말보다 품위가 있다. 그리하여 말보다 속정이 깊은 글을 선택할 것이다. 그러면 말이 필수인 타인과의 관계를 줄여나가야 한다. 타인으로부터 나의 오류를 지적당하고 간섭받는 일에 지쳤다. 소신껏 주도적인 삶을 위해서라도 말을 끊고 솔로를 선언해야 한다. 내뱉지 않고 수많은 말을 품은 소의 커다란 눈동자를 말한 시인이 익히 있었고, 산에 피는 들꽃들, 나무들, 풀잎들조차 하고 싶은 말을 내뱉지 않고 품고 산다. 말이 없어도 아름답다. 관계에 대해 노력하지 않아도 싱그럽다. 혼자 피어도 예쁘다. 말없이 지는 모습조차 곱고 곱다. 그래서 나도 저런 말을 풍성하게 품은 꽃이 되기를 소망하면서 솔로를 선언한다. 그러니 타인이여, 나와의 관계에서 오류를 발견하여도 고이 두시라. 편하고 내가 가득한 영혼을 존중하며 살 것이다.

아무리 내가 세상의 말들과 등지고 산다고 하더라도 [솔로 선언]에 가장 방해되는 것이 있다면 그 첫 번째가 정치다. 고대 철학자께서 “인간은 정치적 동물이다” 선언한 이후 정치는 함부로 인간을 다루기 시작했다. 정치가 인간을 다스리기 위한 편리하고 쉬운 도구로 이용되면서 그 목적은 변질되어 고통받는 사람은 늘어나고 빈부격차는 더 심해졌다. 공평은 사라졌고 오직 정치인을 위한 불공정한 공평의 잣대만 세상에 즐비하다. 아름답지 않은 정치적 공약이 없듯이 말이다. 이런 괴물의 정치에 대항하기 위해 말을 줄이고 글로서 투쟁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상처 입고 사라졌는가. 그럼에도 그 상처를 이어 딛고 탈피하려는 것은 더 이상 말에 상처 입은 누더기를 세상에 버려두기가 가슴 아프기 때문이다. 지금이라도 탈출할 수 있으니 다행이다.

나는 혼자인 인생을 살아가기로 선언한다. 그러므로 나와 관련되었던 인연, 맺어질 인연 모두에게 포고하니, 타인이여! 나와 반하여 철저히 왜곡되시라. 그대들의 오류를 인정할 테니 나의 오류를 내버려 두시라. 내버려 둔다는 것은 무시가 아니라 인정과 존중이라 치자. 단지, 멀리서 세상은 세상대로 나는 나대로 함께 행복해지자. 곧 봄이 올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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