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계수 거제외식업지부 사무국장
김계수 거제외식업지부 사무국장

아무 기억이 없다. 아픈 자리만 힘 빠진 계절처럼 욱신거린다. 상처를 만져가며 험난함과 위험에서 벗어난 경위를 따져 묻는다. 평생을 한 몸에 붙어 자란 육체와 정신이 바로 서지 않는다. 병원에서 상처를 기운 흔적은 그대로인데 다쳤던 내 기억만 감쪽같이 사라졌다. 난감하다. 술을 과하게 마신 것도 아니고 평소의 행동패턴을 볼 때 과한 행동을 했을 리 만무하다. 나의 상처 경위를 확인하는 방법은 상처를 자세히 보면 알 수 있겠다 싶어 거울을 본다. 거울에서 이내 벗어난다. 당혹감과 부끄러움이 함께 몰려온다.

거울 속의 내 모습은 마치 축구 선수가 경기 중 머리를 다친 것처럼 퉁퉁 부어있고 붕대가 감겨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반나절을 병원에서 보낸 후 억지로 집으로 향한다. 상처가 보이니 지나가는 동네 사람마다 걱정을 해준다. 행적을 알 수 없는 상처는 부끄러운 것일까. 차라리 내 마음 안의 상처로 남았으면 무사한 척 지나갔으리라. 그러면 남의 상처 따위는 알 수 없는 주변 사람들도 무덤덤했으리라. 

사람들은 살아가면서 보이는 상처와 보이지 않는 상처들에 얼마나 위로받고 살아갈까? 보이지 않는 상처에는 얼마나 혼자 오랫동안 아파하면서 스스로 견뎌낼까? 보이는 자신의 상처에 민감한 나는 누구의 상처에 이토록 예리하고도 아파해 본 적이 있었을까 생각하며 자리에 눕는다. 정신을 차리니 상처부위 뿐만 아니라 가슴과 둔치와 어깨까지 아파온다. 분명 계단에서 넘어진 것이다. 그래도 지난 행적을 살펴야 심정이라도 안심할 수 있겠다 싶어 전화기를 살핀다. 통화기록과 신용카드사용 기록을 본다. 동료와 술자리에서 사용한 금액과 병원 응급실에서 사용한 금액이 확인된다. 역시 특별한 것이 없다. 

상처에는 기억나지 않는 것도 가끔 있기 마련인데 대부분 상처의 선명한 기억 때문에 괴로워하거나 다른 사람과 갈등이 생기기도 한다. 사소한 말다툼을 해도 마음의 상처가 오래가는 것처럼 상처에는 원인이 되는 상대가 있기 마련이다. 갈등에 대한 해소도 그 상대를 잘 알아야 가능하다. 마음에 상처가 생기면 대부분 내가 먼저 미안한 마음을 전하고 풀어버린다. 응어리진 마음마저도 짐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람 마음은 서로 달라서 미안한 마음을 표했는데도 상대가 너무 당연하게 받아들이면 내심 서운하다. 화해의 불공평한 저울이 가져다 준 서운함 때문에 더 마음 아픈 적도 있었는데 그것 역시 내 마음이니 어쩔 수 없다. 상대의 마음을 샅샅이 살펴볼 재주가 없는 이유지만 그렇다고 인생까지 걸 필요는 없다 싶으면 그나마 편안하다. 

오후쯤 되었을까. 전화기가 울린다. 자주 술자리를 갖는 동호회 친구다. “괜찮나?” 전화기 너머 장난기 섞인 밝은 말투가 상처를 콕 찌른다. 장난기가 있다는 것은 그리 심각해 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다. 술자리를 파하고 계단을 내려오다 발을 헛디뎌 다쳤고 순간 정신을 잃은 모양이다. 피 흘리고 있는 나를 1층 분식집 주인 할머니 아들이 직접 태우고 병원 응급실에 옮긴 뒤 전화기 통화 기록으로 친구한테 전화를 한 모양이다. 상처는 오래가지 않아 낫겠지만 친구의 조롱은 아마 몇 년은 갈 것 같다. 

상처는 누구에게나 있고 또 가질 수 있다. 며칠만에 아무는 상처가 있고 평생 아물지 않는 상처가 있다. 내가 상처를 떠안은 것도 있고 운명적인 사고로 뒤덮인 것도 있다. 통증이 되는 상처가 있고 이별이 되고 통곡의 상처가 생기기도 한다. 분명한 것은 상처는 불공평하다는 것이다. 그 불공평한 상처를 공평하게 하는 과정이 또 다른 상처가 되기도 한다. 내가 상처를 입었거나 다른 사람이 상처를 당했을 때 ‘그만하기 다행이다’라는 위로는 하지 말자. 다행인 상처가 어디 있으랴. 환한 젊음과 추억을 챙기려다 영원히 하얀 상처가 된 꽃의 청춘들, 불공평한 상처를 떠안은 유가족에게 오랫동안 미안해야한다. 더 이상 압사당하는 아픈 상처가 없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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