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부 최우수]'꽃길'…하청초 학부모 노수미

지난 여름 더위를 피해 딸아이와 학교 도서관을 찾았다. 시원한 에어컨 바람 아래 책 읽고 싶은 생각이 저절로 났다. 그 동안 아이 넷을 키운다는 핑계로 책과는 영 거리가 멀어진 채 외면하고 살았다. 하지만 책을 좋아하는 쌍둥이 딸 덕분에 다시 책의 매력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여름방학 동안 학교 도서관에는 새로운 책들이 많이 들어 왔고 그 중 한권이  '꽃길'이다. 막내가 그 책을 고르길래 그냥 표지나 제목처럼 예쁜 이야기 이겠거니 하고 별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런데 그 책의 독서 감상문으로 한국 독서 연구회에서 주최하는 전국 독서 대회에서 대상을 받은 것이다.

그러니 나의 독서에 대한 마음은 더 활짝 열리게 되었다. 앞으로 사춘기를 맞이할 딸과 대화거리가 하나 더 생긴 셈이니 얼마나 기쁜 일인가! 당연히 그 책을 읽고싶어 졌다.

신라시대 한 토기장이와 아들의 이야기이다.

특별한 토기를 만드는 재주가 뛰어난 만오는, 엄마도 없이 커가고 있는 수창이의 아버지다. 매일 공방에서 토기를 만드느라 수창을 전혀 돌보지 않았다. 쑥부쟁이 꽃을 좋아하는 수창은 꽃을 한 움큼 꺾어 아버지에게 말 한마디 건네 보려 공방에 들른다. 사내 녀석이 왠 꽃이냐며 핀잔을 듣고는 아버지의 일에 방해가 되지 않으려고 혼자 외롭게 지낸다.

그 시대에는 '순장'이라는 몹쓸 제도가 있었다. 귀족이나 왕과 같이 높은 사람이 죽으면 귀중품들과 심지어 하인 까지도 산 채로 묻어 버렸다. 사후 세계가 있다고 생각하며...... 이 풍습을 걱정하던 왕이 하인을 대신해 토기로 껴묻거리를 만들어 넣게 하였다.

이 때문에 껴묻거리가 많이 필요하게 되었고 개인으로 공방에서 자유롭게 창작하던 토기장이들을 단체로 똑 같은 토기를 만들게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만오는 그것만은 절대 하고 싶지 않아 산 속 움막에서 자기만의 토기를 만들었다. 그의 작품이 뛰어난 것을 아는 촌주는 꼭 나라에 바쳐야만 했다.

그 사이 마을에는 돌림병이 돌았고 제대로 보살핌을 받지 못한 수창이는 병에 걸리고 말았다. 그 소식을 듣고 한 걸음에 달려온 만오는 미안한 마음이 북받쳐 올랐다.

아버지의 토기로 밥 한번 먹어 보는 게 소원인 수창에게 죽을 끓여 토기 그릇에 담아 주었다. 다음 날 열이 내리고 많이 좋아진 모습을 보고 토기고 뭐고 아들 옆에 있겠노라 다짐했다.

하지만 수창은 이제 괜찮으니 어서 토기를 만들러 가시라고 했다. 아버지가 토기를 만들고 있을 때의 모습이 가장 행복해 보였기 때문이다.

아들에게 떠밀리듯 산속으로 간 만오는 아들에게 줄 토기를 만드는 데 전념한다.

하지만 다시 발병되어 사경을 헤매게 되었다. 이 소식을 듣고 허겁지겁 집으로 내려와 다 죽어가는 아들을 보고 있는데 촌주가 보낸 사람들에게 잡혀가고 말았다. 토기를 내 놓으라는 촌주에게 아들을 위한 것이니 절대 그리 할 수 없다 말하자 걸을 수 없을 정도의 매를 맞았다. 아픈 몸을 이끌고 집에 가보니 벌써 수창은 죽은 뒤였다. 만오가 만들어 놓은 토기를 껴묻거리로 함께......

넋을 잃은 만오는 수창이 좋아하는 쑥부쟁이 꽃이 피어있는 언덕으로 자기도 모르게 발길을 옮겼다. 갑자기 딸랑거리는 방울 소리와 함께 수창과 같이 묻힌 토기처럼 말을 탄 아들의 모습이 멀리 흐릿하게 보였다. 고맙다는 말과 함께 영영 사라져 버렸다.

그 후로 만오를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1924년 일본인들에 의해 파헤쳐진 고분에서 금관, 금동신발, 토기등이 나왔다. 아마도 신라 시대의 높은 신분을 가진 사람의 무덤일 것으로 추정되었다. 하지만 옆 마을의 조그만 무덤에서는 토기 외에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작가의 프롤로그의 한 부분이다. 이 몇 줄 안 되는 기사에서 이런 긴 이야기를 생각해 내다니 작가란 어느 천재보다 뛰어난 머리를 가졌나 보다.

한 토기 장인의 예술혼도 신분 앞에서는 한낱 귀족들의 부의 상징이 될 물건을 만드는 일 일 뿐……. 아들의 목숨도 지켜주지 못한 애절한 아비의 마음에는 아무런 위로도 되어 줄 것이 없었다. 오직 껴묻거리로 묻어 준 토기만이 만오를 조금이나마 위로해 주었을까?

만오의 무뚝뚝함은 결코 무심하거나 그 사랑의 크기가 작은 것이 아니다. 만오도 뒤늦게야 깨달았지만 그래도 아들은 아버지가 토기 만드는 것을 원하니 그리 해주는 것이 사랑의 표현인 것이다.

문득 나의 아버지가 생각난다. 항상 '그냥......' 이라며 전화하시는...... 하지만 가슴 한 구석이 먹먹해 옴을 느낀다. 아마 만오와 수창도 그런 사랑을 하지 않았을까?

쑥부쟁이 흩날리는 꽃길에서 못다한 이야기를 하며 행복해 하는 만오와 수창을 그려 본다.

저작권자 © 거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