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관심은 우리가 부자가 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건강하게 사는 것도 아니다. 하나님의 관심은 우리가 '성품'의 사람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는 것이다. 보배로운 믿음을 가진 주의 백성들이 여전히 분노와 혈기와 욕심에 매여 살고 참 기쁨을 누리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의 성품을 온전히 회복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성품의 사람이
다윗과 골리앗의 이야기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잘 알려진 이야기이다. 블레셋의 장수 골리앗이 3m나 되는 큰 키에 베틀채 같은 창을 들고 서 있을 때 이스라엘의 그 누구도 감히 골리앗과 싸워보겠다고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 그런데 이때 어린 다윗이 나가서 싸웠고 승리했다. 우리 앞에는 수많은 골리앗이 있다. 나를 두렵게 하고 지치게 하고 힘들게 하는 골
독일의 우화 중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어떤 임금이 신하 두 사람을 불러 한 사람에게는 나라의 전역을 다니면서 잡초가 얼마나 있는지 조사하라고 했고, 다른 사람에게는 꽃의 종류가 얼마나 되는지 알아보라고 했다. 1년이 지난 후 잡초의 종류를 연구했던 신하는 "우리나라는 온통 잡초나라입니다. 온 나라가 잡초로 뒤덮여 있습니다."라고 보고했다
가나안 땅을 정탐하고 가데스 바네아로 돌아온 정탐군 가운데 열 명은 절망적으로 보고했다. "거기 거하는 아낙 자손들은 장대하며,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았습니다." 그러나 갈렙과 여호수아는 밝히 드러내어 외쳤다.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의 밥이라."똑같은 사물이 어떤 눈으로 보느냐에 따라 정반대로 보일 수
우리가 신앙생활하면서 나도 모르게 종종 오해하는 경우가 있다. 우리는 성경에서 '하지 말라'는 것을 하는 것은 죄인 줄 알면서도 '하라'는 것을 안 하는 것에 대해서는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곤 한다.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하지 말라는 것을 하면 그것이 죄인 줄 알고 부끄러워 하고 가책을 느낀다. 그러나 '
하나님은 중심을 보고 사람을 평가하신다. 어느날 헌금함 앞에 앉아서 사람들이 헌금하는 모습을 지켜보시던 예수님은 그 중에 두 렙돈을 넣은 한 가난한 과부를 일컬어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다고 평가하셨다. 다윗에게 기름을 붓기 위해 사무엘을 보내셨던 하나님은 장자 엘리압을 보고 "여호와의 기름부으실 자가 과연 주님 앞에 있도다"라고 감탄하는
십자가는 그리스도인들의 신앙의 상징이다. 예수님을 섬기는 교회임을 나타내기 위해 건물에 십자가를 달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십자가 목걸이로 자신이 그리스도인임을 드러낸다. 신앙의 자유가 없는 지역의 성도들은 서로의 손바닥에 십자가를 그어 주며 믿음을 격려한다고 한다. 십자가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예수신앙의 상징이 되고 있다. 그런데 고대세계에서는 십자가가 어
바울 사도는 종종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소개한다. 이것은 아주 충격적인 자기소개다. '종'이라는 말은 정확하게 번역하면 '노예'를 가리키는 말이다. 당시에는 로마 인구의 약 절반이 노예로 살아가고 있었다. 그들은 오늘날 공장의 기계나 다를 바 없는 존재들이었다. 그래서 "노예와 당나귀는 똑같은데 노예는 말을 할 줄 알고 당
저명한 기독교 저자인 필립 얀시는 그의 책 '교회, 나의 고민 나의 사랑'에서 한때 그가 교회를 떠나 방황했던 적이 있었다고 고백한다. 지루하게 반복되는 예배순서가 싫었고 일요일 아침이면 잘 차려입고 서로 간이라도 빼줄 듯이 웃으며 반기는 사람들의 그 얼굴 뒤에 숨은 위선이 싫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는 "이제 나는 교회없는 생활을 생각할 수 없
어느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물었다. "여러분 다음 이야기를 진지하게 듣고 합당한 결론을 내려 주십시오. 임신 중인 한 여인이 있습니다. 그녀의 남편은 매독에 걸려 있으며, 안타깝게도 그녀마저 폐결핵에 걸려 있습니다. 상황이 참으로 비참하기 그지없습니다. 더욱이 그녀의 첫 아이는 장님으로 태어났고, 둘째는 사망했으며, 셋째는 귀머거리, 막내는 그녀와
성경은 아브라함을 모든 믿는 자의 조상이 되었다고 소개한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통하여 믿음이 무엇인지를 보여주시는 것이다. 히브리서 11장 8절에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의 유업으로 받을 땅에 나아갈 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으며" 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믿음으로 순종하였다.
존 파이퍼 목사는 "기독교는 뉴스다"라고 했다. 기자가 뉴스를 먼저 보도하면 시사 해설은 그 뒤를 따른다. 보도되지 않은 뉴스는 해설할 수 없다. 좋은 뉴스가 있으면 전파시켜야 한다. 설명과 주장은 그 다음이다.기독교는 사상이나 이념 이전에 뉴스라는 사실을 우리는 항상 기억해야 한다. 뉴스는 사상에 근거를 두지 않고 사실에 근거한다. 기독
예수님은 골고다 십자가에서 우리 죄를 위해 죽으셨다. 죄는 시기와 질투와 미움을 가져온다. 그러기에 죄는 사람과 사람사이에 높은 장벽을 만들게 한다. 죄는 살인을 자행하게 하고 전쟁을 일으키게 한다. 죄가 들어온 후에 인간관계가 파괴되었다. 가인이 그 아우인 아벨을 죽이게 되었다. 죄가 지배하는 세계에는 정당한 인간관계가 이뤄지지 않는다. 올바른 가족관계가
성경은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하라”고 말씀한다. 그래서 성도는 아무 것도 염려할 필요가 없을 뿐 아니라 염려해서도 안 된다. 모든 염려, 모든 고민을 하나님 앞에 내려놓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평강을 누리며 살아가는 사람, 그 사람이 바로 하나님의 백성, 성도들이다. 온갖 염려와 걱정으로 이리 뒤척 저리 뒤척 잠 못
사도 바울은 에베소에서 어떤 제자들을 만나 물었다.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바울의 질문은 너희가 믿을 때에 선교를 하느냐가 아니었다. 믿을 때에 제자훈련을 받느냐도 아니고 새벽기도를 하느냐도 아니었다. 바울은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고 물었다. 믿음의 사람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성령을 받는 일이라는 것이다. 성령
예수님은 승천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성령을 기다리라고 말씀하셨고, 제자들은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 기도하며 기다렸다. 오순절 날에 제자들이 함께 모여 기도하고 있던 집에 갑자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었다. 거기 모인 사람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한다. 이것이 오순절 성
"주 예수의 은혜가 모든 자들에게 있을지어다. 아멘." 이는 성경의 마지막 장 마지막 절이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로 시작한 성경은 주 예수의 은혜가 모든 자들에게 함께 있기를 비는 축복으로 끝을 맺는다. 구원은 오직 은혜로 받는다. 그래서 성도의 삶에서 은혜가 중요하다. 우리는 은혜가 아니면 설 수 없
성탄절과 부활절은 그리스도인들이 가장 기뻐해야 할 명절이다. 하지만 이번 부활절은 다 함께 기뻐하자고 말씀드리기가 매우 조심스럽다. 누가 4월을 잔인한 달이라 했던가! 지난 며칠동안 나라 전체가 침울하게 지내야 했다. 대형 선박 세월호의 침몰 사고로 실종자를 포함한 사망자가 300명에 육박한다. 이들 대부분이 아직 어린 학생들이라는 것이 더욱 가슴 아프게
4월에는 고난주간도 있고, 부활절도 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지만, 죽음의 권세를 이기고 다시 살아나셨다. 우리는 이 고난주간과 부활절을 맞이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의미를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그래서 구원의 기쁨과 은혜를 회복하고 누리며 살아야 진정한 성도라 할 것이다.사도 바울은 로마에 있는 성도들에게 편지를 쓰면서 "나는
솔로몬은 "사람이 여러 해를 살면 항상 즐거워 할지로다."(전11:8) 했다. 오래 사는 사람은 그 모든 날을 항상 즐겁게 살아야 한다는 말이다. 사람들은 행복하게 살려면 돈이나 명예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기의 꿈이 이루어져야 비로소 행복해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그 꿈이 이루어지기까지는 즐겁게 살기가 힘들 것이라고 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