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선주·고현초 6년

부엉이의 예언이라는 책 속에는 작지만 많은 이야기들이 있었다.

그 많고 많은 이야기중에 나는 ‘꼬마여우의 용기’와 ‘간 큰 여우’라는 소제목속에 이야기가 연결되어 있는 글을 읽고 독후감을 써 보려고 한다.

처음 ‘꼬마여우의 용기’를 읽을 때에는 그 여우가 다른 동물들이 하지않는 호기심에 대해 알지 못하는 일을 도전하는 모습이 나름 멋있어 보였고, 그 여우의 모습이 용기있는 모습이라고 나도 생각하고 있었으나….

‘간 큰 여우’라는 제목으로 넘어가서 계속 읽어내린 꼬마여우의 모습은 그 용기가 지나쳐 이젠 자만심이라는 교만스러운 모습을 하고 간 큰 여우가 되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남들이 하지않은 일을 한다는 건 용기있어 보이고 멋있어 보였지만 그것이 지나칠 땐 화를 자초하게 되는 것도 그 여우를 통해 더 알게 되었다.

그리고 잘난척 해 대던 모습이 있을 때 주위 동물들이 해주던 조언들을 잘 새겨 들었다면 사자에게 잡혀 먹히는 일은 없었을 것이라는 생각도 해보았다.

간혹 지금 내가 하는 일이 내가 생각 할 때에는 괜히 멋있어 보이고 남들이 하지않는 일이라 특별하고 우쭐대는 일들이 있을지라도 선생님과 어른들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 일에 대해 옳지 않다거나 잘못을 이야기 할 때는 한 번 더 신중하게 생각하는 일이 있어야 겠다.

작고 조그마한 여우였지만 용감하기도 했고, 신중하지 못한 것 같기도 했고…, 조금만 더 생각하고 행동했다면 자기의 목숨을 잃지 않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꼬마여우의 용기로 다른 동물들이 가지지 못했던 것을 얻을 수 있었던 것에는 박수를…, 하지만 무엇이든 너무 지나쳤을 경우 피해가 온다는 것을 알 수도 있었다.

내가 만약 그 여우였으면 그렇게 할 수 있었을까? 나는 꼬마여우처럼 그렇게 큰 용기는 없다. 그래서 꼬마여우가 더 대단해 보였다. 하지만 간 큰 여우를 읽고는 ‘저렇게 하면 안되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작지만 용감한 꼬마여우, 용감했지만 거만해져 생명을 잃은 여우…, 그 여우의 모습은 우리나라에 있었던 촛불시위와 비슷하다.

처음 시작했던 그 마음은 누가 생각해도 용기있어 보이는 일이다. 작지만 용감하였던 꼬마여우의 모습.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중엔 그 정도가 지나쳐 처음 마음이 목숨을 잃게 될 만큼 위험한 일이 된 것처럼 간 큰 여우의 모습이 되어버렸다.

그 촛불은 이젠 보이지 않는다. 어머니께 여쭤보니 그것을 과유불급이라고 했다. 지나치면 모자람 보다 못하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꼬마여우의 용기와 간 큰 여우의 이야기를 쓴 글쓴이의 생각은 내가 생각하기에는 어느 정도의 아름다운 용기는 좋지만 그 용기가 지나치면 나에게 해가 될 수 있고, 그 일이 간 큰 여우에게 일어난 것처럼 될 수도 있다는 것 같다.

그 이야기 속에서의 가장 기억에 남는 여우의 모습은 여우가 용감하게 사자 앞으로가 인사를 하고 다음에 다른 동물은 연못물을 못먹고 있었지만 아주 당당하게 먹는 모습이 기억에 남고, 또 여우가 사자가 굶주린 채 나타났을 때 앞으로 다가가 인사를 하자 사자가 왜 잘해주었는지 말하고 여우가 당황한 채 잡혀 먹히고 그 모습을 보고있는 동물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비록 작지만 용감했던 여우, 용감했지만 그 정도가 지나쳐 자기 목숨을 내놓은 여우. 만약 꼬마여우의 용기에 나오는 여우가 다른 동물의 말을 들었으면 그렇게 됐을까? 이젠 한 번 더 생각하며 행동하는 내가 되어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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