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도시 거제! 관광도시를 꿈꾸다③]
부럽다 충무김밥·진주비빔밥, 이름없는 거제 먹거리

1970년대 건립된 대우·삼성 양대 조선소가 있는 거제는 한때 전국에서 으뜸 가는 윤택한 도시였다. 그러나 2010년대 이후 조선산업의 침체로 수주 둔화, 조선 저가수주, 구조조정에 이은 조선 인력 부족 등 내홍을 겪은 거제는 점점 활력을 잃어가는 도시로 변해가고 있다. 
최근 거제는 도시에 생기를 불어넣기 위해 조선업을 보조할 먹거리산업으로 천혜의 자연경관을 앞세운 '관광산업'을 택했다. 하지만 거제 관광산업의 현재는 초라하기만 하다. 관광 인프라 구축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자연경관을 이용한 관광산업만 바라보고 있어서다. 
여기다 최근 몇년 사이 전 세계를 휩쓴 코로나19 여파 이후 오히려 관광산업이 퇴보하고 있는 모양새다. 현재 거제는 KTX 연결, 대전∼통영고속도로 연장, 가덕 신공항 건설 계획 등으로 관광인프라 확장 및 관광객 유치에 대한 시민의 기대가 어느 때보다 높은 시기다. 
이에 본지는 지금이라도 거제의 수려한 자연경관과 관광시설·교통 연계성·지역 특색에 맞는 먹거리와 관광상품 개발, 관광객 유치를 위한 축제 만들기에 일조하기 위해 이번 기획을 계획했다.   - 편집자 주

통영 중앙시장 상인이 통영꿀방 시식을  권하며 꿀방을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있다. @옥정훈 기자
통영 중앙시장 상인이 통영꿀방 시식을 권하며 꿀방을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있다. @옥정훈 기자

먹거리는 여행의 3대 요소인 볼거리·즐길거리· 먹거리 중 하나로 전 세계 유명 관광지는 반드시 그 지역의 지명을 붙인 유명한 음식이 있기 마련이다. 

그러다 보니 최근에는 관광지가 유명해서 도시를 찾는 게 아니라 음식 자체가 유명해져서 즐겨 찾는 이른바 '식도락여행'이 대세로 자리매김했다. 

관광의 묘미중 하나가 된 '식도락여행'은 그 나라 그 도시에서 직접 체험하는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여행의 즐거움을 제공하는 핵심요소로 관광객이 관광지를 결정하는데 적잖은 영향을 주고 있다. 

음식 맛도 중요하지만 도시 분위기와 음식에 얽힌 이야기는 하나의 콘텐츠가 돼 관광지의 가치를 더욱 빛나게 한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 말이 있다. 관광객이 타 도시를 방문하면서 가장 먼저 고민은 '무엇을 먹을까?'다. 이 도시는 어떤 음식이 맛있나, 어떤 음식이 유명한가, 여기에 오면 반드시 먹어야 하는 음식이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은 곧바로 여행 목적지를 정하는 척도로 이어질 수 있다.

사면이 바다인 거제는 신선하고 풍부한 해산물을 손쉽게 구할 수 있음에도 전국에 이름을 알린 먹거리는 없다.

거제9미(味)인 △거제대구탕 △거제굴구이 △멍게&성게비빔밥 △거제도다리쑥국 △거제물메기탕 △거제멸치쌈밥&회무침 △거제생선회&물회 △바람의핫도그 △볼락구이는 거제 안에서만 유명한 먹거리일 뿐이다. 

여기다 바람의핫도그는 거제에서 생산되는 재료로 만든 음식도 아닌데다 특정 기업이 판매하는 제품이라는 점에서 거제9미 선정에 대한 논란이 있었고, 최근에는 9미에서 제외하는 움직임까지 일고 있다. 

거제 먹거리를 전국에 알리기 전 거제만의 경쟁력 있는 먹거리 개발과 스토리텔링이 필요하다. 거제의 먹거리에는 차별화된 먹거리도 없을 뿐만 아니라 비즈니스·마케팅·홍보 전략이 빠져 있다. 

거제의 먹거리는 세계화는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이름을 알리지 못하고 있다. 때문에 거제의 먹거리를 활성화할 방안을 찾기 위한 기획은 거제에서 가까운 도시인 통영과 진주의 먹거리 취재로 계획했다. 

역사와 전통이 깊은 진주냉면과 진주비빔밥. @옥정훈 기자
역사와 전통이 깊은 진주냉면과 진주비빔밥. @옥정훈 기자

역사와 스토리텔링의 맛 '진주 냉면·비빔밥'

진주는 '진주냉면'과 '진주비빔밥' 등 두 가지 음식에 지명을 붙인 곳이다.

취재를 위해 진주를 찾은 날은 마침 '제22회 진주 논개제'가 한창이었다. 축제 현장에서 진주냉면과 진주비빔밥은 진주 중앙시장이 유명하다는 제보를 받아 식당을 찾아 나섰다. 

식당 종업원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냉면과 비빔밥이 유명한 도시는 진주 외에도 많지만 진주냉면과 비빔밥은 나름의 차별성과 스토리텔링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진주냉면'과 '진주비빔밥'이 다른 지역 냉면·비빔밥과의 차이는 냉면에는 육전, 비빔밥에는 육회가 곁들여진다는 점이다. 

진주시민에 따르면 조선시대 진주는 우시장과 도축장이 유명해 가까운 도축장에서 공급받은 고기를 신선한 상태로 냉면이나 비빔밥에 넣어 먹기 좋은 고장이었다. 

그래서 진주에서 육전과 육회를 넣은 비빔밥은 서민층까지 널리 먹을 수 있는 대중화된 먹거리가 될 수 있었고 지금까지 그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또 진주냉면은 진주가 신라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경주·상주와 함께 경상도 지역을 관장하는 주요 도시의 역할을 하면서 전통적으로 중앙에서 파견된 관리의 근무처였기 때문에 만들어진 먹거리다. 

냉면은 조선시대 관리나 양반들이 음주 후 해장을 위한 음식으로 기녀를 양성하던 관청인 교방에서 만든 음식이라고 알려졌다. 진주와 함께 냉면으로 유명한 도시인 평양·함흥 등도 모두 각 지역을 관장하는 곳이었다. 

지난 1994년 북한에서 간행된 '조선의 민속전통'에 "랭면 가운데 제일로 쳐주는 것이 평양랭면과 남한의 진주랭면"이라고 기록될 정도로 진주냉면은 역사와 전통을 가진 먹거리다.

최근 진주에서는 진주지역을 대표하는 음식인 냉면과 비빔밥을 더욱 발전시키고 알리기 위해 고급화 전략을 도입하자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이런 주장은 지난 6일 국립진주박물관 두암관 강당에서 열린 '진주교방음식의 전망과 과제'를 주제로 열린 학술대회에서 나왔다. 

지역의 전통음식을 발전시키기 위해 학술세미나를 연다는 것 자체가 거제지역에선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이 세미나에선 진주냉면과 비빔밥의 역사적 고찰은 물론 진주냉면과 비빔밥을 담는 그릇에 대한 연구와 함께 마실 차에 대한 개발과 대중화를 위한 밀키트 개발이 필요하다는 의견까지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통영중앙시장의 건어물들. 통영중앙시장의 건어물들은 가성비가 좋아 관광객들에게 인기가 높다. @옥정훈 기자
통영중앙시장의 건어물들. 통영중앙시장의 건어물들은 가성비가 좋아 관광객들에게 인기가 높다. @옥정훈 기자

가성비·대중화된 먹거리 '통영꿀빵·충무김밥'

진주 냉면·비빔밥과 마찬가지로 통영의 먹거리도 흔한 먹거리 아이템이다. 

통영을 대표하는 통영꿀빵은 천안 호두과자·경주 황남빵·강릉 안흥찐빵과 같이 유통이 쉽고 보관·포장이 손쉬운 먹거리다. 하지만 통영꿀빵은 천안 호두과자·경주 황남빵·강릉 안흥찐빵과는 분명한 차이점이 있다. 이들 도시의 경우 규격화된 탓에 맛·크기·모양이 비슷해 어느 가게를 가도 별다른 차이점을 느끼지 못한다. 

하지만 통영꿀빵은 다르다. 원래 통영 꿀빵은 '오미사꿀방' 한가지였으나 최근 몇년 사이 동피랑과 통영전통중앙시장을 중심으로 점포마다 파는 다양하고 색다른 꿀빵이 판매되고 있다. 

통영꿀빵은 통영을 방문한 관광객이 한번쯤 먹어보고 선물용으로 포장하는 효자 관광상품이 됐다. 뿐만 아니라 멍게빵 등 후속 먹거리의 개발도 이어지고 있다. 

또 오랫동안 통영의 대표 음식으로 유명한 충무김밥은 거제와 통영지역에서 뱃사람이 먹던 흔한 중참(中站) 먹거리였다. 그러나 도시의 영향력에 밀려 거제라는 지명은 없고 통영의 옛 지명인 '충무'라는 지명만 붙은 상태다. 

통영꿀빵과 충무김밥은 통영 관광객의 필수코스인 통영중앙시장과 동피랑의 상권을 살찌우는 효자상품이자 관광도시 통영의 또다른 랜드마크로 자리매김해 있었다. 

통영의 먹거리가 통영꿀빵과 충무김밥만 있는 것은 아니다. 통영 중심도심을 벗어난 곳에서도 흔하게 만날 수 있는 각종 건어물 점포의 상품도 통영관광 먹거리 중 하나다. 

통영의 건어물점이 가까이 위치한 거제의 건어물점과 달리 관광객에게 인기를 끌고 있는 이유는 우선 거제보다 저렴한 상품가격과 시식의 일반화다. 시식은 단순히 먹거리 제품의 맛을 볼 수 있는 서비스가 아니라 관광객 입장에선 관광지에서 느끼는 소소한 정으로 다가왔다.  

두 도시의 먹거리를 취재하면서 도시의 지명을 내건 유명한 먹거리는 SNS 등을 통해 그 도시를 알리는 훌륭한 홍보 전략이 된다는 점을 느꼈다. 

따라서 거제가 관광도시를 표방하기 위해선 먹거리는 반드시 확보해야 할 관광 아이템 중 하나였다. 

지금이 거제의 먹거리산업을 재정비할  적기로 보인다. 1000만 관광을 외치는 관광거제의 여건이 KTX 종착역 설치, 대전-통영고속도로 연장, 장목관광단지 개발 등 장밋빛 미래를 바라보고 있어서다. 

그동안 손 놓고 다른 지역 사례를 보며 부러워만 해야 했던 시절을 벗어나기 위해선 다른 지역보다 먼저 개발하고 계획하는 감각적인 정책이 시급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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