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기획]거제 천주교 순례길을 가다③-공곶이 강명식씨 인터뷰

'사람 손만큼 부지런한 것이 없고, 사람 눈만큼 게으른 것이 없다.' 어려서 어머니가 자주 들려주던 말이다. 눈으로 생각하는 것으로만 일은 이뤄질 수 없고, 행동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뜻이다.

사람의 손에 삽과 괭이를 쥐어주니 기적을 만들어 냈다. 공곶이는 사유지다. 강명식 부부가 5만여평의 땅을 40년도 넘는 세월 동안 갈고 닦아서 만든 자신들의 농원이다.

구부정한 허리, 거북이 등껍질같이 거친 손, 때 묻은 겨울야구모자 속에서 비집고 나온 흰머리의 85세 촌로는 여전히 흙 묻은 손을 바삐 놀리며 멀리서 찾아온 손님 같지 않은 손님을 맞았다.

"그냥 길만 밟고 다니면 괜찮은데 특히 사진 찍는 사람들은 자신의 목표에만 정신이 팔려있어서 자신의 발이 무엇이 밟고 있는지는 관심이 없다"라며 안타까움을 전했다.

공곶이가 천주교의 발상지라는 사실을 전국에 알리고 천주교 순례길조성에도 기여하기도 한 강씨는 "천주교순례길이라는 표식은 있다. 하지만 어떠한 순례길인지 알고는 가야하는데 그런 안내판이 없다. 누가 오더라도 이 길을 걸으면서 '이 길은 그런 길이구나, 역사가 있었구나' 하고 알고 다녀가야지, 그냥 관광코스로만 알고 간다면 안타깝지 않나" 안내판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강 할아버지는 1957년 공곶이를 처음 밟았다. 천주교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교회의 귀중한 이 땅에 반했다. 그리고 교회가 언젠가 필요로 할 이 땅을 지켜야겠다고 생각했다.

"조선소가 들어서고 돈 많은 많은 사람들이 나를 찾아와서 땅을 팔라고 했지. 땅을 팔면 손에 이렇게 흙을 묻힐 필요도 없고 처자식들 고생시킬 필요도 없지. 하지만 난 이 땅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어."

운명처럼 다가온 '글라디올라스' 뿌리 두 개를 얻고, 이것이 재원이 돼 1969년도에 정착하기까지 십여년이 걸렸다. 심혈을 기우려 지었던 밀감농사는 그의 인생의 가장 큰 시련이었다. 출하를 앞둔 그해 겨울 60년 만에 큰 한파가 왔고 모든 것이 깡그리 말라죽어 버린 것이다.

식음을 전폐하며 힘들어했다고 한다. 하지만 '더 큰일을 하기 위한 시련이다'라고 마음을 다잡고 수선화 2개를 사서 수선화 농사를 시작한 것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처음에 심어놓고 10년 되었을 땐 눈에도 잘 안 띄었고, 한 20년 정도 되니 꽃시장 가서 팔아서 돈맛을 볼 수 있었다. 한 30년 되니 온 밭이 수선화 밭이 됐다"고 말했다.

강 할아버지는 "글라디오스 2개를 가지고 지금 5만평이 넘는 땅을 확보하게 됐고, 수선화 2개를 가지고 전국의 관광객이 몰려 올수 있는 이런 정도가 됐다. 이것은 사람의 지혜와 능력 밖의 일이다"며 "어느 누구도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믿고 살아오다보니 지금까지 온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 두 꽃을 기적의 꽃이라고 부른다"고 설명했다.

2011년에는 천주교 성지조성을 위해 본인소유 토지 1400여평을 천주교 마산교구에 기부했다. "5만평 이상의 땅이 있다고 하지만 흙 한줌도 내 것이라는 생각은 추호도 없다. 나는 다만 하나님의 도구로써, 일꾼으로서, 머슴으로 살아온 것이다. 이것은 내가 이뤄서 내가 얻은 것이 아니다. 주님께서 다 마련해 주신 것이다. 나는 일꾼일 뿐이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85살이다. 처음부터 나의 목적은 이곳을 교회의 사적지로 정하게 하는 것이었다. 지금까지 이 소명으로 이 땅을 지켜온 이유다. 먼 훗날 사적지로써 보존이 되게 처리가 돼야한 다고 생각한다"고 주장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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