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기획]거제 천주교 순례길을 가다 ②

지세포-공곶이-예구-서이말등대를 잇는 천주교 순례길은 새봄을 맞아 관광객으로 넘쳐난다. 선교자 윤봉문이 떠난 후 형인 윤경문은 공곶이에 머물며 천주교 교리전파에 힘을 쏟았다.

그렇게 형제의 순교한 정신이 깃들어 있는 해안 순례길 공곶이로 향했다. 4㎞에 달하는 순례길 중에서도 빼어나게 아름다운 곳은 거제 팔경중 하나에도 속하는 공곶이다.

관광안내도 현판아래서 갈 곳을 가리켜 본다. 출발지인 예구마을에서 공곶이를 향해 초입구의 가파름을 극복하고 코너를 돌아서면 잘 닦여진 숲길이 나온다. 시야가 넓은 탓에 불어오는 바람도 시원하다.

숲길 중턱의 정자엔 그림같은 여인이 그림같은 포즈를 취하며 숨을 고르고 있다. 입고 온 외투의 두께가 걱정이 될 만큼 땀이 맺힐 때 쯤 산언덕에 오른다. 공곶이에 도착했음을 알리는 안내판이 보이고 철조망을 대신한 나일론망 뒤의 무덤들이 눈에 들어온다.

동백이 안 피었다고 투덜거린 것이 지난주인데 여기엔 지천에 붉은 동백이 낙화해 이불을 만들고 누워있다. 어디 붉기만 하랴. 하얗고 분홍빛의 동백들도 서로 다투어 자랑질이다. 200m에 달하는 동백터널의 돌계단을 지나오니 몽돌해안이다.

작은 조약돌이 아니고 바위다. 보트가 포말을 일으키고 지나간다. 아이가 쪽빛바다에 돌팔매를 한다. 누군가가 세워 놓은 돌탑이 제법 튼튼해 보인다. 문득 사람들의 환호성이 들려온다. "숭어다." 한 두 놈이 아니다. 바다 위를 여기저기 껑충껑충 뛴다.

노란색 수선화는 꽃대 위에서 당당히 머리를 내밀어 꽃봉우리를 터트리고 있다. 수선화(나르키수스(Narcissus))는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자존과 자만심' '이뤄질 수 없는 사랑'의 꽃말을 가진 꽃이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나르키소스(나르시스)라는 아름다운 청년이 샘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 반해 물속에 빠져 죽은 그 자리에 핀 꽃이라는 전설을 가진 꽃이다.

위치에 따라 조금씩 차이는 있었지만 공곶이는 수선화가 한창이다. 쪽빛바다와 흰 자갈해변, 흐드러진 노란색 수선화의 어울림에 '그림 같다'는 촌스런 표현이 절로 나온다.

천주교 성지순례의 길의 숨은그림찾기

'원래 그런 것'이란 없다. 당연하다고 생각돼 의문과 호기심을 품지 않았다면 이 세상이 이렇게 많이 변화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길을 떠나온 많은 사람들은 순례길을 걸으면서 어떤 생각들을 가지고 발걸음을 옮기는 것일까. '길이 예쁘다' '나무가 좋다' '꽃이 많이 피었다' '적게 피었다' 뭐 이정도일지도 모르겠다.

수선화가 곳곳에 피어 있다. 모두들 카메라를 꽃에 가져다 대고 배경에 몸을 맡긴다. 지금 발밑에 밟고 있는 꽃들은 상관이 없다. 공곶이 입구의 이름모를 무덤들엔 관심이 가질 않는다. 모두들 예쁘고 아름다운 광경들을 보러, 좋은 공기를 마시러 왔으니 말이다.

예구마을로 들어가면서 천주교 순례길의 장소표시는 쉽게 만날 수 있는 표지판이다. 하지만 조금 깊게 들어가서 '왜 이곳이 순례길이지?'라는 의문을 가진 사람이 있다면 그리고 그 의문을 가진 사람이 거제의 카톨릭의 유래를 모르는 사람이라면 좀 더 갑갑했을 것이다.

거제시청의 주도로 길이 만들어지고 이름이 명명됐지만 아직까지 안내서가 만들어져 있지는 않은 상태다. 하지만 관광을 하고 가는 사람들이 적어도 지금 내가 걷고있는 이 길이 어떤 유래가 있고 왜 이곳이 천주교 순례길인지는 알고 가야한다는 생각을 이 길을 조성되기까지 조금의 노력을 한 사람들이라면 가지고 있을 것이다.

시 주도로 만들어진 둘레길 사업에서 이곳이 천주교 순례길로 조성된 것은 관광 인프라조성을 위함이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 좋은 자원을 그냥 버려두지 말고 좀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역사가 존재하고 거기에 멋진 풍광이 있고, 따르는 사람들이 있다. 이보다 좋은 곳이 또 있으랴.

서이말등대는 선교자 윤봉문의 아버지가 대마도를 가기 위해 처음 온 곳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공곶이는 윤봉문이 순교하고 난 뒤에도 그의 형 윤경문이 거제도를 떠나지 않고 남아 포교활동을 한 곳이다. 예구마을 주민 대부분이 천주교 신자인 이곳에서는 다들 특별한 소임을 가지고 산다고 말한다.

예구마을 이경자씨(43)는 "예구공사가 120년을 맞이했다. 유교를 믿는 사람들이 있다고는 하지만 80%가 넘는 사람들이 천주교 신자들이다. 우리들은 각자의 맡은 소임을 갖고 살아가고 있다"며 자긍심을 드러냈다.

다음으로 이어지는 지세포에는 거제신앙의 씨앗 성교자 윤봉문 복자가 잠들어 있는 성지가 있다. 성지조성이 마무리가 되고 나면 분명 엄청난 순례객으로 천주교 순례길은 더욱 호응을 얻을 것으로 기대된다.

거제의 천주교 역사가 이어진 천주교 순례길이 더 많은 이에게 사랑받고 기억되기를 바래본다.

과거가 오늘을 만들었다. 오늘이 내일을 만든다. 누군가의 노력이 내가 걸어가는 길을 만들었고, 내가 꿈꾸는 미래를 다채롭게 해 줄 것이다.

공곶이 수선화를 찍기위해 수선화를 발을 밟고 서 있는 관광객에게 지금도 수선화 한송이를 심기위해 노력하고 있는 85살 강문식씨의 굽은 허리와 흙 묻은 손을 보여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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