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기획]거제 천주교 순례길을 가다①

지난해 프란체스코 교황이 우리나라를 방문했다. 너무도 큰 아픔을 준 세월호 사건이 온 국민의 가슴에 상처로 남아 아물어지지도 않은 그즈음, 교황은 종교를 떠나 위로의 존재로 온 국민에게 다가왔고 감동과 감사의 기억을 남기고 떠났다.

교황 방문 당시 조선시대 후기에 박해로 순교한 한국천주교 선교자 124명을 복자(카톨릭 교회가 죽은 사람의 덕행성을 증거해 부르는 존칭으로 그 경칭을 받은 사람을 말함)로 선포하고 기복식을 통해 선교자의 넋을 위로했다. 그 속에 거제에서 포교활동을 하다 순교한 윤봉문(요셉) 선교자가 포함돼 있다.

순교자 윤봉문(요셉) 성지. 거제시 일운면 지세포에 위치한 이곳은 1만평이 넘는 부지에 조성되고 있다. 지금도 한창 조성중인 이곳을 찾는 전국 순례단이 연 평균 5000명을 넘고 있다고 한다.

성지 입구에 들어서면 3m정도의 자연석 표지석이 이곳의 정체를 보여준다. 표지석을 지나면 마리아상이 오는 이의 발걸음을 싸안는 듯, 발 아래 켜 놓은 촛불이 봄바람에 흔들리며 타고 있다. 이를 지나면 예수가 못 박힌 십자가가 하늘높이 솟아있는 광장이 나온다. 이곳에서부터 순례자의집-편백나무 숲인 명상의길-순교자의 탑-십자가의 길-대나무 산책로 등으로 성지를 한 바퀴 돌아볼 수 있다.  

좋은 편백나무와 어른여자 허벅지보다 두꺼운 대나무가 빽빽하게 들어선 곳에서 마음껏 피톤치드를 들이켜 본다. 작은 연못으로 흘러내리는 물줄기는 갑자기 더워진 날씨의 갈증을 풀어준다. 순교자의 탑 주변에 설치해놓은 전망대에서 바라 본 지세포 해안은 단아하고 아름다운 여인을 연상할만큼 깨끗하다. 순교자의 현양탑 아래에 서면 자신도 모르게 저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단체사진을 찍어주는 행운으로 대화를 나누게 된 장평성당의 데레사 수녀는 "사순시기 동안 하나의 행사로 사순절 십자가의 길 기도를 한다"며 "본당에서 하기도 하지만 여기가 성지니까 초등부 학생들과 어울려 기도하러 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부활절을 맞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사랑으로 주신 예수그리스도 그 분을 희망하고 살아간다"며 "하나님을 믿는 분들이나 믿지 않는 분들 모두가 희망을 하며 살았으면 좋겠다"고 인사를 건넸다.

거제도에 복음이 전래된 시기가 언제인지는 분명하지는 않으나 신유박해의 영향으로 두 명의 신자가 거제도로 귀양을 왔고 이때 맺어진 거제도와 천주교의 인연은 병인박해를 지나면서 선교로 이어졌다.

병인박해 중인 1868년 신앙생활이 비교적 자유로운 대마도로 피신을 할 목적으로 지금의 서이말등대가 있는 곳에 윤사우의 가족이 정착하게 된다. 그의 둘째 아들이었던 윤봉문은 형인 윤경문과 거제도에서 신자를 모아 교리를 가르치고 전교에 힘쓰다가 37세의 나이에 순교를 했다. 그의 유해는 진목정 족박골의 선산에 안장했다. 지금의 옥포이다.

거제도의 신자들은 1978년 9월 윤봉문 요셉 순교 90주년을 맞이해 순교자와 무덤에 순교 기념비를 세웠고, 거제와 통영지역 본당들은 순교자에 대한 현양사업과 함께 묘지 성역화 사업을 추진했다. 그러나 선산이 다른사람의 소유로 넘어가 묘소를 이장할 필요가 제기됐고 곧이어 일운면 지세포리가 선정됐다. 

성지가 된 이 땅은 본래 서울 대교구가 마산교구에 기증한 곳이다. 대나무와 편백나무로 뒤덮여 길도 없었던 이곳을 신자들이 직접 나무를 베고 길을 만들며 헌신적인 봉사를 이어나갔다. 울창한 숲 사이로 십자가의 길과 묵주기도 길을 우선 조성했고, 중앙 부분에는 순교자 현양비도 건립했다. 순교자 현양비는 죄인들에게 씌우던 형틀인 칼을 형상화 한 것이다.

마산교구는 순교자 유해 이장에 관한 거제지구 사제단과 신자들의 청원을 받아들여 교구장 교령과 훈령을 발표하고, 2013년 4월20일 순교자 유해를 옥포에서 지세포리로 이장해 순교자 현양비 뒤편에 모셨다.

성지조성추진위원회 강권수 사무국장은 "처음 이곳에 왔을 때는 길도 없었다. 거제 천주교 신자들이 근로봉사를 해 대나무밭을 베어내고 장비를 대 길을 만들었다. 농로밖에 없던 곳을 버스가 다닐 수 있도록 만들었다"며 "성지조성은 계속해 나갈 계획이며, 우선 순례자들이 오면 쉴 수 있는 순례자의 집, 순교복자를 위한 기념성당을 지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그는 "2009년부터 성지사업에 참여를 했다. 모든 것이 '하나님 그 분의 뜻이다'라고 생각하며 삶에 반성도 하고 감사도 하며 산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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