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란드 바르샤바, 구도심에서 선대의 아픔·자부심을 읽다
폴란드 바르샤바, 구도심에서 선대의 아픔·자부심을 읽다
  • 거제신문
  • 승인 2019.0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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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 거제포로수용소, 유네스코 등재와 관광자원화 6]
도시 전체가 세계기록·문화유산인 폴란드 바르샤바
제2차 세계대전 겪은 '바르샤바' 도시 84% 파괴·인구 50% 사망
바르샤바 풍경화 통해 객관성·정밀 원칙으로 1760년대 복원
세계 최초·유일의 복구한 도시 전체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

제2의 파리로 불리던 폴란드 수도 바르샤바는 1944년 8월 제2차 세계대전에서 모든 것이 몰락했다. 독일은 폴란드의 저항을 억압하려고 바르샤바를 의도적으로 파괴했다. 수세기 동안 이어진 폴란드의 국가적 전통을 없애려는 의도로 폐허를 만든 것이다. 건축물 85%가 모두 무너져내렸고, 당시 인구 130만명 가운데 살아남은 이는 그 절반인 65만명 밖에 되지 않는다.

그러나 70년이 지난 현재의 바르샤바는 살아남은 자들이 선대의 아픔을 기억하고, 그 자부심을 잃지 않기 위한 노력의 치열한 현장을 엿보인다. 옛 러시아 양식과 현대 건축물이 공존하는 것 역시 전쟁 이후 복원을 위해 폴란드인들의 숱한 노력의 결과다. 그리고 그 결과는 1980년, 세계 최초이자 유일하게 복구된 도시 전체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면서 세계의 본보기와 더불어 위로를 받게 된다. 복원된 바르샤바의 구도심지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곳만 26㏊로, 축구장 면적 10배에 달한다.

바르샤바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바르샤바 역사지구로 정면에 성요한 대성당과 오른쪽 시계탑은 왕궁을 복원한 것이다.
바르샤바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바르샤바 역사지구로 정면에 성요한 대성당과 오른쪽 시계탑은 왕궁을 복원한 것이다.

20년 동안 이뤄진 재건의 역사

전쟁 이후 파괴된 도시를 박물관처럼 그대로 두고 다른도시로 수도를 이전할지 아니면 복원할지를 숱한 토론을 거쳐 '철저한 복원'을 하기로 결정했다.

복원의 기점은 검증 가능하고 객관적인 자료가 있는 폴란드의 황금기 1760~1770년대로 선택했다. 이후 폴란드는 시민·정부가 뜻을 모아 복원을 위해 세상에 있는 모든 바르샤바 관련 문헌과 지도·그림을 수집하고 이를 분석했다. 복원하기 위한 자료조사와 설계 등을 하는데 15년이 걸린 반면, 재건공사는 5년이 소요된 것만으로도 폴란드가 얼마나 정교하게 이를 구상했는지 알 수 있다.

자료조사에서 가장 혁혁한 공을 세운 건 폴란드의 마지막 왕 스타니스와프 2세(1732∼1798)의 궁정 화가였던 베르나르도 벨로토(1721∼1780)가 남긴 매우 정밀한 바르샤바의 풍경화들이었다. 벨로토는 16년 동안 폴란드의 궁정화가로 있으면서 황금기 바르샤바를 20점의 파노라마 풍경으로 남겼다.

그의 작품이 나폴레옹과 소련의 약탈로 흩어진 덕분에 그림은 고스란히 살아남을 수 있었고, 폴란드 정부의 노력으로 전후 반환돼 투시도 같은 파노라마풍의 풍경은 완전히 파괴된 바르샤바를 복원하는데 설계도만큼이나 정밀한 도움을 줬다. 이는 재건된 도시 곳곳에 벨로토의 그림을 설치해놓고 얼마나 정교하게 복원됐는지 언제든지 비교할 수 있도록 그려놓은 것만을 봐도 자부심을 느낄 수 있다.

전쟁 후 도시는 파괴됐지만, 바르샤바 시민들은 광장문화를 중심으로 폴란드 정신이 살아있는 옛 도시의 교회·궁전·시장 등을 세심하게 복구했다.

가장 황금기였던 시대를 복원했기 때문에 바르샤바 역사지구는 폴란드의 13세기부터 20세기까지의 역사를 아우르고 있다. 그래서 각 시대별 건축양식이 한 곳에 다 모여 있고, 바르샤바만의 독특함을 나아내고 있다.

이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많은 유럽국가에서 무너진 도시 재건화를 위해 노력해왔던 것에 머무르지 않고, 도시 전체가 가장 황금기였던 시기에 통합적으로 재건해나가기 위한 진지한 고민과 실행력을 통해 이뤄졌다.

1760년대 바르샤바의 축제와 시장이 열렸던 바르샤바 광장은 그 시절 그대로 바르샤바의 주요 행사가 열리는 축제의 장이다.
1760년대 바르샤바의 축제와 시장이 열렸던 바르샤바 광장은 그 시절 그대로 바르샤바의 주요 행사가 열리는 축제의 장이다.

바르샤바 역사지구의 역사

바르샤바는 1569년에 폴란드의 수도가 됐고, 바르샤바 역사지구는 13세기에 형성됐다. 바르샤바의 가장 중심지인 시장 광장은 그 중심에 있었고, 18세기까지 바르샤바에서 가장 중요한 공간이었다. 이곳에서 시장과 축제가 정기적으로 열렸다.

바르샤바 역사도시의 건물들은 고딕 양식부터 바로크 양식까지 다양한 건축양식이 혼재돼 있고, 대부분 오래됐으며 독특하다. 이 독특함을 그대로 재건했다. 이는 폴란드의 주요 문화공간을 되살리려는 의지를 상징하며, 20세기 후반에 이루어진 복구기술의 모범이 됐다.

주변 도로는 도시를 둘러싼 도시 성벽 등 오래된 건축물이 있고, 15세기에 완공된 성요한 대성당은 제2차 세계대전 중에 파괴됐지만 지금은 본래의 고딕 양식으로 복구됐다.

폴란드 왕궁은 14세기에 지어졌는데, 18세기에 왕궁의 동쪽 부속건물을 바로크 양식으로 바꾸고, 폴란드 왕정 마지막에는 왕립도서관을 증축해, 14세기 고딕양식부터 18세기 바로크양식 등 왕궁이 무너지기 직전 다양한 건축양식이 존재했던 그 모습 그대로 복원해냈다.

성요한 대성당·성모마리아 교회·성제임스 교회·삼위일체 교회 등의 종교 건축물 및 궁전도 전체 복구 과정에서 원래의 자리로 재건됐고, 구 시가지에 있는 옛 시장 역시, 13세기 현장을 그대로 담았다.

바르샤바가 폐허가 됐던 순간의 기억을 그대로 담은 바르샤바 민중봉기 박물관.
바르샤바가 폐허가 됐던 순간의 기억을 그대로 담은 바르샤바 민중봉기 박물관.

재건, 폴란드의 의지+시민의 힘

전쟁 후 폴란드정부는 재건에 총력을 기울였다. 가장 큰 피해를 입었던 구도심을 재건할 때 중요한 사료가 돼줬던 것은 이탈리아 화가 베르나르도 벨로토의 정교한 그림들이지만, 황금기 도시의 풍경을 완벽하게 재건해낸 것은 시민들의 모금과 노력이었다.

이 노력에 대한 가장 큰 보답은 1980년 바르샤바 역사 지구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였다. 그리고 시민들은 역사의 단서가 남아 있는 것은 최대한 활용했다. 총탄의 흔적이 남아 있는 오래된 돌들은 재건을 위해 그대로 사용했고, 매끈한 돌들은 새로 짓는데 이용됐음을 보여준다.

또 바르샤바 왕궁 시계탑의 바늘은 독일군의 폭격이 떨어졌던 오전 11시15분에 멈춰 서 있고, 매일 같은 시간에 트럼펫 연주가 울린다. 트럼펫 연주소리가 무엇인지 모르는 관광객들의 발걸음은 멈춰지고, 폴란드 시민들은 잠시 하늘을 쳐다본다. 아픈 역사를 잊지 않겠다는 그 마음과 다시 재건해냈다는 자부심을 확인할 수 있는 시간이다.

역사현장 앞에서 자부심 느끼다

바르샤바 봉기박물관은 폴란드 청소년들이 청소년기에 1회 이상은 방문하는 곳이다.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전 영광스러웠던 현장과 전쟁 이후 피폐해진 도심지의 모습, 그리고 복원하기까지 3단계의 현장이 모두 다 나타나 있기 때문이다.

그곳에서 청소년들은 아픔과 자부심을 동시에 느끼는 현장이 된다. 독일군에 의해 인구 50%를 잃은 아픔, 당장의 살 곳이 사라진 피폐함 등을 이겨내고 가장 화려했던 시기로 복원해낸 선대들의 노력이 자부심으로 일깨우는 것이다.

이는 우리의 문화유산이 수도 없이 겪은 전쟁과 식민지배로 맥을 잇지 못하는 것에 대한 반성으로 이어진다. 기록의 소실, 복원에 대한 철학과 원칙의 불충분, 그리고 사회적 논의의 부재는 '복원이냐, 철거냐'에 대한 의견 소통조차도 이뤄지지 않은 결과를 내놓았기 때문이다. 기록의 중요성은 한 사회의, 도시의 재기의 정신을 일깨우기 때문에 '복원'이 아닌 '철거'를 택한 우리 역사에서 기록은 더 중요한 가치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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