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 현재진행 중인 아픈 역사를 눈물로 마주하다
캄보디아, 현재진행 중인 아픈 역사를 눈물로 마주하다
  • 거제신문
  • 승인 2019.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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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 거제포로수용소, 유네스코 등재와 관광자원화 ④]
아픈 역사 그대로 마주한 캄보디아 킬링필드
연간 관광객 600만, 다크투어니즘으로 '투올슬렝 학살 박물관'은 필수코스
전 인구 25% 학살한 사건 '기록'이 문화유산이 됐다
200만명이 넘는 학살로 여전히 시신발굴 중인 킬링필드.
200만명이 넘는 학살로 여전히 시신발굴 중인 킬링필드.

1979년 인간이 정치력에 취해 어디까지 잔인할 수 있는지, 전 세계를 놀라게 한 캄보디아의 킬링필드 학살.

이 학살로 캄보디아는 당시 인구 800여만명 가운데 4분의 1이 목숨을 잃었다. 캄보디아의 현재 인구 1648만여명은 당시 살아남은 자이거나, 정치력에 기생했거나, 기득권자가 무시해도 될 만큼 무지했거나 중 하나의 자손들이다. 캄보디아에서 행해졌던 이 학살은 당시 뉴욕타임즈 특파원을 통해 세상에 알려졌고, 기득권세력에서 고문관으로 활동하며 기록하고 사진을 촬영했던 이가 양심고백을 하면서 모든 것이 밝혀졌다. 그리고 2009년, 투올슬렝 학살 박물관 기록물은 세계기록유산에 등재가 된다.

킬링필드 학살 당시 희생자들이 S-21 교도소에 수감될 때 찍힌 사진이 전시돼 있는 옛 S-21 교도소 현 투올슬렝 학살 박물관.
킬링필드 학살 당시 희생자들이 S-21 교도소에 수감될 때 찍힌 사진이 전시돼 있는 옛 S-21 교도소 현 투올슬렝 학살 박물관.

반인륜범죄의 극한을 보여준 킬링필드의 학살

킬링필드는 1975년 캄보디아의 공산주의 무장단체이던 크메르루주 정권이 론 놀 정권을 무너뜨린 후 1979년까지 노동자와 농민의 유토피아를 건설한다는 명분 아래 최대 200만 명에 이르는 지식인과 부유층을 학살한 사건이다.

크메르루주의 지도자 폴 포트는 1975년 4월 미군이 베트남에서 철수함에 따라 약화된 캄보디아의 친미 론 놀 정권을 몰아냈다. 당시 폴 포트가 정권을 잡자 론 놀 정권의 부패에 염증을 느끼고 있던 국민들은 환영했다.

그러나 폴 포트는 새로운 농민천국을 구현한다며 도시인들을 농촌으로 강제 이주시키고, 화폐와 사유재산·종교를 폐지했다. 이 과정에서 과거 론 놀 정권에 협력했다는 이유로 지식인·정치인·군인은 물론 국민을 개조한다는 명분 아래 전 인구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200여만 명을 살해하였다. 그리고 크메르루주 정권은 1979년 베트남의 지원을 받는 캄보디아 공산동맹군에 의해 전복됐다.

투올슬렝 학살 박물관 기록물은 S-21 교도소와 심문 시설에서 생산된 5000명이 넘는 수감자의 사진과 전기, 고문을 통해 받아낸 자백서, 수감자, 교도관, 간수들에 관한 것들이다.

현재는 박물관으로 조성된 S-21 교도소에서 2~3개월 동안 1만5000명 이상이 수감 후 처형됐다. 수감자들은 강제로 자술서를 써야 했고 가족·친구·동료를 배반하도록 강요받았다. 1979년 크메르루즈 정권의 몰락 이후에야 교도소는 기념관으로 전환했다.

투올슬렝 학살 박물관 기록물에는 교도소와 취조실이 그 자리에 있었을 당시의 사진과 문헌들이 들어 있다. 이전에 고등학교였던 이곳에는 1만5000명 이상의 죄수가 수감돼 있었다.

이 기록물은 민주 캄푸치아의 교도소 체계를 보여주는 사진 기록물 가운데 가장 온전하게 남아 있는 것이다. 당시 교도소는 3년8개월 동안 인구의 25~30%에 해당하는 약 200만~300만명의 목숨을 앗아 간 체제의 근간이 되는 부분이었다. 이 기록물은 또한 캄보디아 현대사의 중요한 일부이기도 하다.

세계 기록유산의 일부로서 그 중요성은 인간이 같은 인간에게 저지른 비인간적 행위에 대한 증언이고, 20세기에 일어난 가장 극악한 비인간적 범죄 중 하나에 대한 기록으로 세계사에 엄청난 충격을 안겨줬다는 점에 기인한다.

한편 2009년 투올슬렝 학살 박물관 기록물이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되고 2년이 지난 2011년께야 유엔과 캄보디아 정부가 공동설립한 크메르루주 전범재판소는 크메르루주 정권의 핵심인사 4명에 대한 재판을 시작했다. 이들은 전쟁범죄·반인도적 범죄·학살·고문 등의 혐의를 받았다. 수백만의 자국민을 죽인 이들이지만 4명 중 2명은 여전히 교도소에서 수감 중에 있다.

킬링필드 내부서 시신 발굴 현장 보존 모습.
킬링필드 내부서 시신 발굴 현장 보존 모습.

세계적 중요성·고유성·대체 불가능성

투올슬랭 학살 박물관 기록물을 통해 드러난 범죄는 국가적·지역적·세계적 차원에서 역사적·정치적·외교적·사법적으로 엄청난 충격을 안겼다.

투올슬렝 학살 박물관 기록물은 대부분 킬링필드에서 처형됐거나 투올슬렝 교도소에 수감됐다가 사망한 죄수들의 운명을 상세히 설명한다. 사진을 찍고 '자백서'와 신상 기록을 남긴 꼼꼼한 업무 수행 계획은 보안 조직의 구조와 구성을 보여주는 문헌들과 결합돼, 가혹 행위를 자행한 기관을 들여다볼 수 있는 매우 소중한 자료가 됐다.

가장 충격적인 것은 이 사건이 자국의 집권 세력이 전국에 걸쳐 체계적으로 극도의 유린을 자행한 점이다. 킬링필드 내부에는 여전히 수습하지 못한 시신들이 흙속에 파묻혀 있고, 현재까지 유골수습이 진행되고 있다. 이는 고스란히 관광객들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다.

박준한 통역사는 "투올슬렝 학살 박물관 기록물을 본 이들은 경악을 금치 못한다. 가혹 행위가 조직적으로 이뤄진 데에는 학살을 얼마나 많이 행했느냐는 경쟁 심리가 작용했음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권력자일수록, 지지하는 사람이 많을수록 더 잔인한 방법으로 죽임을 당했는데 그 역사적 사실 모두 기록화 돼 있고 사진이 촬영돼 있어 기록유산으로 남을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당시 시대상을 사진으로 남긴 크메르루즈 집단의 가혹성은 킬링필드에 여전히 흙속에 파묻힌 옷가지를 보면 현실임을 보다 깨닫게 된다. 킬링필드를 방문한 동서양을 막론한 관광객 모두 손수건에 얼굴을 파묻는 이유도 그 잔상이 여전히 현재진행형이기 때문이다.

독일에서 동남아로 관광온 로라(Laura·27)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돼 있는 투올슬렝 학살 박물관과 킬링필드를 연계해 방문하게 됐다. 박물관에서 그들의 잔인하면서도 세세한 기록에 경악했다면, 킬링필드에서는 그들이 여전히 그 잔혹한 행위를 하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고 말했다.

이곳을 방문한 이들 대부분은 세계기록유산임에도 꾸며져 있는 것이 아닌 당시 시대상과 현실상은 그대로 반영된 점을 높이 평가했다.

킬링필드 관리인 쌈체(Sam Chea·31)씨는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잔인한 일이 세계에서 알게 되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있다. 세계기록유산 등재에 자국민 중심으로 이뤄진 것이 아니라 국가 차원에서 진행됐기 때문"이라며 말을 아꼈다.

그러면서 그는 "킬링필드와 투올슬렝 학살은 캄보디아에서는 역사적 수치이자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아픔"이라며 "사건이 발생한지 40여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우리는 아직 치유할 수 있는 상처가 아니기 때문에 사건 수습이 더뎌지는 것, 우리가 지금 할 수 있는 건 이를 보존하고 기억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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