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진강욱 (116㎝×72.7㎝. oil on canvas.2023.)

작가 진강욱 작품 '장승포항' @양달석 제공
작가 진강욱 작품 '장승포항' @양달석 제공

학창시절 친구들과 함께 장승포에서 애광원 앞으로 이어진 신작로를 따라 지세포까지 걸어간 적이 있다. 꼬리가 긴 여름날의 태양이 서산으로 기울어 산 그림자 드리워진 도로에 옅은 어둠이 내리기 시작한 저녁 무렵이었다.

비포장길 여기저기 널린 돌부리에 걸리지 않으려 발아래서 눈을 떼지 못한 우리는 얼마 걷지 않고 목은 저리고 다리도 아프다며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모두 도로 가장자리에 걸터앉아 자연스레 하루에 몇번은 만나서 익숙한 장승포 바다 풍경을 바라보았다.

그때의 바다는 채 가시지 않은 푸름이 남은 하늘과 맞닿았으며 노을에 연분홍색 물든 낮은 구름이 넓고 긴띠를 이뤄 수평선 위에 부유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건 잠시, 이내 대기의 빛은 약해지고 하늘색이 바래져 수평선도 아스라이 더 멀어지면서 밝은 기운이 서서히 사그라들기 시작했다.

멍하게 바라보던 우리가 순간 엉덩이에 묻은 흙먼지를 털어내고 일어섰을 때는 길 주변에도 어느새 어둠이 내리고 있었다. 짧은 순간의 변화였다. 그건 그날의 얼굴이 우리에게 작별을 고하는 느낌이었다.

우리는 발걸음을 옮기기 전 아주 잠시의 침묵으로 영화의 마지막 장면 같은 경험, 자연이 아스라이 사라지는 순간을 각자의 가슴에 갈무리했다. 나 또한 그날의 풍경에서 멋지고 아름다운 것이 주는 서글픔의 미묘한 감정을 알았으며 대상을 특정할 수 없는 아득하고 막연한 그리움의 서정도 경험하게 됐다. 

지금의 장승포항은 40년 전의 모습과는 확연히 다르지만 그 너머의 하늘과 바다는 여전히 가슴 설레게 하는 무언의 아득함이 있다. 작가 진강욱의 작품 '장승포항'역시 그런 정서를 잘 담았다는 느낌이 든다.

특유의 경쾌하고 현대적인 기법과 리듬 있고 유연한 터치로 바다의 물성을 맑고 빛나게 표현해 현재의 모습을 구현하지만 장승포바다 특유의 서정을 작품에 불어넣어 시공을 넘어선 깊이의 표현은 바다를 알고 기대어 살아온 삶의 이력이 있기에 가능했으리라 생각한다.

한편으로는 끝없이 넓고 장대한 바다의 속성을 미니멀하게 표현해 자신만의 감성으로 깊은 울림을 구현했음도 느껴진다. 

바다에서 태어나 지금껏 토박이 거제 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진강욱 작가의 작업은 그동안 잔잔하고 순한 모습의 바다를 담아 왔지만, 바다의 속성처럼 다양하고 역동적인 모습으로 진화하고 변해갈지 기대하고 응원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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