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거제의 성(城)18】 발굴하고 연구해야 할 거제의 성곽 유적

거제는 성곽유적의 보고(寶庫)다. 삼한시대 변진 두로국부터 왜와 국경을 마주한 탓에 수천년 동안 왜구의 침입이 잦았던 거제지역 성곽 유적의 역사 속엔 외적을 막아 나라와 가족을 지키려 했던 선조들의 호국정신이 깃들어 있다. 특히 거제지역의 성은 시대별·형태별·기능별 등 다양한 성이 존재해 성곽의 박물관으로 불린다. 섬 하나에 성곽 유적이 이만큼 다양하게 많은 곳은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다.
본지는 거제지역의 성곽 유적을 통해 선조들이 만들어온 역사의 현장을 살펴보고 그 의미를 되새기려 '거제의 성'을 연재한다.  - 편집자 주

율포산성의 서쪽 잔존 성곽. 율포산성의 성곽 대부분은 무너져내려 겨우 흔적만 남아 있다.
율포산성의 서쪽 잔존 성곽. 율포산성의 성곽 대부분은 무너져내려 겨우 흔적만 남아 있다.

● 율포산성(栗浦山城)

1664년(현종 5년) 장목면에 있던 율포진이 동부면으로 옮겨지고 1724년(경종 4년)에는 다시 장목면 율포(栗川)로 돌아왔다는 기록이 있다.

하지만 이후에도 동부면 율포진은 방어진의 역할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1873년 지방지도에는 동부면 율포진의 진지도가 나타나 있다.

진지도에는 각종의 관아 건물이 그려져 있고 이 시기 설치된 포수청(砲手廳)도 눈에 띈다.

당시 이곳에 있던 전선에 딸린 군사는 한선기패관(翰船旗牌官) 5명, 도훈도(都訓導) 1명, 좌우포도(左右捕盜) 2명, 사부(射夫) 18명, 화포수(火砲手) 10명, 포수(砲手) 24명, 정수(碇手) 3명, 능로군(能櫓軍) 120명으로 구성돼 있었다.

동부면 율포진에는 성이 없다고 전해지지만, 율포진 뒷산에는 '율포산성'이 있다. 율포산성은 동부면 거리에서 부춘고개를 넘어 율포고개에 인근 봉우리에 쌓은 테뫼식 석성이다.

경상우수영이었던 가배량과 가까운 곳에 있어 인근에 위치한 탑포산성과 함께 가배량진성의 방어성 역할을 했을 것으로 보인다.

율포산성의 축조수법은 조선시대 것으로 보이지만 만들어진 역사는 어느 기록에도 없다. 율포산성 아래에 있는 율포진 터에는 원래 성이 있었다는 기록이 있지만 율포산성과 연관성이 없어 보인다는 것이 학계의 설명이다.

율포산성은 노자산 자락 294m 9부 능선(동부면 율포리 산23-3번지)에 위치해 있다. 성의 규모는 둘레 278m·높이 2.7m·폭 2.4m로 대부분 무너져 내려 흔적만 남은 상태다. 다만 율포산성은 어떤 형태로든 동부면의 율포진이나 가배량진과 밀접한 관계를 가진 유적임은 분명하다.

주민들에 따르면 율포산성 안에는 철마(鐵馬)가있었고 가뭄 때 주민들이 성으로 올라와 기우제를 지냈다고 한다.

구율포진의 관청은 기록을 찾을 수 없지만, '1872년 지방지도 율포진지도(地方地圖 栗浦鎭地圖)를 보면 알 수 있다. 신율포진에는 무사청·화포청·포수청·사령방·이청·전정(殿庭)·동헌·군관청·화약고·사창(社倉)·변고(邊庫)·어변소·해문수구(海門水口)가 2군데 그려져 있다.

● 탑포산성

탑포산성의 유일한 성문지. 성 내부에는 정충장군의 묘가 위치해 있다.
탑포산성의 유일한 성문지. 성 내부에는 정충장군의 묘가 위치해 있다.

거제시 동부면 탑포리 산90-107번지 소재한 탑포산성은 탑포 남쪽 413.6m의 탑포산 봉우리에  있는 산성이다.

탑포마을 위 고개에서 저구마을 내려가는 길목 오른쪽의 낮은 등성이가 보이는데  탑포마을 사람들은 '시루봉'이라 부른다.

하지만 주민 대부부은 이 곳에 산성이 있다는 사실을 잘 모르고 있으며 산성의 존재를 아는 주민들도 구전에 따라 왜적을 감시하던 망성이라는 말만 전해들었을 뿐 산성에 대한 이력이나 자세한 내용을 아는 사람이 없다.

탑포산성은 율포산성과 마찬가지로 문헌 기록도 전무해 발굴과 연구가 필요한 성곽 유적중 한 곳이다.

탑포산성에서 내려다본 탑포마을 모습.
탑포산성에서 내려다본 탑포마을 모습.

1995년 만들어진 동아대 박물관 거제성지보고서에 따르면 보고서 작성 당시 탑포산성은 둘레 188m·높이 1.2m·폭 2.9m 정도의 규모였다.

또 보고서에 따르면 탑포산성은 축조수법이나 구조·위치, 인근의 가배량진·율포산성·율포진·다대산성과 입접한 점 등을 고려해 볼때 조선시대에 지어진 성으로 추정하고 있다.

축조 목적은 율포성과 같이 북쪽에 있는 가배량성이나 율포진과 연결된 거제도 남서부지역 관망초소와 같은 임무를 수행한 것으로 보인다.

한편 이 산성 정상에는 조선시대의 정3품(오늘날의 차관급) 무관 벼슬인 '절충장군 묘'가 있는데 동부면 율포마을의 최씨 문중 '광정공파' 조상의 묘로 조상의 묘라는 것만 알고 있을 뿐 어느 시대 사람인지에 대해선 모르고 있었다.

● 수월산성지(水月山城止)

사등성·고현성과 함께 조선초 거제도민 환도의 역사를 간직했던 수월산성지는 지난 2014년 전원단지 공사로 흔적을 볼 수 없게 됐다.
사등성·고현성과 함께 조선초 거제도민 환도의 역사를 간직했던 수월산성지는 지난 2014년 전원단지 공사로 흔적을 볼 수 없게 됐다.

지난 2014년 거제지역 역사에 있어 소중한 문화재 하나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비지정문화재라는 이유로 사라진 이 문화재는 고려시대 거창지역으로 이주했던 거제도민(巨濟島民)이 거제현의 복구로 고향에 돌아와 처음 정착한 치소(治所)였던 수월산성지(水月山城止)다.

비록 지방문화재에 조차 등록되지 못할 만큼 초라한 규모에 훼손이 심한 상태였지만, 2013년까지만 해도 문지와 평면 원형의 석축이 어느 정도 남아 있어 형태 파악이 가능한 상태였다.

수월산성은 수양동 수월마을 뒤편 구릉지에 있었던 석축성으로 수월회관에서 돌산교회 방향으로 올라가면 위치한 전원단지 터에 있었고, 거제지역에 만들어진 성곽유적중 가장 작은 규모의 성이었다.

체성의 둘레는 67.5m·높이 2m·폭 1.8m 정도로 체성의 형태를 확인하기 힘들지만 인근 전원주택 단지의 신축공사로 사라지기 전까지 평면 원형의 석축이 남아 있어 조선시대 성곽유적임을 알 수 있었다.

성곽의 구조는 남쪽 능선 아래 체성을 개구한 개거식(開据式-성문 개구부의 상부가 개방된 형태) 문지로 내·외벽 면석은 대석을 이용해 쌓았고 체성은 주변의 막돌을 이용해 내·외벽을 겉쌓기 하고 속에 잡석을 채워 넣었다.

수월산성은 고려말 거창·산청 등 서부경남(진주·산청·거창) 지역으로 피난 갔던 거제도민이 1422년(세종 4년)에 환도하면서 수월리에 목책을 설치할 당시 축조했을 가능성이 높은 곳이다.

지난 1995년 동아대 박물관의 '거제시 성지 조사보고서'에 따르면 성지에는 문지를 비롯해 주변에 목책을 둘렀던 흔적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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