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아리’로 시작되는 거제의 봄맛
‘병아리’로 시작되는 거제의 봄맛
  • 정칠임 기자
  • 승인 2020.0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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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사람만 아는 거제의 맛①]일명 ‘병아리’로 불리는 ‘사백어’
거제 사람이라면 그냥 넘길 수 없는 추억과 고향의 맛
지금 아니면 1년을 기다려야 하는 제철음식 ‘병아리’
3~4월 둔덕.남부.동부 해안에서 나오는 일명 '병아리'로 불리는 '사백어'. 봄철 입맛을 돋우는데 최고다. 사진은 사백어회무침.
3~4월 둔덕.남부.동부 해안에서 나오는 일명 '병아리'로 불리는 '사백어'. 봄철 입맛을 돋우는데 최고다. 사진은 사백어회무침.

 봄 손님 절로 몰고 오는 '사백어'

거제 사람들의 봄은 사백어로부터 시작된다. 사람들은 구조라 춘당매가 피는 것에서 긴 겨울의 끝을 보고, 공곶이 수선화가 샛노란 꽃봉오리를 맺는 것에서 봄이 온 것을 눈치 챈다.

하지만 거제도 바닷가 사람들은 뭐니 뭐니 해도 바다 하천에서 건져낸 파닥거리는 사백어 맛을 봐야 제대로 봄인가 싶다. 바다가 지어낸 꿈틀대는 사백어를 우물우물 혀로 더듬으며 봄의 정기를 체감하는 것이다.

거제 사람들은 주로 ‘병아리’라고 칭하지만, 정식 명칭은 죽으면 몸이 하얗게 된다해서 ‘사백어(死白魚)’다. 3월초부터 4월말까지 한 달반 정도의 기간에만 먹을 수 있고, 잡히는 곳도 거제 둔덕·동부·남부면 등 몇 군데로 한정돼 있다. 이때가 아니면 또 1년을 기다려야 한다는 사실이 사백어 맛을 더 특별히 만든다.

거제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은 봄볕이 드리우는 3월이 되면 양철동이 가득 사백어를 담아 이고 팔러 다니던 아주머니들에 대한 추억이 있다. 그런 아침이면 아버지의 술주정에 간밤에 핀잔하던 어머니도 어느새 달려가 사백어 한 대접을 샀다. 제철이라 한창 돋은 앞마당의 잔파를 숭숭 썰어넣고 계란을 부드럽게 풀어 넣은 사백어탕은 숙취로 목이 컬컬해하던 아버지의 아침상에 반가이 올려졌다.

그러니 거제 사람이라면 이 사백어 철을 그냥 넘길 수 없다. 사백어는 단순히 맛으로 먹는 먹거리가 아닌, 내 유년의 빛나던 ‘봄’을 호출해주는 신호체계가 되며 그리운 부모님의 체취도 묻어있는 것이다. 또한 사백어가 무슨 맛이냐고 묻는다면 그것만큼 우문이 없다. 사백어 철이 되면 식당에서는 ‘사백어 개시’라는 안내문만 하나 내붙여 놓으면 된다. 소문을 따로 내지 않아도 손님이 알아서 철을 알고 찾아든다.

사백어전과 사백어로 끓인 맑은 탕.
사백어전과 사백어로 끓인 맑은 탕.

워낙 깨끗한 물에서 살아서 물에 슬렁슬렁 헹구면 손질이 끝난다. 식당에서는 사백어 요리를 주로 코스로 내놓는데 회무침·전·탕 순이다.

첫 번째는 새콤달콤한 양념을 끼얹어 먹는 회무침이다. 풋풋한 향내 풍기는 잘게 썬 미나리와 냉이·봄나물류와 채썬 배가 식탁에 준비된다. 잠시 기다리면 둥그런 대접이 상에 놓여 지는데, 그 뚜껑을 열면 사백어 무리가 산채로 반짝반짝 빛을 내며 꿈틀댄다.

상에 둘러앉은 이 중에 여성이 있다면 비명도 아닌 함성도 아닌 괴성이 절로 나올 것이고, 남성이 있다면 체면에 비명을 안으로만 삼키고 말 것이다. 접시 위에서 필사적으로 나붓거리는 생명의 함성 앞에서 먹는 것을 잠시 멈추고 숙연해진다. 인간 본성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생명에 대한 측은함과 미안함과 안타까움과 호기심이 한꺼번에 샘솟는 경험을 하게 된다.

사백어 회무침을 먹는 법은 개인 접시에 사백어를 조금씩 덜어내 준비된 야채를 올리고 초장을 끼얹는다. 초장을 뒤집어쓴 사백어는 몸을 비비적거리며 야채와 섞이는데 입속에 들어가면 생각보다 빨리 그 움직임이 준다. 낙지처럼 혀에 달라붙거나 꿈틀거리지 않고 손쉽게 제압돼 풀냄새에 섞이고 새콤달콤한 초장과 어우러져 상큼하고 식감이 좋다.

접시에 남은 사백어는 주방으로 가져가 잔파·계란·밀가루와 버무려 고소한 전으로 나온다. 한점을 입에 넣으면 달큰하게 익은 파향이 먼저 나고 하얗게 익은 사백어가 부서지며 고소하고 진한 맛을 낸다. 여럿이 젓가락을 몇 번 가져가다 보면 어느새 접시가 텅 비어버린다.

마지막 코스는 계란을 부드럽게 풀어 끓인 담백한 사백어탕이다. 뽀얀 국물에 사백어가 듬뿍 들어 있고 새파란 파가 송송 들어가 있어 시각을 자극한다. 한 숟갈을 뜨니 시원하고 깊은 육수 맛이 난다. 사백어는 가늘고 부드러워 씹지 않아도 그대로 목젖을 부드럽게 타고 내려간다.

3월 찬기운이 아직 남아있는 기온에 뜨듯한 국물이 뱃속에 채워지니 마음까지 든든하고 훈훈해 진다. 사백어는 비린 맛이 적고 담백하고 소화가 잘돼 애·어른·노인 할 것 없이 다 좋아한다.

사백어의 생태

사백어는 연안 하천에서 주로 잡힌다. 바다에서 살다 3·4월 알을 낳기 위해 하천을 거슬러 올라온다. 본래 1년생 소형종으로 다 자라면 몸체가 5~6㎝로 알려져 있다. 다른 어종의 새끼가 아닌가 오해를 받기도 하지만 망둥어과에 속한 하나의 종이다. 살아있을 땐 속이 훤히 비치는 투명한 몸체인데, 피부 색소포 중 황색 적색이 다른 어류에 비해 적게 함유돼서다. 죽으면 하얗게 되는데 자율신경과 호르몬의 제어를 받지 않아 가장 기본색인 흰색만 남게 된다.

 

사백어 잡이

거제 둔덕·동부·남부면 일대 사람들은 밤잠을 설치며 사백어를 기다린다. 사백어가 잘 다니는 하천 길목에 그물을 설치하고 불빛으로 유혹하면 된다. 낮에는 하천 바닥으로 가라앉아서 밤에 불빛을 이용하면 잡기가 수월하다. 물때에 따라 어획량은 달라지는데 5~10물때에 주로 잡힌다. 사백어 자체적인 힘보다는 밀물 때에 같이 하천으로 휩쓸려 온다.

탑포마을 사백어잡이.
탑포마을 사백어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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