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거제 조선산업,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③]위기에서 회생한 일본 조선 산업의 전략①
1950년~1990년 세계 조선산업 시장 지배한 일본, 한·중에 밀리고
일, 중국 국영사업·대우조선해양 국책은행 지원에 불멘 소리도
조선산업 세계 공급과잉 속 중·소 조선기업 연달아 문 닫고

조선산업이 휘청인 것은 거제와 한국만이 안고 있는 문제가 아니다. 조선산업은 세계 경제와는 별도로 세계 조선산업 경기가 따로 존재한다. 세계는 불황이어도 조선산업이 호황일 수 있는 점도, 세계는 호황인데 조선 산업이 불황일 수 있는 이유도 조선 산업 시장의 경기는 그들만의 리그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조선업계가 세계적인 생산 과잉과 시장 축소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있는 가운데 한·중·일 업체들이 생존을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전 세계의 조선 기업은 한·중·일 동아시아 3개국에 집중돼 있다. 한·중·일은 전 세계 조선 시장의 90%를 점유한다. 특히 일본은 40년 동안 조선산업 세계시장을 제패를 한 가장 강력한 국가였다.

한때 히로시마항에는 내도를 연결하는 유람선과 도선 뿐 아니라 각 조선산업에서 건조 중인 선박들이 정박해 있었다. 하지만 일본 3대 조선소가 세계 조선경제 악화로 침체기를 겪으면서 운영비를 최소화하기 위해 조선소 앞 바다 외 수출 경로가 아닌 경우에는 타 지역에 정박해왔던 사례를 줄이면서 히로시마항은 여객 터미널과 일부 어선 외에는 찾아보기 어려워졌다.
한때 히로시마항에는 내도를 연결하는 유람선과 도선 뿐 아니라 각 조선산업에서 건조 중인 선박들이 정박해 있었다. 하지만 일본 3대 조선소가 세계 조선경제 악화로 침체기를 겪으면서 운영비를 최소화하기 위해 조선소 앞 바다 외 수출 경로가 아닌 경우에는 타 지역에 정박해왔던 사례를 줄이면서 히로시마항은 여객 터미널과 일부 어선 외에는 찾아보기 어려워졌다.

초호황기→불황…다시 일어난 일본

일본은 1950년대부터 발달된 기술력과 가격경쟁력을 앞세워 유럽의 라이벌들을 제치고 약 40여년 동안 세계를 지배했다. 그러나 1990년대 한국의 조선기업들이 부상하기 시작하고, 2000년대부터는 중국 기업들도 치고 올라오기 시작했다. 이후 2010년대부터는 한국과 중국의 기업들이 꼭대기 자리를 차지해왔다.

하지만 최근 과잉생산 문제가 전 세계적으로 조선 업계의 발목을 잡고 있다. 2003년 이후 중국 경제가 성장하면서 선박 제조량도 크게 증가했다. 그러나 선박 수주 규모는 2008년 세계 금융 위기의 충격으로 2006년 1억3188만GT(그로스톤·총 톤수)에서 2016년 1884만GT로 10년 만에 크게 감소했다.

수주잔고도 갈수록 줄고 있다. 한국 조선기업들은 수주 잔고가 2015년 2.7년이었던 반면 올해 3월에는 1.7년치 일감만이 남아있는 상태였다. 일본 기업들도 같은 기간 수주잔고가 4.2년에서 2.4년으로 감소했으며, 중국도 3.5년에서 2.8년으로 줄었다. 이와 같은 시장의 침체는 가격 경쟁에도 불을 붙였다. 이에 현대중공업과 같은 대기업들은 여러 주문들을 패키지로 처리함으로써 대형 선박의 단가를 인하하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

일본 기업들은 우리나라 기업보다 사정이 더 나쁘다. 지난해 한국의 조선기업들은 43%의 시장점유율을 기록한 반면 일본 기업들은 7%로 사상 최저치를 기록했다. 일본 조선기업들은 "대우조선해양이 KDB산업은행 등 국책은행으로부터 자금을 지원받아 흑자로 전환한 것에 대해 공정한 경쟁에 역행하는 것"이라며 일본 정부가 세계무역기구(WTO)에 한국을 제소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도 일본과 한국 조선기업은 공통된 위협에 직면해 있기도 하다. 바로 중국 국영 조선소의 탄생이다.

과도한 경쟁을 해결하기 위해 한·중·일 3국 차원의 협력도 있었다. 지난 5월 열린 한중일 정상회담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리커창 중국 총리,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시장을 왜곡하는 정부의 개입 문제에 관해 논의할 필요성이 있음을 언급한 바 있다. 그러나 3개국 중 어느 쪽도 생산량을 적극적으로 줄여나가려는 의지를 나타내지 않고 있다. 이들 3국 모두에서 조선기업들이 일자리에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격차 커지자 불멘소리 높아지는 日

불황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던 일본 조선업계에도 수주 잔고가 조금씩 높아져 안도감을 표시하지만 기뻐하는 수준은 아니라고 냉정하게 진단한다. 세계 조선 수요가 침체된 가운데 일본 조선업체보다 3배에서 6배 정도 한국이나 중국 업체에는 기세가 밀리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싱가포르까지 가세했다.

일본조선공업회 측은 "한국과 중국에 큰 차이가 나게 밀리고 있는 것은 확실하다"며 "한국과 중국이 수주활황을 보이는 배경에는 정부에 의한 대규모 금융지원이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일본 이마바리조선 관계자는 "공평한 경쟁 환경을 해치는 행위로 일본으로서 정확히 비난의 소리를 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국산업은행 등을 통해 경영난에 빠진 대우조선해양에 자금 원조를 한 점과 중국 내의 정부지정 조선소를 세워 선박회사에 보조금을 지급하는 제도는 시장경제에 맞지 않다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한국과 중국은 현 우위를 선점한 것을 이끌어가기 위해서라도 정책을 바꾸지 않을 것"이라며 "일본 조선업체들은 경쟁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업계재편 등 대담한 수단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조선산업이 어려운 와중에도 일본 조선업 1위를 유지하고 있는 이마바리 조선소 전경
조선산업이 어려운 와중에도 일본 조선업 1위를 유지하고 있는 이마바리 조선소 전경

아이치조선소 완전 폐쇄...중소 조선기업 연달아 문닫아

불황에도 10년은 버틸 수 있다던 일본 조선 산업이 한국·중국과의 경쟁에서 밀려 대형조선소를 완전히 폐쇄하는 등 쇠락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일본 유수의 종합 중공업 회사인 아이치(IHI)는 아이치현 지타시의 '아이치조선소'를 지난 8월10일 폐쇄했다.

아이치조선소는 지난 1970년대 중반 개설 당시 건조능력 기준으로 미쓰비시중공업의 나가사키조선소, 히타치조선의 아리아케조선소와 함께 일본 3대 조선소 중 하나였다. 일본 조선산업에서는 한국의 대우·삼성·현대중공업처럼 상징과도 같은 존재였다. 하지만 오랜 조선업 불황에 더해 한국·중국 경쟁사들의 공세에 밀리면서 2011년을 마지막으로 선박 건조한 이후 지난 7년 동안 개점휴업 상태였다.

아이치조선소는 그동안 터널 굴착기와 액화천연가스(LNG) 탱크 등을 제작하는 부업으로 불황을 간신히 버텨왔지만 끝내 조선소 유지가 한계에 다다르면서 폐쇄 결정을 내렸고, 폐쇄 결정 과정에서 직원들은 아이치의 다른 계열사에 배치됐다.

일본 히타치조선 관계자는 "30만톤 이상의 대형 유조선을 건조할 수 있는 일본의 유력 중공업 업체가 완전히 폐쇄되기는 처음이었다"며 "문을 닫는다는 얘기가 나오기는 했지만 실제 폐쇄 결정이 내려졌을 때 관계업자들은 모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고 밝혔다. 그는 "반전을 이어가던 일본 조선산업이 어려움에 처해 있는 현실을 보여준 것"이라고 지적했다.

실제 세계 조선시장에서 일본 업체의 점유율은 급락세를 이어가고 있다. 1990년대 세계시장의 54%를 차지했던 일본의 조선 신규 수주는 지난해 7%까지 추락했다. 대신 기술력과 생산성을 높인 한국은 43%, 가격 경쟁력을 내세운 중국이 35%를 차지했다.

일본 나가사키조선소 관계자는 "조선시장이 최악의 침체기를 벗어나고 있다지만 일본 해운사들도 한국에 발주하는 상황에서 일본으로는 일감이 오지 않는다"고 토로했다.

그는 "우리 중공업사를 비롯해 선박 대신 항공기나 자동차부품 등 양산품 제조로 주력사업을 옮기고 있다"며 "아이치 역시 사이타마현에 200억엔(원화 약 2000억원)을 투입해 항공기 엔진 정비와 부품제조 공장을 짓기로 하는 등 영업이익의 80%를 항공기 엔진 관련 사업에서 올리고 있다"고 덧붙였다.

아이치 관계자는 "수십 년 동안 아이치조선소에서 근무해왔던 직원들을 위해서라도 버티려고 했지만 본사의 손해가 막중했기 때문에 그와 같은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며 "아이치조선소가 문닫은 이후 우리 계열사와 본사의 경제력도 안정권에 들어가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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