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거제 조선산업,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⑥]'한국 조선'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가격경쟁에서 중국에 밀리고…건조 기술력에선 우위 차지
고부가가치 선박 제조에 약점…설계부터 엔진·조립 등 수직계열화 탈피
싱가포르, 연구개발·자금조달·법률까지 처리 가능…거제도 산업집합단지 필요

최근 한국 조선업의 분위기가 점점 회복세에 들어서고 있다. 중국에 빼앗겼던 세계 1위 자리(연간 시장점유율 기준)를 탈환하기도 했다. 부활이라고 칭하기에는 대형사와 중형사 간 양극화는 심해지고, 미중 무역전쟁이 여전한 상태라서 위험요소는 곳곳에 있다.

불황이 장기화되면서 국내 조선의 몸집이 크게 줄어들어 과거의 영광을 재현하기가 쉽지 않다. 불황의 늪에서 대형 조선사들은 혹독하게 규모를 줄였고, 중·소형 조선사는 폐업이 줄을 이었다.

세계 조선 시장의 규모도 대폭 줄었다. 2007년 호황기에는 연간 9200만 CGT(표준화물선 환산톤수·선박 무게 단위 GT에 선박의 부가가치와 작업 난이도 등을 적용한 단위)의 발주가 쏟아졌지만 올해 10월까지 누적 발주량은 2305만 CGT에 불과했다.

당장 조선산업이 호황기로 돌아오려면 세계경기 활황으로 물동량이 증가하거나, 노후 선박의 교체주기가 돌아와야 가능하다. 실제 조선이 호황이었던 2006~2008년엔 이 두 가지 요인이 맞물렸다. 이에 대해 일본 JMU 관계자는 "중국이 급성장하면서 조선업도 호황을 이뤘는데 최근 중국의 성장세가 둔화하고 있다"며 "또다시 호황을 이루려면 중국만큼 성장할 수 있는 신흥국이 나와야 하는데 지금으로선 어려워 보인다. 앞으로의 조선 시장은 선박의 교체 수요를 처리하는 정도에 그칠 가능성도 높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기회도 있다. 중국 조선업이 한국 조선을 앞지를 수 있던 점은 원가경쟁력에서 앞섰기 때문이다. 가격을 대폭 낮춰 선주사들에게 호감을 산 중국 조선업은 2010년대 세계조선시장을 이끌었다. 중국 조선업에서 밀린 시기, 그럼에도 국내 조선 산업이 버틸 수 있었던 것은 기술력 덕분이다. 그래서 전문가들은 국내 조선업의 살 길은 원가경쟁력이 아닌 고부가 선박 개발이라고 말한다.

최근 국내 조선이 독보적인 경쟁력을 갖추고 있는 LNG선 발주가 증가 추세에 있다는 점은 긍정적이다. 국제해사기구(IMO)의 규제가 다가오면서 선박의 교체주기가 앞당겨진 결과다. 하지만 수주 실력을 늘리기 위한 장기적 관점이 필요하다.

기술력 통한 고부가가치 선박 제조

일본·중국 조선업 관계자들과 국내 조선공학 전문가들은 "국내 조선업이 중국이나 인건비가 낮은 동남아시아 근로자를 영입해 원가경쟁력에서 한국을 앞선 싱가포르 등과의 가격 경쟁에서 탈피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상선 등은 가격경쟁력으로 수주 전쟁에 뛰어들지 몰라도 1기당 가격이 1조원을 웃도는 해양플랜트(원유 및 가스 생산·시추 설비) 등은 상품성과 품질 등 제조경쟁력이 수주를 좌우하기 때문이다. 특히 해양플랜트 특성상 조선업은 선주 친화적인 게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일본 JMU 관계자는 "가격이 수천만~수억원 수준인 자동차는 소비자가 없더라도 생산할 수 있지만 수백억원을 웃도는 선박은 고객이 확보돼야 제작을 시작할 수 있다"며 "선주 친화적인 게 가장 중요한 이유 역시, 결국 수주 결정은 사람이 하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한국보다 건조 비용이 20% 이상 저렴한 중국 조선소를 가격 면에서 꺾기는 쉽지 않다"며 "여전히 일정한 틀로 선박을 찍어내는 과거의 경영 기법에서 탈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울대 조선해양공학 교수는 일본이 해운선사와 선주사의 협업처럼, 국내 조선사는 해운선사의 힘이 약해진 만큼 세계 선박업체와의 협업이 진행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국내 조선사는 설계부터 엔진, 조립까지 모든 과정을 직접 맡는 수직 계열화에 집착하고 있다"며 "국내 조선사가 건조 능력은 세계 최고지만 선주들의 다양한 요구 사항을 반영해야 하는 고부가가치 선박 제조에는 약점을 갖고 있다. 설계 등 해외 업체가 앞선 부분은 과감하게 수입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싱가포르-조선해양플랜트
싱가포르-조선해양플랜트

조선과 해운,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

조선산업이 세계 경제에 흔들리지 않으려면 해운업의 덩치 키우기를 위해 주력해야 한다는 전문가 의견도 나왔다. 현재 세계 10대 해운선사 가운데 덴마크의 머스크라인, 스위스의 MSC, 중국의 코스코 그룹, 프랑스의 CMA CGM 등 5대 기업이 전체 선박량의 63%를 장악하는 반면 국내 현대상선은 1.8%에 지나지 않아 존재감이 거의 없는 실정이다.

중국의 코스코 그룹 관계자는 "세계 5대 선사는 해운동맹을 통해 시장 장악력을 높이고 있지만 한국은 조선업과 달리 해운업에 대한 인지도가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고 설명했다.

최근 정부가 뒤늦게 해운 산업 재건대책을 내놨지만 실효성은 낮다는 지적이다.

중국의 코스코 그룹 관계자는 "해운 강국에 대해 경쟁도 하지만 선진적 정책에 대해 알아보면 특징이 최소 10년 후를 내다보는 장기적 관점을 갖고 접근한다는 것"이라며 "중국 역시 시대변화에 따른 선제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체계와 집단시설을 구축해 정책을 수행하고 사업을 이끌어나가기 위해 노력 중에 있다"고 밝혔다.

예로 랴오닝성 다롄 중국조선공업그룹공사의 이전이다. 최근 다롄시는 급성장하면서 조선공업공사 주변이 모두 대도시로 발전했다. 조선회사를 옛 성동조선이 있었던 곳으로 이전하고 조선산업 집합단지를 구성할 계획이다. 중국조선업협회 관계자는 "코스코 그룹과 CSSC·중국조선공업그룹공사 중심으로 세계 해운 시장을 장악하기 위한 발판을 마련 중에 있다"며 "가격경쟁력 뿐 아니라 기술력에서도 인정받을 수 있는 조선·해운 강국이 될 것"이라고 힘줘 말했다.

거제, 산업집합단지 최적지

최근 조선산업의 신흥 중심지는 노르웨이와 싱가포르를 꼽을 수 있다. 이 두 국가의 특징은 조선 관련 연구개발(R&D)부터 자금 조달, 법률적인 사항까지 한 곳에서 처리할 수 있게 체계가 잡혀 있어 선주사들이 계약을 맺으면 한 번에 모든 것이 해결 가능하다. 한국 조선업이 한 단계 성장하기 위해서는 이들 국가의 모습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서울대 조선해양공학과 관계자는 "한국 조선업이 한 단계 더 성장하기 위해서는 R&D와 생산시설, 금융회사 등을 한곳에 모은 클러스터(산업집합단지)를 꾸려야 한다"며 "빅3 체제에서는 우리나라의 조선 앞날이 밝다고 할 수 없다. 나라 경제와 조선업 주변 도시들이 함께 살아나려면 빅2로 개편하고 고부가 선박에 대한 연구개발과 자금 조달, 제작까지 이어지는 집합단지가 들어서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양대 조선소가 있는 거제 산업집합단지를 최적지로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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