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25년 특별기획-거제의 잃어버린 섬들을 찾아서⑤

거제의 수많은 섬들 중 일부는 일제시대를 거치면서 군사요충지 역할로 인해 군(軍)으로 소유권이 이전된 이후 반환되지 않고 있다. 또 통영군과 거제군이 합병된 이후 다시 복군됐지만 이전 거제군 소유의 유·무인도 상당수가 통영에 귀속돼버렸다.
 이전에는 '거제'라는 정체성으로 살던 주민들이 하나 둘 세월 앞에 스러져간 이후 후배 세대들은 '통영'을 정체의 기본으로 살고 있다. 또 행정구역상 거제시에 있지만 거제시민들의 발길을 허용치 않는 섬들 또한 몇몇 있다. 외도가 민간에 의해 개발돼 관광지로 각광받은 이후 장사도 관광지 개발 등 섬에 대한 인식이 크게 바뀌고 새로운 문화공간으로서의 역할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고 있다.
 이에 거제신문은 창간25년을 맞아 특별기획으로 거제와 관련 있는 주요 섬들을 방문해 거제의 흔적을 살펴보고 행정구역을 넘어 새로운 문화공간으로서의 가능성을 타진해 보기로 했다.  <편집자주>

예전부터 거제와 결혼이나 이사 등으로 왕래 잦아
최근 조선소 취직 위해 거제로 이사가는 경우 많아

계룡산 정상에서 내려다보는 거제만이 절경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하지만 고현동 등 시내에서 거제면으로 터전을 옮기는 사람들 대부분은 거제만을 끼고 있는 거제면의 경치에 반해 이사를 결심하는 경우가 많다.

그만큼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거제만의 경치는 거제의 다른 절경과 비교해 손색없을 정도로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한다. 거제만의 아름다운 풍광의 시작이 계룡산이라면 그 마무리를 장식하는 곳은 한산도와 추봉도다. 거제만이 외해와 연결되는 지점에 자리한 두 섬은 마치 거제만을 호수처럼 보이도록 만든다.

거제만의 끝자락에 있는 이 두 섬은 그래서인지 거제와 많은 인연이 있다. 지금은 행정구역상 통영시에 속해 있지만 본지 '창간25년 특별기획 1편'에서 밝혔던 바와 같이 원래는 거제에 속해있던 섬들이다.

특히 한산이나 추봉에서 결혼이나 이사 등으로 거제에 터전을 잡거나 하는 경우를 자주 볼 수 있고 반대로 거제에서 이 지역으로 터전을 옮기는 경우도 예전에는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었다.

지금은 거제의 경기가 통영보다 훨씬 좋아서 이 지역 사람들 중 젊은이들은 조선소 등지에 취직을 위해 건너와 사는 경우가 더 많지만 예전에는 서로간의 왕래가 자주 있었던 곳이다.

예전에 한산도는 거제 땅이었다

거제면에 사는 이모(41) 씨는 거제면에서 나고 자랐지만 추석이 다가오면 한산도로 벌초를 위해 집안 사람들이 한 자리에 모인다.

이번 추석을 앞두고도 벌초에 대한 계획을 논의하기 위해 모일 날짜를 정했지만 가장 큰 일꾼인 이 씨가 연락이 닿지않아 집안 큰 형님이 친구인 기자에게 연락 한 번 해보라는 부탁을 해왔다.

이 집안은 할아버지 대에 거제에 정착해 이미 3대를 넘어 4대로 향하고 있지만 이처럼 추석이나 명절을 앞두고 항상 가족들이 한산도를 찾는다.

이외에도 한산도에서 건너와 거제에 정착한 사람들을 심심찮게 만날 수 있다. 친척들이 지금 그곳에 살고 있다는 사람들도 있다.

이와 반대로 거제에서 한산도로 삶의 터전을 옮겼던 경우도 종종 있었다. 이들은 명절이면 반대로 거제에 있는 산소를 찾아와 예전 같은 마을에 살던 이웃들을 찾곤 한다. 이처럼 거제, 특히 거제면과 가까운 이웃처럼 지내고 있는 한산·추봉도는 1900년 이전까지 거제에 속했다.

거제지역 향토사학자인 이승철 씨의 말에 따르면 통일신라시대에는 거제군 3현(鵝州縣-아주현·松邊縣-송변현·溟珍縣-명진현) 가운데 하나인 명진현에 지금의 한산면 일대 섬들이 모두 속해 있었다고 한다.

또 조선 초기까지 거제현 남면에, 후기에는 둔덕면 7방에 속했으며 창동, 두억포, 고포, 걸포, 여차포, 야소포, 서좌리, 동좌리, 죽도, 호두, 추원, 용초, 봉암, 비진 등 모두 14동(洞)이 있었다.

1895년 전국의 진보(鎭堡) 및 통제영(統制營) 폐지 후 1900년 통제영 터에 진남군(鎭南郡)을 설치하면서 거제군의 가좌도(加佐島·가조도)와 한산도(閑山島)가 진남군의 관할지역으로 편입됐다.

1909년 진남군(鎭南郡)을 용남군(龍南郡)으로 개칭하고 일제시대인 1914년 용남군과 거제군을 통합해 통영군(統營郡)으로 개편했다.

1953년 1월1일 법률 제271호에 따라 통영군에서 거제군이 분리돼 복군됐지만 한산면과 부속도서 및 매물도까지 통영시 관할로 남게 됐다.

멀지 않은 우리의 이웃이었다

한산도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름은 이순신 장군이다.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이 삼도수군통제사로 부임해 1593년부터 1597년까지 약 3년8개월 동안 통제영 본영을 설치하고 일본의 수군을 맞아 싸웠던 곳이다.

이처럼 민족의 자긍심인 한산도의 지명은 거제현에 속한 거제의 서쪽에 인접한 많은 섬들 중 대표적으로 큰 섬이라는 뜻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한'은 크다(大)나 많다(多)의 뜻을 지닌 대표적인 우리말로 한자의 음(音)을 빌어 쓴 말이다.

이 같은 유래를 가진 한산도를, 친구 할아버지의 아버지가 잠들어 계신 곳을, 그리고 시집간 뒤 다시 보지 못한 옆집 살던 누이의 흔적을 찾아보기 위해 길을 나섰다.

대학시절, 같은 과 선배 고향이 한산도 문어포(두억리)에 있어 방문한 이래 근 20년 만의 한산도 방문이다. 당시의 설레었던 감정과 달리 그곳에서 무언가 거제의 흔적을 찾아야 한다는 목적의식이 가슴을 무겁게 짓눌렀다.

통영에서 차도선을 타고 도착한 하소리 진두선착장은 아름다운 어촌마을 그 자체였다. 몇 년전 개통된 추봉리를 잊는 '추봉교'는 이국적 정취마저 자아내고 있었다.

차도선에서 내려 자가용으로 한산도와 추봉도를 일주하면서 만나는 주위의 풍경은 거제나 통영이라는 행정구역을 떠나 '사람살기 좋은 곳'이라는 느낌. '강호한정(江湖閑情)을 논하라면 바로 꼽을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마저 들게 만들었다.

한산도에서 만나는 사람들을 붙잡고 무작정 옆집 살던 누이의 이름을 물었지만 아는 사람은 없었다. 단지 "오래전부터 섬끼리 가까이 있다보니 결혼을 통해 오고가는 사람들이 많았다. 최근에도 이웃주민들 중 7~8명 정도가 거제로 이사를 갔다"는 답만 들을 수 있었다.

특히 "거제에 큰 조선소가 두 개나 있어 이 지역 젊은이들이 많이 간다"면서 "대우와 삼성조선에 한산도향인회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하는 주민도 있었다.

오래 전 기억만으로 그 누이를 찾기란 쉽지 않을 줄 알면서도 섭섭한 마음을 숨길 수는 없었다. 단지 거제와 한산도가 오래 전부터 교류가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에 만족해야 했다. 그리고 예전에는 행정구역상 거제에 속했다는 사실을 아는 이들도 쉽게 만날 수 있었다.

그중 한 주민은 "바로 이웃동네인 거제랑 다리가 연결되면 600m 정도 밖에 되지 않아 하나의 동네나 마찬가지다"며 동질감을 느낀다는 말을 들을 땐 거제와 한산도가 아직까지 인연의 끈을 놓지 않았다는 희망마저 생겼다.

일부 주민들은 한산도의 발전이라는 측면에서는 행정구역 상 차라리 거제에 속하는 것이 나았을 것이라는 주장도 있었다. 차도선이나 도선을 타고 육지로 오가야 하는 불편한 속내가 그 속에 담겨 있었다.

한 주민은 "거제에 있었으면 둔덕면 어구에서 동좌리, 여창고를 잇는 다리가 놓여 훨씬 생활에 편리했을 것"이라면서 "전라도 쪽에는 작은 섬들조차 다리가 이어져 있다는데 오래 전부터 통영시에 건의했지만 아직까지 다리가 놓이지 않고 있다"는 불만을 토로했다.

또 다른 주민은 "거제에 속했으면 이미 방파제도 설치가 다 됐을 것이다"며 "방파제는 섬사람들의 재산, 인명보호에 필수적인 것인데 아직까지 설치하지 않고 있다"고 속상해 했다.

대체적으로 거제시가 통영시보다 재정이 넉넉하기 때문에 자신들의 생활에 이로울 것이라는 판단에서 나온 불만이기는 했지만 다시 거제로 귀속되는 것은 바라지 않았다. 이미 통영 사람이라는 정체성이 확고해 보였다.

섬에서 만난 사람들과의 이런저런 이야기, 여러 곳을 둘러보며 감탄사를 연발했던 한산·추봉도 일주는 그렇게 끝이 났다.

하지만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이번 '한산도행'에서 알 수 있었다. 행정구역은 바뀌었지만 전혀 그들은 남이 아니었고 이전과 별반 다를 바 없는 우리의 가까운 이웃이라는 사실이었다. 출발 전, 조금 무겁던 마음이 돌아오는 길에는 희망으로 살짝 바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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