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25년 특별기획-거제의 잃어버린 섬들을 찾아서②

장승포항 출발 20분 정도면 닿을 수 있는 섬…도시에서 볼 수 없는 독특한 4륜 바이크 눈길
빽빽한 동백숲 점령한 매미소리…신선한 바람과 함께 각종 스트레스 날리는 청량제 역할 톡톡

거제의 수많은 섬들 중 일부는 일제시대를 거치면서 군사요충지 역할로 인해 군(軍)으로 소유권이 이전된 이후 반환되지 않고 있다. 또 통영군과 거제군이 합병된 이후 다시 복군됐지만 이전 거제군 소유의 유·무인도 상당수가 통영에 귀속돼버렸다. 이전에는 '거제'라는 정체성으로 살던 주민들이 하나 둘 세월 앞에 스러져간 이후 후배 세대들은 '통영'을 정체의 기본으로 살고 있다. 또 행정구역상 거제시에 있지만 거제시민들의 발길을 허용치 않는 섬들 또한 몇몇 있다.

외도가 민간에 의해 개발돼 관광지로 각광받은 이후 장사도 관광지 개발 등 섬에 대한 인식이 크게 바뀌고 새로운 문화공간으로서의 역할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고 있다. 이에 거제신문은 창간25년을 맞아 특별기획으로 거제와 관련 있는 주요 섬들을 방문해 거제의 흔적을 살펴보고 행정구역을 넘어 새로운 문화공간으로서의 가능성을 타진해 보기로 했다.  <편집자주>

장승포항에서 지심도(只心島)로 향하는 도선에 오른 시간은 12시30분.

젊은 아베크족 4쌍과 가족단위 여행객 등 20명이 채 안되는 승객들이 승선했다. 오전 8시30분부터 2시간 단위로 오후 4시30분까지만 운항하는 도선은 기대했던 것보다 한산했다.

소설가 윤후명이 지난 1983년부터 3개월 정도 머물 당시 '섬' '팔색조' 등의 소설을 썼던 무대라 남다른 기대감으로 출발했지만 한산한 배 안은 기대를 무색케 했다. 20분이 채 되지않아 확성기를 통해 '하선하라'는 선장의 목소리가 들린다.

"1983년이었습니다. 28년 전이죠. 그 당시 거제도에 들어선 대우조선(지금의 대우조선해양)이 작가 한 명을 초청해 3개월 동안 지세포에 머물게 해준다는 거였어요. 당시 소설가로 출발한 지 얼마되지 않았던 제가 선정됐지요."

지난 해 5월, 윤후명이 문학기행을 와서 참가자들에게 강의할 때 했던 말이다. 당시 대우조선에서 레지던시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작가를 초청해 거제에 머물게 했던 주인공이 바로 윤후명이었다. 젊은 윤후명은 방황의 시기를 보냈고 거제의 여러곳을 돌아보다 만난 곳이 지심도와 팔색조, 그리고 거제의 바다였다고 한다.

"언젠가 그런 때가 온다면, 언젠가 다시 내 삶을 시작한다면 다시 시작하는 장소는 지심도가 아니면 안되겠구나."

윤후명은 실제로 "삶을 포기할까 말까" 고민하던 시절 자신을 찾아온 여성과 함께 지심도에 왔다. 그리고 극적인 사랑을 이루었다.

"올해가 결혼 20주년입니다. 20년 전 모든 것이 불안하고 희미하던 시절 지금의 아내와 무작정 지심도에 왔던 것이죠."

치유의 섬 속으로

윤후명의 단편소설 '팔색조'가 지심도를 배경으로 지난 1986년 장선우 감독 각색을 통해 MBC 베스트셀러극장에 방영된 적이 있다.

당시 거제가 윤후명으로 인해 잠시 반짝하는 인기를 누렸다. 하지만 정작 지심도를 국민들의 관심사로 이끌어낸 것은 KBS 1박2일의 무대로 등장하면서다.

잠시 세인들의 관심을 끌었다가 곧바로 잊혀질 뻔하던 그 섬은 강호동을 비롯한 1박2일 멤버들로 인해 '가고싶은 섬'으로 기억되게 됐다. 배에서 내리자 일단의 무리들은 이미 섬 구경을 마치고 다시 뭍으로 나가기 위해 분주히 서두르고, 이제 막 내리는 승객들은 기대감에 부푼 표정들로 가득했다.

섬은 섬이었다. 뭍에서 볼 수 없는 특이한 교통수단이 제일 먼저 관심을 끌었다. 4륜 바이크의 일종인데 뒤에 짐칸이 유난히 컸다. 트럭이 다닐 수 없는 오솔길이 전부다 보니 궁여지책으로 이용되고 있는 듯했다.

누군가가 관심을 갖고 쳐다보고 있다는 사실에 아랑곳없이 4륜 바이크는 짐을 싣자마자 어디론가 떠나 버렸다. 매캐한 연기가 뿜어진 오솔길을 따라 '다만 그 마음'이라는 뜻을 가진 지심도 일주에 나섰다.

섬에 들어서면서 한 가지 계속해서 마음을 쓰이게 하는 소리가 있었다. 유난히 크게 들리는 매미소리였다. 섬에 내려 제일 먼저 만난 곳은 민박집들이 모여 있는 곳. 거기서 두 갈래 길이 시작된다.

해안선전망대로 가는 길과 동백터널로 향하는 길이었다. 먼저 길을 나선 승객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상관 않고 애초에 목적했던 동백숲을 보기 위해 동백터널로 향했다. 그 길로 접어 든 순간부터 매미소리는 더욱 기승을 부렸다. 이방인에 대한 항의의 표시처럼 들렸다.

하지만 매미들이 시끄럽게 우는 소리는 오히려 청량한 기분을 느끼게 했다. 여름이라는 계절마저 잊게 만드는 동백터널의 선선한 바람과 매미소리가 도시에서 찌든 묵은 때를 벗겨내는 듯했다.

그 많던 고민들을 잠시 잊을 수 있는 무아의 경지로 이끄는 듯 했다. 그리고 그저 좁은 오솔길이 이끄는 대로 따라만 가면 그만이었다. 

● 잠시 휴대폰을 꺼 두시죠

지심도의 점령군, 매미들의 흔적은 소리뿐 아니라 땅 곳곳에 난 구멍과 나무 곳곳에 있는 매미들이 우화(羽化)하고 남은 껍질로 알 수 있었다. 동백나무로 빽빽한 숲 곳곳이 점령군의 흔적들로 채워져 있었다.

매미소리가 기승을 부리는 사이로 '사람이 사는 섬'이라는 흔적이 가끔 포착됐다. 신나서 지르는 '환호성'이 매미소리에 묻혀 들리기 시작한 것. 그 소리의 진원지를 찾아 나선 결과 만난 곳은 '몽돌해수욕장'이었다.

해수욕장이라 부르기 민망할 정도로 규모가 작았지만 나름대로 해수욕을 즐기기에 불편함은 없어 보였다. 환호성의 주인공들도 바로 거기에 있었다.

등산복 차림을 한 4명의 아주머니들이 일렁이는 파도에 몸을 맡기며 파도가 몸에 부닥칠 때마다 즐거움에 지르는 환호성이었다.

일상에서 좀처럼 느낄 수 없는 자유와 자연을 함께 느끼며 그 속에서 스트레스를 풀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이 지르는 환호성이 시끄럽다고 누구 하나 탓하는 사람 없으니 그들도 그 순간은 자연의 일부가 돼가고 있었다. 그들은 그 순간을 기억하기 위해 스마트폰으로 열심히 사진을 찍고 있었다. 하지만 그 순간 스마트폰은 전화기가 아닌 카메라의 기능만 할 뿐이었다.

스마트폰을 보자 잠시 연락 올 곳이 있다는 생각이 스쳤다. 스마트폰을 꺼내 만지작거리다가 이내 전원을 껐다. 좀처럼 보고, 듣고, 느끼기 힘든 풍경으로 가득한 섬에서의 기억을 속세의 일로 방해받고 싶지 않다는 생각에서였다.

환호성을 지르며 동심으로 돌아간 듯한 아주머니들을 뒤로 하고 다시 동백숲으로 뒤덮인 오솔길로 접어들었다. 매미소리는 여전했고 좌우로 빽빽한 동백나무들도 크기만 달리할 뿐 변함이 없었다.

그러다가 동백터널이 끝나는 지점을 만났다. 탁 트인 바다가 눈에 들어오고 오솔길 한 켠에 전통 일본식 가옥이 자리잡고 있었다. 가옥이 자리잡은 곳은 선경(仙境) 같았다. 명당이 존재한다면 그런 곳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한쪽에 표지판을 세워 '지심도 구 일본군 전등소 소장사택'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지심도의 아픈 역사를 비로소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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