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을 앓아 본 사람이 건강의 중요성을 절실히 느끼듯 고향을 떠나 본 사람만이 그 소중함을 잘 알게 된다. 거제는 다른 지역에 비해 실향민이 많다. 한국전쟁 당시 피난 와서 정착한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대우·삼성 등 양대조선 건설과 구천·이목댐 등으로 어쩔 수 없이 실향민이 된 경우도 있다. 같은 실향민이지만 그래도 피난민
20여 세대 남짓 살던 피솔마을 출신 실향민을 찾아 나섰지만 좀처럼 찾을 수 없었다. 장평 출신 지인에게 아쉬움을 토로하자 한 사람을 추천했다. 현재 고현동 주민센터에 재직 중인 차정명 계장이었다. 순간 머리를 탁 쳤다. 가까운 곳에 두고 멀리서 찾는 어리석음에 대한 분풀이였다. 곧바로 그를 찾았다.지난 93년쯤 피솔마을을 떠나왔다는 차정명 계장은 어린 시
◆ 아양리 3층 석탑아양리 삼층석탑은 대한조선공사가 들어서기 전 옥포에서 장승포로 가는 도로변 위쪽에 있었다. 이 탑은 1953년 아양리 박학중 씨가 탑골 앞에서 논갈이를 하다가 쟁기 끝에 발견된 것을 옮겨와서 세운 것이다. 발견 당시 옥개석 끝부분이 훼손돼 있었고, 중층과 상층의 탑신, 상륜부의 보주와 기단석 일부가 없었다. 하지만 박학중 씨가 옮겨 새우
드넓은 논밭과 옥색 바다가 어우러진 고즈넉한 마을, 1973년 대한조선공사 설립으로 360여 주민 이주옥포대첩기념탑·옥포정 들어섰던 당등산도 사라져…아양·아주 망향비 및 공원건립추진위, 망향비 건립옥녀봉과 국사봉이 감싸 안은 자리. 길고 넓은 모래사장과 몽돌해변이 조화를 이룬 옛 아주·아양은 그야말로 천혜의
고향은 그리움이다. 고향 근처에 살아도 항상 그립다. 바로 지척에 있는 고향도 한 번씩 찾을 때면 포근함을 준다. 그래서 고향을 가진 사람은 행복하다.하지만 고향에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 남북전쟁 때 이주한 피난민들뿐만 아니라 거제에서 태어나고 자란 사람들 중에도 실향의 아픔을 간직한 이들이 있다. 동부면 구천리 절골마을. 지금은 구천댐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