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미정 거제수필문학
강미정 거제수필문학

오늘따라 주차하기가 어려웠다. 운동장을 끼고 한 바퀴를 다시 돌았다. 마침 주차돼 있던 차 한대가 빠진다. 하지만 내 앞에서 느리게 가고 있는 차가 차지할 자리다. 더운 날씨 탓에 지치기도 하고 회의에 늦진 않을까 조바심이 났다. 도대체 다들 무슨 볼일로 차가 이렇게 많은건지 혼자서 중얼거리며 앞차를 괜히 노려본다.

앞차는 주차하려고 오른쪽 벽으로 붙이려 했다. 그런데 조금 떨어진 곳에서 청소하시던 어르신들이 갑자기 그 자리로 이동해 비질을 시작한다. 앞 차가 머뭇거리자 한 분의 걸걸한 목소리가 울렸다. 환경정화 조끼를 입으신 분들인 걸 보니 시에 소속되어 거리를 깨끗하게 청소하시는 분들이다. 청소해야 하는데 차를 여기 대면 어떡하냐고 짜증을 내신다. 주차할 곳을 한참 찾아 기다린 우리만큼 그 자리를 청소하려고 기다리신 듯하다. 앞 차는 주차를 못 하고 청소가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뒤에 있는 나도 정차했다. 

내가 신경이 쓰이는지 잠시 후 다시 주차하려고 차를 움직였다. 아까 그 어르신이 더 큰 소리로 짜증을 낸다. 

"우리 청소한다고 했다 아이가!" 

큰 소리에 놀라 급하게 정지한 앞차는 잠시 있더니 방향을 바꿔 빠르게 가버린다. 조금 더 기다리는 게 싫었는지 큰소리에 겁을 먹은 건지 아니면 짜증이 났는지 모를 일이다. 이제 내 차례다. 나도 잠시 기다렸다. 그런데 내가 보기에 청소는 다 되었다. 차 한 대 주차할 자리 비질하는 게 무슨 큰 일거리라고 시간을 끌겠는가, 괜한 어르신의 심술이다. 

잠깐 친구가 생각났다. 말 한마디 표정 한 가지 행동 하나로 항상 넉살스러운 조금 능글맞은 친구였다. 아마도 그 친구는 이런 상황이었다면 큰 목소리로 그 어르신의 마음을 바꿔놓았을 것이다. 지금 내게 필요한 건 그 친구의 넉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벽 쪽으로 차를 살짝 움직였다. 역시 어르신이 내게 온다. 못마땅한 표정이 한 마디 할 기세다. 나는 얼른 큰 목소리로 말했다. "어머니 더운 날씨에 너무 고생이 많으십니다. 죄송하지만 근처 사무실에서 회의가 있는데 주차할 곳이 없어서요. 청소 다 하셨으면 주차 좀 하면 안 될까예?" 큰 눈을 하회탈처럼 만들고, 목소리 톤을 높였다. 입술 끝은 올려서 그냥 봐도 부탁을 들어주고 싶은 표정을 만들어 본다고 나름 애를 썼다. 

내가 먼저 말을 꺼낸 탓에 잠깐 당황 하신듯했다. 아까보다는 낮아진 목소리로 우리도 청소하는 중이라고 하셨다. 역시 웃는 표정으로 조금 기다리겠다고 천천히 하시라고 여유 있게 얘길 했다. 얘기 끝나자 잠시 일행을 보더니 됐으니 이제 저쪽으로 가자며 손수 일행을 이끄신다. 덕분에 나는 좋은 자리에 주차하면서 넉살에 대해 생각을 해봤다. 

'넉살' 사전에는 부끄러운 기색이 없이 비위 좋게 구는 짓이나 성미라고 되어있다. 낯가림을 하는 편은 아니지만 나서서 뭔가 얘길 하는 건 항상 부담스럽다. 그러나 우리가 비위 좋게 굴면서 누군가를 대할 때 내게 좋은 결과를 가져다주는 경우가 종종 있는 걸 안다. 그러나 그걸 알아도 못 하는 사람도 있다. 

넉살 좋은 친구는 어떤 일의 해결을 위해 상대에게 부탁하여 해결되지 않는 안 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어떤 연결고리라도 찾으려 애를 쓴다. 그리고 상대방을 아주 기분 좋게 해주며 해결할 일에 도움을 받기 위해 부탁했다. 가끔은 친구의 넉살스러운 말과 행동이 옆에서 보는 내가 더 불편하고 민망하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하지만 정작 친구는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이었다. 넉살이 좋은 건지 능글맞은 표정으로 술렁술렁 뭐든 잘 넘기던 모습이 기억난다.

첫째 딸은 학교문제로 할머니 댁에서 지낸다. 손녀와 시장도 같이 가고 다정스럽게 대화도 나누고 싶어 하지만, 딸아이는 무뚝뚝하다. 반면 기숙사에 있는 둘째 딸은 멀리 있어도 할머니께 전화를 자주 한다. 할머니가 종종 음식을 보내 주시지만, 너무 싱거워서 제 입맛에게 맞지 않는다며 내게 말했다. 그렇지만 정작 세상에서 할머니가 해 주시는 음식이 제일 맛있다며 한껏 치켜세운다. 그러고는 은근슬쩍 용돈에 대한 얘길 얹는다. 

첫째 딸은 함께 사는 자기보다 동생만 용돈을 챙겨준다고 투정을 부리곤 했다. 가만 생각해보면 둘째 딸에게 마음이 더 가는 것은 당연한 일인지 모른다. 둘째는 넉살이 좋아 어딜 가서도 굶진 않겠다는 얘기를 자주 들었다. 어쩌면 사람과 사람 관계나 사회생활도 정석의 바름보다 거절할 수 없게 만드는 넉살이 필요할 때가 많다는 생각이 든다. 

저만치 가고 있는 어르신들께 날 더운데 쉬엄쉬엄 일하시라고 큰소리로 한 번 더 인사를 했다. 회의 시간에 늦지 않아 마음이 편한 건지, 살면서 넉살로 덕을 본 것이 좋은 건지 회의실로 발걸음이 가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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