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년 윤앤김내과 원장
김창년 윤앤김내과 원장

자주 다니시던 할머니 한 분이 배가 아프다며 찾아오셨다. 진료실 침대에 환자를 눕힌 뒤 배를 만져보았다. 배꼽 주변으로 펄떡펄떡 뛰는 덩어리가 만져졌다. 한 손바닥은 되었다. 

"어르신, 큰 병원에 모시고 가서 CT를 찍어보셔야 겠는데요." 

걱정어린 얼굴로 내 손만 쳐다 보시던 할아버지에게 말씀드렸다. 이런 종류의 혹은 대개 복부 대동맥류나 복부 대동맥 박리일 수 있다. 만약 대동맥 박리가 흉부까지 걸쳐 있다면 수술을 바로 해야할 수도 있다. 

며칠 뒤 할아버지가 나에게 찾아 오셨다. 나는 어떻게 되었는 지 할아버지에게 물었다. 

"CT를 찍었는데 대동맥이 찢어졌다나, 빨리 수술해야 된다고 해서 부산에 대학병원으로 갔는 데 못했어. 흉부외과 의사가 없다고. 서울로 가야된다고. 근데 거기는 많이 기다려야 된다고 하고. 지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어. 어찌해야 되나."

할아버지의 말을 들으니 나도 덩달아 가슴이 답답했다. 흉부외과는 심장·폐 그리고 동맥 수술 등을 담당하는 과이다. 응급 상황이 많고 수련 과정이 힘들어 많은 의사들이 지원하지 않는 분야다. 

그리고 설사 흉부외과 의사가 됐다고 하더라도 수술을 계속 하는 의사는 드물다. 내가 아는 흉부외과 의사들도 모두 피부미용 성형을 하거나 하지정맥류 수술 등을 하고 있다. 

지금 의대 정원 확대문제로 온 나라가 시끄럽다. 대부분의 국민들은 의대 정원 확대에 찬성하고 있다. 

의사 수가 부족한가? 얼마 전 기자가 나에게 물은 적이 있다. '부족하다' 고 답을 했고 많은 의사들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필요한 의사는 부족한데 꼭 필요하지 않은 즉 생명과 관계없는 과에 종사하고 있는 의사는 부족하지 않다는 것이다. 

의대생들 뿐만 아니라 의사들도 의대에 다니는 자신의 자녀를 내외산소(내과·외과·산부인과·소아과의 줄임말)에 보내려 하지 않는다. 

의사로서의 사명감·직업윤리 등을 내세워 그들을 설득한다는 것은 시대 착오적이다. 아무런 대책없이 의사 수만 늘인다면 피부미용 의사들만 늘어날 것이 분명하다.

입시 학원들이 신바람이 났다고 한다. 지금 이공계 대학에 다니는 학생들 그리고 회사에 다니는 사람들까지 그만두고 의대 입시를 준비할 모양인가 보다. 

온 세계가 반도체와 인공지능을 연구할 인재를 키우느라고 난리인데, 우리나라는 매일 반복적인 일을 수행하는 의사들을 키운다고 난리다.

"의사는 똑똑할 필요가 없어. 성실하고 사명감이 있어야지. 의대 공부라는 게 어차피 달달 외우면 되는 건데. 똑똑한 애들은 이공계 대학엘 가야지." 의전원을 처음 제안했던 선배 의사의 말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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