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민호 거제수필문학 회원
최민호 거제수필문학 회원

북병산 기슭에 오두막을 지었다. 주춧돌을 놓고 준비해놓은 소나무로 기둥을 세웠다. 수평과 수직의 물매를 맞추어 보를 얹고, 그 위에 마룻대를 올려 상량을 하면서 간단하게 막걸리로 천지신명과 조상님께 감사함을 표하였다. 작은 집이지만 후일 평생을 함께할 벗님으로 생각하니 뿌듯하다. 서까래를 올려 흙으로 지붕을 덮고 형틀을 맞추니 곁에 서 있는 나무들은 더욱 푸르게 보이고, 매미들은 아쉬운 늦더위를 부여잡고 울어댄다.

구들을 놓고 통풍이 잘되는지, 황토와 짚을 섞어 짓이겨 구들 위에 골고루 발랐지만 행여 연기가 새지 않을는지 조심스럽게 군불을 때었다. 토방이 익혀갈 무렵 단풍이 물들어갔고, 오두막이 완성될 때는 가을 옷으로 갈아입은 나무 위로 굴뚝 연기가 하늘을 향해 올랐다. 하늘로 향하는 연기를 보자 어릴 적 추억도 떠올랐고, 즐거움은 빈 자루에 곡식을 담는 듯했다. 

선반과 부뚜막을 얼마나 닦았으면 그렇게 윤이 났을까. 옛날 농삿일과 가사로 눈 코 뜰 새 없이 바쁜 중에서도 빈틈없는 어머니의 부지런한 손길이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임을 오두막집을 지으며 알게 됐다. 어머니가 생전에 나무로 군불을 때고, 밥을 지으며 매운 연기에 눈물의 날들을 보냈으리라 생각하니 가슴이 아려왔다. 

오두막집은 불편한 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니지만 나무를 연료로 쓰는 집이기에 아무래도 연기가 부엌의 그을음으로 먼지가 되어 사람을 불편하게 한다. 매일 같이 걸레질을 하지 않으면 그을음이 내려앉아 먼지로 쌓인다. 연기 배출이 원활치 않은 다습한 기온일 때나, 이리저리 바람 방향이 바뀔 때에는 교통 혼잡으로 인한 병목현상처럼 부엌에 정체되어 많은 그을음을 남긴다. 

또 비바람이 들이칠 때면 축담에서 마루까지 빗물이 튀어오른다. 겨울철 찬바람이 앞마당 먼지와 함께 불어오면 감당이 되지 않는다. 처마에 비가리개를 달고 비닐하우스로 실내형 부엌을 겸한 거실을 만들었다. 나무를 캐어 가운데 탁자도 만들어 놓았다. 이제는 비가와도 바람이 불어도 사용하기에 불편함이 없다. 

다음 문제는 아궁이에서 흘러나오는 연기였다. 그릇은 깨끗하게 씻어뒀지만 선반 위나 어디든 할 것 없이 그을음의 흔적을 남겼다. 여러 궁리 끝에 조금이라도 그을음을 덜 내려앉게 하기위해 굴뚝과 부엌에 환풍기를 설치했다. 생각보다 연기를 빼내는 데는 상당한 효과가 있어 불편을 줄였지만 그래도 걸레질은 멈출 수가 없었다. 

어릴 적의 추억을 잊지 못해 지어놓은 오두막 '나는 자연인이다'라는 프로그램의 주인공처럼 한 편의 드라마 같은 인생을 살고 있다. 군불을 때고 매캐한 연기로 콧물과 눈물을 흘려보는 것도 가을에 느낄 수 있는 별스런 재미고 멋이라 생각하며 살고 있다. 

몇년 전, 어느 지인에게 고마움을 보답하고자 오두막으로 초대했다. 식당에서 약속을 정하지 않은 것은 좀 더 정성스럽게 대접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산골에서 자란 각종 약재와 토종닭을 가마솥에서 푹 고아 대접하였다. 고로쇠수액을 곁들인 그날의 대접에 이렇게 몸에 좋고 맛있는 백숙은 처음이라며 몇 번이고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어느 날 지인은 지난번 먹었던 요리를 잊지 못하겠다며 토종닭 요리를 부탁했다. 거절하지 못 할 입장이라 음식을 하는 중에 매운 연기로 눈물을 줄줄 흘리며 가마솥에 불을 때고 있었다. 그때 그와 함께 골프를 치고 온 일행들은 "야! 들어가지 마라, 옷에 연기 배이면 냄새난다. 뭐 이런 데로 왔노?"라며 불만을 털어놓았다. 순간, '뭐시라꼬' 한소리 하고 싶었으나 꾹 참고 음식을 커다란 탁자 위에 내놓았다. 오두막의 넓은 마루에서 먹어보는 진국. 처음 맛보았으리라. 박수와 웃음으로 즐기는 모습에 위로가 되었지만 내 마음에 다소 불편한 마음은 지울 수가 없었다.

살아가면서 내가 필요한 것을 얻으려면 반드시 불필요한 것도 따르게 된다. 힘과 노동의 가치로서 땀을 흘리는 이 있어야 하고, 그 길을 걷고 있는 사람에게 오두막은 묵묵히 쉼터의 자리를 그을음과 함께 제공하고 있다.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 없다는 말이 있다. 

얼마 후 뭐 이런 데를 왔냐며 투덜대던 그들은 그날의 그 음식 맛을 못 잊었는지 재차 부탁을 하였다. 나는 그날 속 시원하게 하지 못했던 말을 생각하며 "연기가 많아서"라는 변명 아닌 사실로 거절의 뜻을 말했더니 더는 요구하지 않았다. 오두막 주변의 잡초를 제거하고 그을음 청소를 하면서 사는 게 인생이지 않은가. 잡초 없고 먼지 없는 오두막을 기대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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