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선 동양철학 박사
김은선 동양철학 박사

불타오르듯 장엄하게 떠오른 갑진년 새해, 해맞이에 나선 많은 사람이 소원을 빌며 소망한다. 

새로운 한 해의 시작에 설계와 다짐을 약속한다. 더러는 새로 준비한 다이어리에 꾹꾹 눌러 새기듯 적기도 한다. 

이같은 설계와 다짐 또한 지난 한 해 마지막 남은 한 장의 달력 무게를 느끼며 한 해를 돌아보며 지난 일들을 한 번쯤 기억해본 사람의 행위일 것이다.

가슴으로 입으로 소망을 새겨 보지만 인간의 기억은 경험에서 나오고, 경험은 감정을 만들기에 소망한 계획의 실천은 정신작용의 1순위인 기억을 되풀이하는 것이다. 

감정은 기억과 가장 깊은 상관관계가 있다. 감정은 우리가 일생에서 직장을 구하든, 배우자를 구하든, 음식을 구하든, 수없이 많은 선택의 연속으로 살아가는 인생에서 삶을 가장 총체적으로 규정하는 것이다. 그래서 선택은 감정이 한다. 

즉 기억이 많아야 하고 싶은 욕망이 생기고, 기억과 욕망은 경험을 토대로 이루어진다. 

사람들은 과거에 머무는 사람, 현재에 머무는 사람, 미래에 머무는 사람 세 분류가 있다. 과거에, 5년 전에, 왕년에 등을 되뇌며 과거에 머무는 사람이 가진 것은 과거밖에 없다. 현재는 답답하고, 미래는 까마득하기에 과거의 시간에서 머물러 있다. 

현재에 머무는 사람은 한쪽 눈으로만 보는 사람처럼 현시점에 일희일비한다. TV를 보는 것과 유사하다. 슬프고 기쁘고 흥분하며 골치 아픈 것은 내일로 미루지만, 내일엔 또 미룬다. 

미래에 머무는 사람은 입만 떼면 내일은 뭘 해야 하고, 모레는 뭘 해야 하고, 5년 뒤에는 뭘 해야 한다며 말한다. 동요의 가사처럼 '나는 나는 ooo 될 터이다'는 식으로. 이런 사람은 미래를 알아맞힌다. 앞으로 이럴 것이다. 이게 올 것이다. 예언하듯 미래의 신호를 송·수신하는 사람이다. 

그럼 우리는 어떤 사람으로 살아야 할까? 불법에 나오는 미증유(未曾有)법에서 부처의 제자 바구라가 한 말은 유명하다.

어느날 부처의 수제자들이 부처에게 물었다. 만약 부처님의 법을 그대로 전수해주는 제자가 있다면 누구입니까? 

부처님 : 나는 바구라를 선택한다. 
수제자들 : 바구라는 질문도 안하고 설법도 안하는데 왜? 
바구라 : 사람들은 저마다 갈아야 할 밭이 있다. 어떤 사람은 남의 밭에 자란 김을 매주는 것이 기쁨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그러나 나는 남을 위해 김을 매지 않는다. 그것을 내 인생에 기쁨으로 생각하지 않으며, 차라리 그럴 시간이 있으면 내 밭에 김을 열심히 매어서 가을에 수확을 하겠다. 그리고 수확을 아무리 많이 해도 남에게 나누어 주지 않겠다. 나는 내 밭을 열심히 갈아서 수확을 거둘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만인의 밭을 갈아 주는 것이다. 

이것이 운명에 대한 자세다. 자기 밭에 잡초가 무성한데 남의 밭에 김을 매주는 것이 선업(善業)이 되어서 자기에게 돌아온다고 생각하는 것도, 불전함에 돈을 넣으면서 '뭔가 나에게 보상이 있을 것이다'는 생각도 더러운 거래다.

운명에 대한 자세를 이야기 한 바구라의 말은 보여주기 위한 삶이 아니다. 우연이나 재수의 삶도 아니다. 다만 자신을 사랑하고 자신이 무언가를 소망하는 것들을 위해 성실하게 노력하고 정성을 다함에 진심인 자가 운명을 논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갑진년(甲辰年)에는 모든 사람들이 소망하는 모든 일들이 정성으로 무르익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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