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희
윤석희

거센 파도에 몸을 던진다. 어둠 속에서 빛을 찾아 등대도 없는 항로에 기꺼이 뛰어들었다. 밤 물살이 거칠게 숨을 몰아쉰다. 난무하던 아우성도 얼어붙는다. 난데없이 피난민이 되어버린 휘청이는 가슴들이 흔들리는 화물칸에 짐짝처럼 포개진다. 사투 중이다. 죽음의 그림자가 겹겹이 드리워도 추위와 주림과 불안은 서로를 부둥켜안으며 애써 외면한다. 내일을 향해 낯선 걸음을 내딛는 만삭 여인의 심장이 뜀박질한다.

목숨을 건 도박이다. 정찰기와 어뢰를 피해 빛과 소리를 파도에 숨기는 이박 삼일의 난항. 화물선에 더 많은 사람을 실으려고 라루 선장은 군수물자를, 난민은 보따리를 버렸다. 우여곡절 끝에 일만사천 명이 배에 올랐다. 흥남에서 출항한 배가 마침내 신의 기적인 양 성탄절에 도착한다. 실핏줄처럼 뒤엉킨 피난민을 장승포항에 마구잡이로 쏟아낸다. 바라보는 이들은 아연했고 밀려드는 이들은 민망했다. 네 식구 뭉쳐 있음에 여인은 잠시 감사와 안도의 호흡을 고른다.

망향 무대의 막이 올랐다. 여인이 단칸방에서 며칠 후 아이를 해산한다. 퉁퉁 부은 산후통이 드난살이의 슬픈 서막이다. 이웃들의 따뜻한 배려에도 낯선 땅에 부린 낯선 삶은 세찬 비바람에 마구 흔들린다. 조개껍데기가 수저고 그릇인 초라한 살림이어도 목을 가누고 실한 뿌리를 내리기 위해 마음을 곧추세운다.

왜바지에 앞치마부터 질끈 동여맨다. 반질반질 때 절은 광목떼기 앞치마로 각오를 다잡으면 잰걸음이 가볍다. 새벽 어스름에 시동 걸리는 여장부의 하루는 언제나 비장하다. 살아남기 위해 부지런히 부두로 나선다. 낡은 사과 궤짝 위에 좌판을 편다. 갓난아이를 등에 업고 죽을 둥 살 둥 목청을 돋운다. 닥치는 대로 이것저것 가리지 않는다. 이미 수줍던 지주의 딸이 아니다. 하얀 행주치마의 새댁도 아니다. 세파에 휩쓸리지 않으려 밧줄을 움켜잡고 당당히 맞선다.

땀과 눈물과 수치심 따윈 앞치마로 훔친다. 커다란 주머니도 덧댔다. 현금을 모아두는 돈주머니다. 수세미처럼 늘어져 볼품없어도 불룩해지면 여인은 박꽃처럼 환하다. 열 장씩 세어 착착 포개진 지폐는 절대로 풀지 않는다. 결국, 얼마지 않아 시장 안 여러 가게의 주인이 된다.

기쁨은 동지섣달 햇살인 듯 쉬이 달아났다. 덜컥 앓아누운 남편은 십여 년 병원 신세를 지고도 쫓겨 온다. 그의 고통을 바라볼 수 없어 결국 모은 재산을 다 쓰고 만다. 감당할 수 없는 폭풍이 몰아친다. 어렵사리 마련한 가게를 차례로 처분하며 아편으로 바꾼다.

긴 병구완에 지칠 즈음 벽 한 면을 장식한 네 아들 사진을 보며 빌고 또 빌었다. 아이들의 학비를 위해서라도 이 노릇을 어서 멈추게 해달라고. 그리고 얼마 후 남은 아편 덩이를 아궁이에 불꽃처럼 사르며 남편을 보낸다. 오히려 후련했었다고 모질게도 마음을 다독이는 그녀는 범접할 수 없는 산처럼 느껴졌다. 다가가기엔 아득하고 외면하기엔 눈물겨운 그녀지만 늘 가파른 삶을 홀로 견디며 벼랑으로 굴러지면 다시 기어올랐다. 눈물 한 방울 나지 않을 바위같이 단호하고 단단했다. 

내 시어머니의 기구한 삶의 편린이 어쩌면 나약한 내 생의 지표가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니는 그리 여려서 우예 살겄노"

혀를 차면서도 밭에서 쓰라며 차양 큰 모자를 사주시던 어머니. 대목 목욕탕의 대혼잡에도 엉덩이로 밀고 들어가 나를 앉히고, 수라장인 만원 버스 안에서도 기필코 내 자리를 만들어내시던 어머니. 그 막무가내 당당함에 박수했고 때론 얼굴을 붉혔다. 거침없는 함경도 사투리와 주위 눈치 보지 않는 도저함에도 더러는 감탄했고 더러는 고개를 돌리기도 했지만.

철판으로 무장한 여인의 심장에 물이 흐른다. 그러면서도 흑장미 꽃다발을 유난히 좋아하고 화사한 꽃무늬 원피스를 즐기는 어여쁜 여인이기도 했다. 함성을 내지르며 축구경기에 열광하고 목청껏 독재정권을 성토하는 열정도 불같았다. 옳지 않은 꼴을 보지 못해 즉석에서 호통치는 올곧은 여인이었다. 그러기에 만삭에 고향을 등지고 자유를 앞세워 남하하지 않았을까.

넋이 나가 산 세월은 또 얼마인가. 품에 안고 업고 내려와 온몸으로 키워낸 두 박사 아들을 연이어 잃는다. 함께 휴전선을 넘은 식구 셋을 다 잃고 만다. 남부끄럽다고 두문불출 벽만 보며 하세월 울부짖는다. 먹지도 자지도 않아 영락없는 유령이었다. 새끼를 잃은 어미의 처절한 절규다. 생활이 어려워지자 남은 자식 신세 지지 않겠다며 다시 일어난다.

생계 수단으로 면을 뽑기 시작한다. 고향 집 과수원에서 인부들의 참으로 내던 친정어머니의 손맛을 기억해 낸 것이다. 함흥의 맛을 남쪽 포구 장승포에서 살려내고 지켜갔다. 터 잡고 사는 곳이 고향이라고 장진에 대해 통 말이 없더니 때가 오면 선산과 과수원을 찾아보라며 꼬깃꼬깃 접힌 주소 쪽지를 나에게 내준다.

스스로 비행기도 탄다. 짐을 과감히 내려놓고 또 다른 삶을 실현한다. 정작 가고 싶은 곳에 갈 수 없어서인가. 여든 노구에도 미국 유럽 호주 동남아 중국 일본 등지를 고향이듯 날아다닌다. 세상 얘기를 들려주며 외국어 공부를 해두라고 신신당부한다. 너른 세상 활개 쳐 보란다. 머물지 말고 늘 삶의 반란을 꿈꾸라고 부추긴 거다.

「매러디스 빅토리호의 기적」 오페라를 보았다. 처절한 역사의 현장에 들어선 듯 가슴이 뜨거워진다. 성대를 잃은 사람처럼 속울음을 울다간 여인이 새삼 그리웠을까.

그녀의 삶을 다시 돌아본다. 숨 막히는 배 안을 상상하며 피난민이 되어본다. 임신 말기에 격랑 속으로 뛰어든 그녀의 결단에 갈채를 보낸다. 거친 파도를 헤쳐나와 아흔다섯의 굴곡진 삶을 묵묵히 살아낸 여인의 생애를 글로 새기고 싶다. 저곳에선 그저 곱게 살라고.

혼수상태에서 꽃이 피었다고 헛손질을 해댄다. 날개를 펴듯 허공을 휘젓는다. 혼이라도 삼팔선을 넘어가고 싶은가보다. 철새처럼 북녘으로 훌훌 날아가라고 ' 네, 어머니 과수원에 복사꽃이 한창이네요.' 가만히 안아 고향으로 보내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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