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97년 7월16일 새벽 거제 칠천량해협에서 통제사 원균이 지휘하는 조선 수군 연합함대가 일본군에게 크게 패배한다. 칠천량해전에서 통제사 원균을 포함해 해전 경험이 풍부한 수많은 지휘관과 조선 수군이 전사하고 함대와 병력 대부분을 잃는다. 

임진왜란 당시 유일하게 조선 수군이 패배한 전투이기도 한 칠천량해전은 군선 160여척과 1만여명의 병사가 전사한 조선 수군의 가슴 아픈 역사를 담고 있는 패전이라는 점에서 당시 지휘관이었던 원균이 모든 비난을 받아왔다. 그러나 칠천량해전의 원인은 당시 조선 조정이 무리하게 부산포 공격을 원균에게 강행하도록 명령한데 있다. 

원균은 통제사에 오른 후 조선 조정의 부산포 공격이 불가한 점을 여러번 설명했으나 권율은 원균을 불러 명령 불복종을 이유로 곤장까지 치며 부산포 진격을 명령했다. 

1597년 7월14일 원균은 부산 근해에 이르러 미리 조선 수군의 공격을 알고 있었던 일본군의 교란작전으로 고전했다. 또 되돌아오던 중 가덕도에서 복병한 적의 기습을 받아 400여명을 잃었다.

1597년 7월15일 조선 수군은 칠천량으로 이동해 전열을 가다듬으려 했으나 일본군은 야음을 틈타 조선 수군을 기습했다. 

결국 조선 수군은 제대로 된 전투 한번 펼쳐보지 못하고 일본 수군에 크게 패배했고 통제영이었던 한산도까지 일본 수군의 수중에 들어갔다. 

당시 경상우수사 배설이 12척의 전선을 이끌고 남해 쪽으로 후퇴하는데 성공해 조선 수군의 유일한 병력으로 명량해전을 치르게 된다. 

일본의 기록을 보면 칠천량해전은 현재 칠천량해전공원이 위치한 하청면 연구리가 아닌 하청면 어온리 물안해수욕장 인근으로 돼 있다. 

칠천량해전도. @칠천도일본자료
칠천량해전도. @칠천도일본자료

 

★ 한국사 산책 = 명량해전

1597년 9월16일 통제사 이순신이 이끄는 조선 수군 연합함대가 명량(전라도 진도와 해남 사이 수도)에서 일본군 함대를 크게 이긴 전투다. 견내량해전(59척 격파)및 노량해전(200척 격파)과 함께 임진왜란의 판세를 뒤엎는 대첩으로 알려졌다.

명량해전은 조선 수군 판옥선 13척과 일본군 함대 133척이 맞붙어 조선 수군이 일본군을 압도적으로 승리한 전투로 해상 보급을 통해 한양을 점령하고 삼남을 정벌하겠다는 일본의 계획을 원천 봉쇄한 결과를 이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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