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희 청마기념관 사무국장
김정희 청마기념관 사무국장

거제의 가을이 기다려지는 이유 중 하나는 매년 열리는 청마문학축제 때문이 아닐까. 거제시 둔덕면 방하리 청마기념관 뜰에 모과가 노랗게 익어가기 시작하고 생가 돌담에 아기 주먹으로 맺힌 청둥호박이 어느새 두둥실 가을볕에 튼실해 질 때 청마기념관 뜰은 분주해지기 시작한다.

지난 토요일 오전 10시부터 청마기념관에는 청마를 잊지 못하는 전국 각지의 내빈과 거제시민, 학생 등 1,0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축제의 막이 올랐다, 이날 행사를 위하여 둔덕면과 둔덕농협, 둔덕부녀회, 자율방범대, 이장단협의회를 비롯한 여러 단체에서 식사준비와 교통정리 등 많은 지원과 정성을 보탰다.

청마기념관과 청마생가에서는 전시행사로 ‘청마북만주답사 사진자료전’ ‘청마교가 전시회’ ‘전국문학지 전시회’ ‘사행시 우수작품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거리시화전으로 청마의 시 300 편이 배너 시화로 제작되어 거제시 관내 수변공원과 산책로 등에 전시되어 깊어 가는 가을을 한층 더 격조있게 만들고 있다.      

청마기념과 주차장과 청마생가에서 청마문학제기념 백일장과 사생대회 그리고 전국의 문사들이 참여한 청마깃발문학상 백일장이 펼쳐졌고, 주무대에서는 우리소리연구소의 민요공연과 크리센도 색소폰 연주팀의 식전연주에 이어 개막식이 시작되었다. 

청마의 일대기를 그린 성악곡 ‘청마를 기리며’가 축가로 올려졌다. 이 곡은 내가 거제 문인협회장으로 있던 4년 전 거제문화예술회관과 협업으로 만들어진 청마의 일생을 오마주하는 성악곡이다. 그 당시 지역작가에 대하여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던 거제문화예술회관은 그 첫 번째 사업으로 거제지역 문인들의 시에 곡을 붙여 창작곡을 만드는 작업을 하였는데 그중에 한 곡이기도 하다. 이렇게 만들어진 곡으로 거제문화예술회관 소극장에서 ‘사랑과 그리움 & 거제의 노래’라는 테마로 한 창작곡 무대도 개최하였다. 마침 그때 이 사업을 적극적으로 추진한 성악가인 장은익 관장이 청마문학제에서 이 가곡을 열창하였다. 거제에서 태어나고 거제에서 영원히 잠든 청마의 일생이 잘 그려진 시에 곡을 붙인 이 곡은 청마문학제에 빠질 수 없는 순서다

불의의 교통사고로 너무 일찍 세상을 떠난 청마의 죽음을 비통해한 박목월의 시가 무대에 올랐다. 거제에서 1년 살기 온 청마의 제자인 전직 교장은 박목월의 ‘일상사’를 낭송하였다. 불의의 교통사고로 이승을 달리한 청마의 죽음을 애도하는 내용으로 시를 낭송하는 반백의 제자에게 청마는 영원한 그리움 그 자체였다.

청마는 시인이면서 교육자로 평생을 살다 갔다. 부임한 학교마다 교가와 교훈을 만들었다. 올해 처음 무대에 올린 ‘청마 작사 교가부르기’는 감동 그 자체였다. 청마가 교가를 만들게 된 동기도 다양하다. 그 동기가 그 학교의 역사가 되고 그 역사를 자랑스러워하는 졸업생들은 합창으로 자존감 높은 서사를 써 내려 갔다. 눈부신 드레스 팀. 여고 시절로 되돌아간 교복 팀, 발랄한 청바지 팀 등 특색있게 단장한 제자들이 함께 호흡하며 학창시절을 소환하여 다양한 퍼포먼스로 웃음을 선사하였다. 

각종 기념식 노래나 교가들이 점점 잊혀 가는 요즘 세태에 재학생과 졸업생이 함께 합창함으로써 모교에 대한 전통과 애교심을 되살리는 기회가 되었다. 더불어 정서적 교감을 통한 연결고리를 형성하여 청마의 문학정신을 기리는 무대가 되었다.

청마문학제는 무대와 관객의 구분이 따로 없다. 관객이 무대에 올라 청마의 그 유명한 시 ‘행복’을 낭독했다. 청마의 ‘행복’은 굴곡진 삶을 바로 잡아준 희망의 끈이었다면서 목이 메이는지 더 이상 말을 잊지 못한다. 모두가 숙연한 분위기로 따뜻한 응원의 박수를 보냈다.

사랑을 받는 것보다는 사랑을 하는 것이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라는 심오한 메시지가 담겨 있는 ‘행복’은 서로를 향한 애틋한 감정이 절절히 녹아있다. 이러한 정서와 감성으로 말미암아 각박한 세상살이가 다소나마 여유롭고 따뜻해지는 것은 아닐까 싶다.

대서사의 마무리를 장식한 ‘청마 작사 교가 부르기 시상식’은 청마가 교가를 작사했다는 그 이유 하나만으로 동참해 준 것에 대한 고마움을 전달하는 시간이었다. 청마 유가족 대표인 손자 손녀가 직접 무대에 올라 시상식을 진행했다. 청마의 베스트 시 100편이 수록된 시집과 청마의 시 한 편씩 선물하면서 청마 대서사의 대미를 장식하였다. 

청마는 한국문단을 대표하는 시인이자 교육자다. 교장으로 부임한 학교에서 그 당시의 전형적인 교장의 모습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고 한다. 노타이 차림으로, 학생들에게 ‘공부하라’ 대신 ‘책을 많이 읽어라’라고 했던 청마. 노벨문학상이 발표되면 조회시간에 수상자의 시를 낭송한 후 해설까지 해주신 로맨티시스트 교장선생님. 청마의 교육철학인 ‘나란 나의 힘으로 생겨난 내가 아니다. 나란 나만으로서 있을 수 있는 내가 아니다. 나란 나만에 속한 내가 아니다’라는 '큰 나의 밝힘'은 제자들에게 평생의 등불이 되고 있다.

거제의 가을이 기다려지는 이유는 산방산의 단풍이 익어가고 고려역사를 품고 있는 둔덕 기성의 청람 빛 하늘이 더 높아 보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축제의 전설이라 불리는 ‘청마문학제’가 있기 때문이다. 가을이 깊어 갈수록 귀에 또렷한 그 관객의 시 낭송이 울림으로 다가온다. 

‘사랑하였으므로 나는 진정 행복하였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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