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일광 시인/거제문화원장
윤일광 시인/거제문화원장

1614년 이수광이 편찬한 우리나라 최초 문화백과사전인 '지봉유설(芝峯類說)'에 고추를 일본에서 전래한 왜겨자(倭芥子)라고 했다. 재미있는 것은 사람들이 감기가 들면 술에 고춧가루를 타 마셨다는 기록도 있다. 그렇다면 적어도 17세기에는 고추가 이미 우리생활에 널리 쓰인 것 같다.

고추는 약 9000년 전부터 멕시코 원주민들이 먹었던 식물이었다. 이후 콜럼버스에 의해 유럽으로 전파됐다. 일본은 1542년 포르투갈 사람에 의해 전해졌고, 우리나라는 임진왜란 때 들어온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민간요법으로 감기에는 '소주+고춧가루'라는 이야기를 한 번쯤은 들어봤을 것이다. 실제 효과가 있을까? 지인중에 지독한 감기에 걸려 소주에 고춧가루를 타서 마셨다. 결과는? 감기가 떨어지기는커녕 병원에 입원하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고추는 우리민속과 관련이 많다. 민간에서 아들을 낳으면 문 앞에 고추를 걸었다. 장을 담근 뒤에 새끼에 빨간고추와 숯을 꿰어 독에 둘러놓거나 고추를 독 속에 집어넣는 것은 장맛을 나쁘게 만드는 잡귀를 막으려는 것이다. 붉은색은 태양·불을 상징하며 잡귀를 쫓는 벽사의 의미가 있다.

조선시대 사람들은 고추맛을 쓰다고 여겼다. 그래서 고초(苦草)라고 불렀다. 그러나 정확히는 맛이 아니라 세포가 느끼는 아픔인 통각이다. '매운맛 좀 볼래?' 전에는 이 말이 혼내준다는 뜻이지만, 요즘은 스트레스 풀자는 말로 통한다. 경기가 불황일 때 매운맛을 더 선호하는 이유다. 스트레스 많은 세상이다 보니 보통 매운 것으로는 성이 차지 않아 극한의 매운맛에 도전하기도 한다. 이들을 '신(辛)세대'라 한다.

라면도 과자도 닭발도 치킨도 더 매워지고 있다. 우리가 매운 음식을 찾는 이유는 매운맛으로 느껴지는 통증을 완화하기 위해 엔도르핀이 분비되어 기분이 좋아지기 때문이다. 인생의 매운맛도 때로는 삶의 엔도르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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