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일광 시인/거제문화원장
윤일광 시인/거제문화원장

재래식 부엌의 기능은 음식을 조리하는 곳이면서 난방을 하는 곳이다. 부엌에서 가장 신성한 곳은 조왕신을 모신 부뚜막이다. 아궁이에 불을 넣으면서 시집식구 헐뜯는 말을 하면 안되고, 부뚜막에 발을 올리거나 걸터앉아서도 안되고, 아궁이 수리도 함부로 하지 못했다. 부뚜막의 깨끗함을 보고 그 집 주부의 살림솜씨를 알아봤다.

부뚜막에는 큰솥·중솥·옹솥을 죽 걸어놓았다. 큰솥은 가마솥으로 무쇠로 만들었기 때문에 '무쇠솥' 또는 '조왕솥'이라 한다. 솥의 크기와 숫자가 부의 상징이었다. 아궁이에 불을 때서 열을 가하는 시설을 '가마'라고 하는데 이 가마에 얹힌 솥이라고 해서 '가마솥'이라고 했다.

솥은 한자로 정(鼎)이나 부(釜)로 표기한다. 정은 본래 구정(九鼎)으로 '사기'에 의하면 하(夏)나라의 시조 우(禹)가 구주(중국 전역)에 명해 모은 청동을 가지고 주조한 것으로, 발이 셋이고 귀가 둘로 고대중국 왕권의 상징이었다. 왕조 대대로 전해오다가 춘추시대 혼란기에 분실했고, 전국을 통일한 진(秦)나라는 옥새를 새겨 이것을 황제권의 상징으로 대신했다.

부(釜)는 가마솥으로 발 없이 큰솥으로 소댕(솥뚜껑)도 무쇠로 꼭지가 달린 것을 썼다. 밑이 약간 둥글되 옆은 편평한 솥으로 가장 중요한 부엌살림의 하나이다. 다리가 없는 솥은 부(釜)이고 다리가 있는 것은 정(鼎)이다.

전근대사회의 민가에서는 솥이 불씨와 동일시됐다. 집을 새로 짓거나 이사할 때도 가장 먼저 서두르는 일이 솥을 거는 일이다. 신부가 처음 시가에 들어올 때 황토를 깔고 넘어오게 하거나, 출입문 문지방 앞에 놓인 솥뚜껑을 밟고 들어가는 것은 모두 불을 뛰어넘던 풍습에서 기인한다.

신부가 혼례 후 첫 날 부엌에 들어가 솥뚜껑을 세번 들썩이며 소리를 내어 부엌의 주인임을 조왕신께 알리는 의식이나, 환갑이 되는 생일날 부엌의 솥을 앞뒤를 돌려놓고 밥을 해 먹으면 아무 탈이 없다고 여기는 지방풍습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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