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제21회 흥남철수·거제평화문학상 공모전 - 수필 부문 최우수

김도원
김도원

배움을 좋아하는 나는 9월에 신설된 강의를 듣기 위해 여성인력개발원으로 향했다. 1층 강의실로 들어가기 전 그립던 양재교육실에 선생님이 계실까 하고 잠깐 들러보았다. 금요일은 수업이 없는지 깜깜하게 불이 꺼져 있었다. 하지만 그 열정 속에 늘 자리 잡던 지하의 퀴퀴한 냄새와 공업용 재봉틀의 쇠 냄새는 여전히 남아 과거를 돌아보게 했다. 특히 이곳에서 만난 나영언니는 잊을 수 없다.

양재기능사반 첫날, 그곳에서 나영언니를 만났다. 우연찮게 언니와 내가 짝꿍이 된 것인데 이상하게 선생임은 나에게 나영언니를 부탁했다. 언니는 보통 사람과는 많이 다른 사람 같았다. 언니의 첫인상이 그것을 증명했다. 작은 키에 까맣고 마른 몸, 큰 눈과 오똑한 코, 앙다문 입술은 음산한 기운을 풍기며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언니와의 거리를 두게 만들었다. 한주 두주가 지났지만 나영언니와 대화는 인사 정도에 그치지 않았다. 그런데 이 언니 두 학기나 양재를 배웠으면서 도면을 그리는 것이 영 어설펐다. 또 오지랖이라면 한 오지랖 하는 내가 “언니 잠깐만요 이거는 이렇게 그러지 말고 소매산 쪽에서 각도를 잡아야 해요. 언니도 이렇게 하는 걸 연습하면 소매산이 쉬울 꺼예요!” 나는 언니에게 여러 가지 옷의 전개도를 쉽게 그리는 법을 차근차근 알려 주었다. 

그러자 언니는 “고맙다. 내래 이게 어려워서 자꾸 필기시험에 떨어진다. 나를 좀 도와줄 수 있겠나? 내래 북한에서 왔어. 그래서 여기서 자격증을 따서 일을 해야 하는데 이게 잘 안돼” 그랬다. 언니는 몇 년 전에 한국으로 온 새터민이었다. 그리고 우리 모두는 언니에게서 풍기는 그 어색하고 호러 같은 아우라의 정체를 알게 되었다.

나영언니는 북한에서 중국 쪽으로 돈을 벌라고 보낸 기술자에 포함되어 있었고 여러 경로를 통해 탈북을 시도했고 결국 거제도에서 결혼을 하고 자리잡고 사는 새터민이었다. 그래서 양재반을 1년이나 다니고 있었지만 여전히 헤맬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처음엔 그 사실이 놀라웠다. 책으로만 보던 탈북민이 거제도에, 그것도 나와 같은 공간에서 숨을 쉬고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고 언니의 탈북 과정을 들으며 영화를 보는 것 같은 공포심도 생겼다. 언니의 앙다문 입술이 왜 그렇게 잘 떨어지지 않았는지 이해가 됐다. 말이 필요 없을 사회였을 것이고 탈북 과정은 그보다 더 처절했기에 누구보다 입이 무거웠을 언니였다.

그때부터 같은반 학우들은 언니를 돕기 시작했다. 필기시험이 어려운 언니와 주말에도 만나서 나올 것 같은 문제를 복습하고 언니가 부족한 옷의 도면 그리기를 무한 반복으로 연습하며 언니를 도왔다. 그게 고마웠던지 언니가 하루는 모두를 위해 밥을 준비해 온 적이 있었다. 하얀 쌀밥에 가져온 반찬들은 하나같이 익숙하지 않은 것들이었다. 깻잎 같아 보이기도 하고 풀 같아 보이기도 하는 야채들이 반합에서 하나씩 꺼내질 때마다 다들 묘한 표정이었다. 온통 풀때기 반찬들에 맡아보지 못한 반찬의 향기는 쉽게 젓가락을 댈 수가 없었다.

언니는 “생긴 건 이래도 맛은 내래 보장한다. 먹어봐라. 나한테 또 해달라고 할꺼다. 이게 북한에서는 아주 인기 많은 음식들이다”. 언니의 그 말에 반찬을 하나 입에 넣었다. 와∼ 생긴것과 다르게 알싸한 그 야채무침은 아삭하면서도 양념장이 새로워서인지 향이 그득 입안을 채우는 맛이었다. 모두들 치켜세우기를 반복했다. 그렇게 나영언니와 양재반은 마음을 나누는 반이 되었다. 양재반은 또한 중국동포 언니와 미국에서 10년을 살다가 온 동생도 있어서 글로벌한 매력이 넘쳐났다. 결국 언니는 두 번만에 필기에 합격을 했고 5번째 실기시험 끝에 양재 기능사 자격증을 거머쥘 수 있었다.

우리를 하나로 묶어 준 것은 가르치는 선생님이 아니었다. 국가 자격증이라는 공동의 목표를 향한 같은 열정이었다. 나 혼자가 아닌 모두 다함께 기쁜 날을 맞이하고 싶은 공동의 목표! 우리 사회가 이루어야 하는 통일이 이런 것은 아닐까? 20명이라는 적은 숫자지만 한 배를 탄 학생들은 누구보다 서로의 갈망이 무엇인지 안다. 그렇기에 같은 것을 바라보고 원하다 보면 누구나 도움의 손길을 주고 받으며 한 사람의 삶에 영향을 미친다. 이념이나 사상, 종교나 빈부 차이를 넘어서 현재 내 삶의 가치와 무게속에서 만난 사람들과의 자연스러운 어울림, 내가 바라고 생각하는 통일은 그런 것이다. 하나의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열정, 그 속에서 이념이나 사상, 종교나 학벌보다는 하나의 목표에 함께 다다르는 2인 3각 달리기 같은 통일!

거제도에서 만난 나영언니가 있기에 나는 우리 옆에서 숨 쉬고 함께 살아가는 새터민이 거제도에 많다는 사실도 알았다. 사실 초·중·고등학교 시절 통일은 책속에서 답을 찾아서 시험점수를 높이기 위한 통일이었다. 그런데 언니를 만나고 양재반이라는 그 작은 공간에서 새터민 언니와 중국동포 언니, 그리고 우리나라를 떠나있던 동생 등 여러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공감하며 우리 20명은 모두 자격증을 손에 쥐려고 노력하고 함께 기뻐하는 모습을 꿈꾸었다. 그리고 그것은 나영언니의 성공을 끝으로 이루어졌다.

벌써 8년전의 일이다. 언니는 작년에 장평종합상가에 옷 수선가게를 열었다. 그렇게 언니는 만나는 사람들의 사랑과 이해를 통해 언니의 열정과 노력으로 거제도라는 도시에 스며들고 있다. 통일도 그렇게 스며드는 것이라 생각한다. 이념과 대립보다는 하나의 인간을 사랑하고 이해하는 누구나 할 수 있는 마음이 있다면 이 거제도에 언니와 같은 북한 사람들이 더 많아져 북한 음식점이 생기고 그 집이 인스타 맛집으로 소문나 누구나 알 수 있는 그 맛이 될 수 있는 것! 나는 그런 소박하지만 인간에 대한 사랑으로 시작되어 공동의 목표를 향해 함께 걷는 것이 진정한 통일의 첫걸음이라고 생각한다. 둘이지만 하나의 마음으로 달려가는 2인 3각 달리기 같은 통일.

저작권자 © 거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