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일광 시인/거제문화원장
윤일광 시인/거제문화원장

나락이 익어가는 가을이면 모두가 바쁘다. 학교 마치고 온 초등학생까지도 책 보따리를 내려놓자마자 논으로 달려 나간다. 가을은 참새와의 전쟁이다. 빈 깡통을 새끼줄에 매달고 새가 오면 흔들어도 그때뿐이고, 빛을 받으면 반짝이는 색깔 있는 셀로판지를 붙인 큰 새 모형도 무용지물이다. 딱총을 쏘아도 잠깐 겁먹은 듯해도 이내 또 몰려온다.

눈치 빠른 참새들은 허수아비 정도야 별로 겁내지도 않는 마당에 할아버지가 소맷자락 펄럭이며 훠이훠이! 헛팔매질하는 정도로는 꿈쩍도 하지 않는 것이 가을 참새들이다. 우르르 몰려다니며 애가 터지게 지은 곡식을 축내는데는 당할 재간이 없다.

1955년 중화인민공화국 주석인 마오쩌둥이 쓰촨성에 현지지도를 갔다가 들판에서 참새떼가 곡식을 먹어 치우는 것을 보고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참새는 해로운 새다'는 한마디가 엄청난 결과를 가져왔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참새박멸본부'가 생겨나고, 관료들은 논리를 마련했다. 참새 1마리가 매년 곡식 2.4㎏을 먹어 치우는데 참새만 박멸해도 70만명이 먹을 곡식을 더 수확할 수 있다는 계산을 내놓았다.

이후 한 해에 2억마리의 참새가 사라졌다. 그러나 풍년은 오지 않았다. 천적인 참새가 사라진 자리에 메뚜기와 해충이 창궐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1958년부터 3년간 3000만명에 가까운 중국사람이 굶어 죽는 대기근이 일어났다. 급기야는 소련으로부터 참새를 수입해야 하는 촌극이 벌어졌다.

우리 조상들은 참새와 공존하는 슬기를 발휘했다. 참새가 벼를 먹는다고 해서 박멸하려고는 하지 않는다. 오면 쫓는 게 고작이다. 참새에게도 약간의 먹을거리를 내어주고 대신 해충도 퇴치했으니 이 얼마나 지혜로운 공존인가.

그래서 용어도 '새 쫓는다'라고 하지 않고 '새 본다'고 했다. 마치 '아이 본다'는 말은, 아이를 쳐다만 보고 있는 것이 아니라 같이 놀아주고 보살피고 거두어주는 것을 말하듯이 참새가 밉지만 함께 살기를 바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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