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부 거제향인회 원정희 회장

원정희 재부 거제향인회장. @강래선
원정희 재부 거제향인회장. @강래선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 민족 최고의 명절 중추절을 앞두고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가 고향이 아닐까? 

이런 의문을 품고 거제를 고향으로 둔 25만 재부 향인들의 수장을 만나기 위해 부산으로 향했다. 

올해 제22대 재부거제향인회장으로 취임해 상생과 화합으로 활력을 불어넣고 있는 원정희(70) 회장. 그는 "국적은 변경할 수 있어도 고향은 변경하지 못하는 것이 인지상정"이라는 말로 고향에 대한 강한 애착을 대신했다. 

원 회장은 "고향을 그리워하는 향인들 옆에서 희로애락을 같이하는 친구 같은 재부거제향인회를 만들기 위해 작은 것부터 하나씩 챙겨가고 있다"고 강조했다.

원 회장은 하청면에서 초·중·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가난한 집안을 일으켜 보겠다는 큰 뜻을 품고 부산으로 올라가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일을 했다. 또 배움의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 대학에 진학, 회계학을 전공해 박사학위까지 받아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수로 강단에 서기도 했다.

그는 일찍이 청년운동에 눈을 떠 고향에서 농업후계자 1기 교육과 4-H 활동 등으로 자신의 역량을 펼치고자 해외로 나가기 위해 신청서를 냈는데 부모님의 반대로 꿈을 접었다.

거제를 생각하면 늘 어머님의 포근함이 먼저 떠오른다는 원정희 회장은 작년 어머니를 여의기 전까지 매주 고향에 내려가 부모님을 뵙는 등 소문난 효자였다.

원정희 재부 거제향인회장. @강래선
원정희 재부 거제향인회장. @강래선

거침없는 도전으로 살아온 세월

그는 평소 꿈꿔 온 고향과 나라 발전을 위한 일에 참여하기 위해 금정구 청년연합회 운영위원회 등 청년 조직 활성화에 심혈을 기울였다.

그러던 중 1988년 동래구에서 분할된 금정구가 새로운 지역구로 형성되자 그 지역 국회의원에게 발탁돼 청년부장으로 정당 활동을 시작해 정치인의 길을 걷게 됐다.

한나라당 금정구 청년부장을 시작으로 정치에 입문해 2002년 부산광역시 시의원에 당선돼 예산결산위원장을 맡았다. 이후 실력을 인정받아 의정회 사무총장과 대한민국 의정회 실행위원회 부위원장을 맡는 등 활동영역을 넓혀 나갔다.

또 2010년 부산광역시 금정구 기초단체장 선거에서 구민들의 선택을 받아 제2의 고향 금정구 발전과 시민을 위한 시정으로 한국을 빛낸 사람들 대상을 비롯한 여러 분야의 상훈을 받았다. 이후 8년간 금정구 민선 구청장으로도 소임을 다했다.

하지만 더 큰 헌신과 봉사를 위해 중앙 무대로 갈 기회를 찾던 중 예기치 않은 갈등과 반목으로 우여곡절을 겪었다. 

'인생사 새옹지마'라고 마음먹은 대로 흘러가지 않는 것이 세상이라는 것을 다시금 알게 됐다고 덧붙였다.

그는 평소 소신대로 아니라고 판단될 때 내려놓을 수 있는 용기와 개인의 영광보다는 전체를 먼저 생각하는 대인 기질로 깨끗하게 정치를 접고 뒤에서 응원하는 자리로 물러났다.

이후 기업체 고문으로 경영자문과 사단법인 늘푸른장학회 이사장으로 사회공헌활동에 주력했다. 늘푸른장학회는 뜻을 같이한 지인들이 2억원을 출연해 지역과 나라의 일꾼을 길러내기 위한 인재양성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지금은 장학금을 지원받은 청년들이 다시 장학회 회원으로 가입해 장학회 일에 동참하는 선순환이 일어나고 있어 큰 보람이 되고 있다고 자랑했다. 

원정희 재부 거제향인회장. @원 회장 제공
원정희 재부 거제향인회장. @원 회장 제공

상생은 기본 실익 제고는 덤

- 유년시절 중 기억에 남는 게 있다면?
= 가난한 집안의 3남1녀 장남으로 태어나 어부인 아버지를 대신해 어머니를 도와 농사일을 한 것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친구들이 많아 봄에는 모내기, 가을에는 나락베기를 하며 어울려 노동한 기억이 많다. 지금도 고향 친구들을 만나면 '모내기하러 가자는 말 이제 왜 안하냐'고 놀린다. 

고등학교 졸업 후 공부하러 고향을 떠나는 친구들이 제일 부러웠다. 나도 대학에 가고 싶어 혼자 울기도 했다. 그러던 차에 4-H운동을 하게 되고 지도자과정을 밟아 외국으로 나가 공부하겠다는 목표도 세웠는데 부모님의 반대로 이마저도 포기하고 결국 돈을 벌기 위해 부산으로 올라왔다.

- 연고도 경제력도 없는 타향살이에서 성공할 수 있었던 비결은?
 = 나 자신이 성공했다는 생각은 한 번도 안해 봤다. 그러나 아주 열심히 최선을 다해 살아왔다는 자부심은 있다. 특별한 기술·학벌 없이 객지에서 일어선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20대에 깨달았다. 

하는 일마다 생각대로 되지 않아 자포자기 심정으로 책 외판 영업사원을 시작했다. 양복을 차려입고 한 손에는 책이 든 가방을 들고 반기지도 않는 사무실에 들어가 책을 홍보하며 팔았을 때 세상을 다 얻은 듯한 묘한 성취감을 알았다. 이후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하루도 빠지지 않고 책을 팔러 다녔다. 

그렇게 1년을 다닌 결과 판매왕도 되고 다른 영업사원에게 노하우를 전하는 위치에 서게 됐다. 그때부터 '안 되면 될 때까지 해보라. 포기하지 않으면 언젠가는 기회는 온다'는 말을 삶의 좌우명으로 삼고 있다.

원정희 재부 거제향인회장. @원 회장 제공
원정희 재부 거제향인회장. @원 회장 제공

- 살면서 가장 큰 시련은? 
= 정치인의 길로 이끌어준 인생멘토 김진재 의원의 갑작스러운 별세와 두 번째 시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해 낙선하고 아내마저 암 진단을 받아 부산에서의 생활을 접고 고향으로 왔을 때다.

제2의 고향 부산에서 대학교수도 하고 정치인으로 승승장구하다가 일시에 내려놓게 된 상황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거제로 내려와 정치와는 인연을 끊고 사업을 하며 그동안 자신을 괴롭혀 왔던 일에서 벗어나니 마음의 안정을 찾았고 아내도 암을 이겨내는 기적이 찾아왔다. 

이후 고 김진재 의원이 경영해온 세일기업 대표이사 자리를 권유받고 부산으로 다시 올라와 지역민을 위한 헌신과 봉사의 끈을 이어 나갔다. 2010년에는 금정구청장 선거에 도전해 당선되면서 자치단체를 이끄는 정치인으로도 복귀했다.

- 향인회가 주력할 부분은?
= 25만 재부거제향인들이 고향에 대한 자부심을 느낄 수 있도록 상생과 화합에 초점을 둘 생각이다. 이를 위해 가장 먼저 청년 회원들이 대거 참여할 수 있도록 청년담당 상임부회장제를 도입해 청년조직 활성화에 매진할 것이다. 

또 구 단위 연락망을 구축해 조직내실을 다져나가는 동시에 취미를 공유할 수 있는 역사·문화·스포츠 동아리 모임을 통해 인적 네트워크를 다져나가는 데 주력할 생각이다. 아울러 자립기반의 근간인 향인회관을 활용해 평생교육원 형태의 실속있는 강좌를 개설, 피부에 와닿는 도움을 주는 향인회로 존재감을 키워나갈 것이다.

원정희 재부 거제향인회장. @강래선
원정희 재부 거제향인회장. @강래선

- 거제 발전을 위해 조언을 한다면.
= 거제는 영원한 나의 고향이다. 그동안 거제는 조선업 호황으로 잘 먹고 잘 살았다. 호황기 때 불황기에 견딜 수 있는 제2의 대안을 마련해야 했는데 그게 가장 아쉽다. 그러나 지금도 늦지 않다. 앞으로 가덕신공항과 남북내륙철도 완공으로 교통망이 확충되면 새로운 기회가 올 것이다. 

그때를 대비해 지금부터는 다시 오고 싶은 거제가 될 수 있도록 좋은 이미지를 심어주는 데 관과 시민이 합심해야 한다. 행정은 거제만의 관광 인프라 조성으로 볼거리 먹거리를 제공해야 하며 시민들은 바가지 없는 친절한 거제시 만들기에 동참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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