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제21회 흥남철수·거제평화문학상 공모전 - 시 부문 우수

김재훈
김재훈

(저들도 같이 가야 합니다.
불가능한 일이다.
저들을 버리고 갈 수는 없습니다!
불가능하다. 배가 침몰할 수 있다. 모르는가?
제독! 여자와 아이들, 노인들은 반드시 태워야 합니다!
…무기를 버려라! 난민을 싣는다.)

배에 오르며 바다를 본다.
차마 오르지 못한 또 하나의 사람바다는
눈보라 속에서 물결치고 
가슴 찢긴 이들은
마침내 통한의 포효를 쏟는다.
얼어붙은 숨결은
날카로운 쇳가루 되어 얼굴에 박히고
바람은 살이 되어 폐부로 쏘여 온다.

밤색 짙은 흥남의 바다는
겨울을 온몸에 껴안은 채 빈 하늘을 받들고
못다 잡은 손길은 멀어져가는 눈부처들에
차라리 잠시 이별을 고한다.

곧 다시 볼 거야. 이 난리 끝나면 곧.
이미 순수해져버린 눈물
흘러 흘러 바다로 가고
사람바다에 설움이 내린다. 슬픈 희망이 서린다.
같은 하늘 아래 살아만 있거라!
우리는 다시 만날 사람들이다!!

빅토리아는 그렇게 바다로 나간다.
살아야 한다. 
우리는 살아서 우리의 고동소리를 들어야 한다.
기다림은 천년의 노래가 되어
님의 눈부처로 다시 태어날지니
그러나 거센 물결 배 출렁일 제
희망은 공포로 돌아서고
애틋한 님의 형상마저 사라진 자리

이해타산 목마른 위정자들의 이념과 비겁한 명분과 변명이
차가운 분노가 되어 빈 가슴을 메운다.
분노에 묻힌 공포
침묵에 젖은 포효
지금 이 검음에 쏟을 수 없다면
세상 어떤 아름다움도 나는 꿈꿀 수 없으리
그럴 지라도... 그러할 지라도..
떠오르는 태양 다시 볼 수 있다면
고향 산천 개울 어딘가 흐를 산빛의 노래는
평화의 휘파람 되겠지.

오라! 거센 눈보라보다 찬란한 새생명이여!
차가운 어둠, 끝 모를 공포, 휘몰아칠 울음 쏟아라.
모든 슬픔 삼키고 차라리 우렁찬 울음 쏟아라.
추위와 공포, 흔들리던 수많은 눈동자를
모두 한데 모아서 다시 빛나게 하라!
그리고 새로운 세상
더없이 푸른 희망으로 거듭나게 하라!
향할 곳 잃어 허공을 떠돌던 원망과 그리움마저도
반드시 눈부신 성숙으로 화할지니.

그러나 70년 세월
세상은 변함없이 돌기만 하는데 사람은 늙는다고
거제도 어느 자장면집 며느리가 조용히 한숨을 쉰다.
약주 한 잔 하시면 어김없이 읊조리던
아버님의 넋두리를 추억하듯이

(아가
이 시아베 살아오면서 지금까지도 두려운 건
전쟁도 헤어짐도
놓쳤는지 놓았는지 모를 것들에 대한 죄책감도
토박이의 징글징글한 텃세도 갈 곳 잃은 원망도
그 모든 것들을 지우는 망각도 아니란다.

세월... 아무도 못 이기는 것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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